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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위미 마을목장의 쇠테우리

by 나그네 길 2020. 6. 17.

내 고향 위미리에는 아직도 마을공동목장이 남아 있다.

 

제주도의 대부분 마을에는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 넓은 마을공동목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2000년을 전후로 제주개발이라는 광풍이 불어오면서 중국자본과 부동산 졸부들에 공동목장이 팔려나갔으며

골프장이나 리조트 또는 관광개발이라는 이유로 중산간 지역을 파헤쳐지는 와중에도 위미마을목장은 살아 남아 있다. 

 

위미2리 마을 공동목장은 아래에서 보이는 자배봉(망오름) 북쪽과 고이악(고리오름) 일대 23만 평이며, 이 목장은 다른 마을들처럼 목장조합원들의 소유가 아니라 위미2리마을회가 토지의 재산권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마을회 전체 소유였기에 아직도 팔아먹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위미목장으로 들어가는 망오름 북쪽 입구에는 빌레못이라는 자그마한 물이 고여 있는 습지가 있다. 빌레못은 암반지대에 물이 고여 있는 물웅덩이 습지를 말하는데, 목장에서 방목하고 있는 소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에 위미마을에는 대부분 가정 집에서 소()를 한 마리씩 키우고 있었다.

이 소는 농번기에 밭을 갈고 우마차를 모는 농사용 가축으로 활용하였고 마을 공동목장에 방목하여 소를 키웠다.

 

마을 주민들은 농사일이 없는 날에는 쇠테우리라는 독특한 수눌음방법으로 소를 방목하였다.

목동의 일을 하는 우리 동네 쇠테우리는 24가구에서 하루에 2명씩 순번을 정하여 아침에 소 24마리를 마을목장에 방목하였다가 저녁이면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일이었다.

 

내 어린 날에는 몇 년 동안 우리 집 쇠테우리를 전담했었는데 학교를 결석하도록 했었기에 너무나 싫어했었다.

한 달에 세 번씩 소 떼와 함께 하루 내내 목장에서 보내야 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우리 쇠테우리는 24마리의 소떼를 몰고 빌레못을 통해 마을목장으로 간다. 그리고 북서쪽으로 소 떼를 몰아가며 풀을 뜯어 먹다 보면 사름아진 동산’(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나온다. 점심 때가 되면 고리오름(고이악) 주변에서 차롱에 담다 두었던 보리밥과 자리젖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다. 맛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먹는 밥이었다.

 

오후에는 소 떼를 서남쪽으로 몰아가며 풀을 뜯다 보면 자그마한 냇가에 고여있는 순물을 만난다. 쇠테우리와 소들은 냇가 너른 암석과 바위 틈에 고인 빗 물을 함께 마셨다. 어떤 때에는 웅덩이에 물이 모자라 고노리(모기 유충)들이 가득한 고인물을 마시기도 했었다. 이렇게 해질녘이 되면 마을목장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소들은 상당히 지리감이 높은 가축이다.

아침에 쇠막에 묶어 놓았던 소를 풀어 놓으면 마을 골목길로 나와 4km 상당 거리 마을목장까지 스스로 걸어간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내려와 각자 자기가 사는 쇠막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쇠테우리가 하는 일은 소의 무리를 인도하면서 숫자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수준이다.

 

예전에 위미 마을목장은 중산간 지역에 풀이 가득한 너른 들판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방목하는 소들이 없어진 이후에는 소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가시덤불들로 우거지면서 목마장이었던 곳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 위미2리 마을공동목장에도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마을공동체의 수입을 추구하는 방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미마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이 공동목장이라는 자산을 친자연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가 찾아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검토하고 있다는 태양광 발전사업에 대하여도 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현재 태양광 발전 역시 대기업과의 계약발전이며 몇십 년 후 계약 기간이 끝나면 과연 이 마을공동목장이 주민들 소유로 그대로 남을 수 있을지 깊이 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 마을목장에도 쇠테우리가 없어 진지 50여 년이 넘었다.

위미마을에 감귤과수원이 시작되면서 소를 키울 필요가 없어져 쇠테우리는 전설 속의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필요 없어진 제주도내 마을 목장들이 차츰 외지 자본에 팔려나가는 가운데 위미2리 마을 공동목장이 남아있음은 반가움이며, 어릴 적 애환이 담겨있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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