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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성당 120년사10

서귀포성당 120주년 화보집 오류 수정 지난해 서귀포성당은 설립 120주년을 맞았다. 1900년 6월 12일 한논본당이 설립되어 홍로본당으로 이전하였다가 현재의 서귀포성당으로 정착되기까지 120년이 되었으니, 제주 천주교회만이 아니라 서귀포시 차원에서도 역사적인 종교단체로 기록할만하다. 보통 60갑(甲)자를 두 번째 맞이하는 120주년에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해 전 세계를 바이러스 공포로 물들인 COVID-19로 인하여 한국천주교회는 공동체 미사를 중단하는 전례 없는 선교 위기를 맞았으며, 이에 서귀포성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도 생략하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서귀포성당120주년화보집’을 발간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120년이 지나는 동안 역사서를 가지지 못했던 서귀포.. 2021. 7. 30.
신축교안 순교자 이규석 3부자 묘비 신축교안 희생자 이규석(李圭錫, 1845~1901, 세례명 미상)은 제주도 대정읍 하모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서귀포에 한논본당이 설립되자 가족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는 1901년 5월 발생한 신축교안(이재수의 난) 중에 민군에 체포되어 배교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1901년 6월 1일(음력 4월 15일) 두 아들과 함께 현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61년 후손들이 이규석의 순교를 기려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이규석의 무덤에 순교자 묘비를 세움으로써 제주 천주교회에 알려져 ‘정난주순례길’ 코스로 지정되었다. 신축교안 교민 희생자 이규석 3부자와 관련하여 영남교회사연구소 마맥락 연구위원이 고증한 글은 다음과 같다. “순교한 이규석(본명 미상)은 고부 이씨 12대손으로 184.. 2020. 9. 30.
신축교안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선언" 1901년 발생하였던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은 제주도민들 사이에 커다란 트라우마로 나타났다. 비록 천주교인과 민군들 사이에 대립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지만 많은 교민희생자들은 바로 제주도민이었으며 피해자의 자손과 친지들이 살아있는 가운데 서로를 향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후 100여년 동안 신축교안의 원인과 해석 그리고 삼의사 칭호에 대한 교회와 희생자의 자손들이 반발 등으로 사회적 갈등을 빚어 왔었다. 신축교안 이후 다시 100년이 지나가면서 제주지역에서는 신축교안의 오래된 사회적 갈등을 화합으로 해결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신축교안 100주년을 맞은 2001년 12월 1일 중소기업센터 회의실에서 '천주교제주교구'와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주.. 2020. 8. 13.
제주 교폐(敎弊)의 흑역사, 오신락(吳信洛) 사망사건 우리나라의 천주교회 선교사 중에서 1901년 제주도 선교 초기에 발생하였던 신축교안(辛丑敎案, 이재수의 난)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1886년 한불통상우호조약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 신부들에게 호조(護照,여권)가 발급되었으며, 고종황제는 프랑스 선교사들에게 ‘여아대’(如我待)‘라는 어명까지 내렸다. 이는 지방관리들에게 외국인 선교사들을 임금처럼 대하라는 치외법권적 지위를 부여해 주는 것이었다. 제주천주교회는 1899년 프랑스 선교사 페네 주임신부와 김원영 보좌신부가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러한 프랑스 선교사의 지위를 이용하려는 일부 신자들에 의하여 여러가지 교폐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제주 천주교 교폐의 흑역사 중에서 1901년 2월 하논성당에서 발생했던 오신락 사망사건은 지역민들에게 큰.. 2020.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