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제주는 척박하고 가난한 섬이었다.
국민학교에서 봄, 가을 소풍을 제외하고는 도시락을 가지고 가 본 기억이 없으며, 점심시간은 아이들이 배고픔을 확인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학교가 끝나 책보자기를 허리에 차고 집으로 왔지만 먹을 것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럴 때 우리가 찾았던 곳이 바로 ‘구두미 바당’이었다.
남원읍 위미리 동 가름(위미2리)에 있는 구두미 바당은 우리에게 바다 수영장이었으며 해산물로 배고픔을 달래주고 물장구치던 아이들이 놀이터였다.
오래전부터 구두미 바당은 ‘고망 낚시’ 장소로 일품이었다.
대나무로 만든 ‘청대(낚시대)’에 ‘물지렁이’를 미끼 삼아 바위 구멍에 집어넣으면 ‘보들락’(베도라치) 두어 마리를 낚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닷가 바위틈에는 구쟁기(소라)와 ‘메옹이’가 있었고 작은 돌을 들어 올리면 보말을 잡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자갈밭 작지 돌 틈에 불을 피워 깡통에 보말과 수두리 넣어 삶았고 보들락과 구쟁기는 즉석에서 구워 먹었다. 이렇게 구두미 바당은 우리에게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었던 고마운 바다였다.
제주의 아이들은 바다 수영을 그냥 익혔다.
네댓 살부터 구두미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다 보면 저절로 헤엄을 배우게 된다. 그러다 바다 아래 ‘여’ 바위와 바위 사이를 헤엄쳐 다닐 수 있으며, 마음대로 거친 파도타기를 즐기는 바다의 아이들이 되어 갔다.
그렇게 우리 동네 아이들은 구두미 바당에서 바다를 알게 된다.
눈(물안경)을 쓰고 보이는 바다 밑에는 몰망과 감태와 미역은 물론 빨갛고 노란 해조류들 사이로 새우와 멸치, 골생이 같은 작은 물고기들로 가득 차 장관을 이루었던 구두미 바다에서 우리는 자랐다.
우리 어릴 적에는 구두미 바당에서 채취한 자연산 해산물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였으며, 강렬한 태양과 바닷바람에 피부가 그을려 자연적인 면역력을 키워 주었다.
그래서일까 우리가 어릴 적에는 아토피 피부병이라는 병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어느 날 찾아본 구두미 바당은 무언가 낮 설었다.
자그마한 포구와 정겨운 바닷자갈 그리고 울퉁불퉁한 검정 바위들은 그대로였지만, 바닷속 풍광은 어릴 적 우리와 함께 자랐던 우리의 바다가 아니었다.
제주에서 유일하게 해안도로가 없는 마을 내 고향 위미리였다.
그래서 다른 마을 바닷가 난개발과 달리 카페와 맛집들이 들어서지 못하여 오염이 없이 생태환경이 살아있는 구두미 바당으로 보존될 줄 알았다.
오늘 나는 구두미 바당 주변의 삭막해진 현실을 직시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외지 자본에 의해 별장과 펜션으로 점령되었고 바다 풍경을 독점해 버린 대규모 건축물들은 마음의 고향마저 앗아가 버렸다.
구두미 바당 속에서 풍성하게 흐물거리며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해조류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바닷속 바위는 갯녹음으로 허옇게 변해가며 이미 사막화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자연이 바뀌면 인간도 변한다.
이 시대 제주 아이들은 바다 수영과 신선한 해산물로 얻어지는 건강함을 잊어버렸고, 태양과 바다가 주는 자연적인 면역력도 사라져 이제는 도시 아이들처럼 아토피 피부병을 가진 세대로 변해간다.
이렇게 '구두미 바당'은 우리에게 추억의 바다로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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