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우리 집안의 설날은 가족 잔치였다
고향을 떠나 살던 가족들이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고 세배를하며 덕담을 나눈다.
그리고 이 설날 잔치를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아이들이있다.
제사보다는 세뱃돈을 위해 줄을 선 아이들이 세배를 받으면서 가족의 번성에 흐믓했었다.
그러나 올 설날에는 가족들이 없었다. 이제야 겨우 할아버지 얼굴을 알아보는 손녀 노엘라도 내려오지 않았고, 지난해 하노이에서 세배하러 날아왔던 딸 세라도 오지 못했다.
이렇게 COVID19는 화상으로 세배를 받아야 했고, 나 홀로 칠십리시공원을 산책해야하는 이상한 설날을 만들었다.
올 설 제사에는 직계 가족도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적용되었다.
형제들도 함께 제사를 지내지 못하며 아이들이 세배를 받을 수 없다. 수십 동안 명절에 입어 왔던 한복을 입지도 못했고, 매년 50만 원 상당 소요되었던 세뱃돈을 준비할 필요도 없는 설날이었다.
올 설날 대부분 제주도민들은 숨어서 차례를 지냈을 것이다.
풍습에 따라 필요한 제관 3명과 집사 그리고 제물은 준비하는 가족 등 최소한 10여 명은 모여야 설 차례를 지낼 수 있기에 조용하게 창문에 커튼을 닫아야 했을 것이다. 가족이라도 5인 이상이 모이면 안 된다는 이상한 방역 규정이 만들어낸 어이없는 설날 풍습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서울에서 내려오지 못했는데, 설 연휴 제주에 관광객 14만 명이 내려와 온 섬을 북적거리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5인 이상 모이며 코로나에서 위험하니 고향에 오지 못하게 만들고, 관광객들은 친지가 아니므로 숙소와 식당과 관광지에서 14만명이 북적거려도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방역수칙이다.
최근 몇 해 동안 우리 집 설날은 축제 그 자체였다.
가족들이 수십 명이 모여 북적대었고, NLCS에 근무했던 영국인 사위 덕분에 외국인 교사들이 단체로 우리 집 설날 차례와 세배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설에는 나의 첫 손녀 노엘라에게 명절 풍습을 보여 주었고 모처럼 가족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렇게 풍성함으로 어른과 아이 모두가 기다렸던 설날이었건만 그 작은 미물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을 이렇게 바꾸어 놓아버렸다.
이제 제주의 전통적인 설 명절 풍습도 우리 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져 갈 것 같다.
인간이 아름다운 명절 풍습이 이렇게 질병에 없이 무너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예방백신을 기다리는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녀와 추억 만들기 (0) | 2021.05.20 |
---|---|
미스트롯 양지은 (0) | 2021.03.14 |
감귤 산지 폐기를 보며 (0) | 2021.02.03 |
서귀포칠십리 바닷가 (0) | 2021.01.06 |
위미항 '앞 개' 포구, 일본-제주 여객선 기항지였다. (0) | 2020.12.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