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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ol)스토리

카사 델 아구아, 철거하는 날

by 나그네 길 2013. 3. 8.

엊그제(3월6일) 아침,

그 동안 보존과 철거로 대립되어 왔던 건축물 카사 델 아구아를 철거하는 날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철거 시간에 맞춰 경찰은 예방차원에서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러나 철거반대측에서

기자회견으로 성명서를 낭독한 후 찹찹한 표정으로 철거현장을 지켜보았으며

철거공사에 동원된 커다란 포클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건축물을 철거하기 시작하였다. 

 

 

카사 델 아구아(Casa Del Agua)는 스페인어로 '물의 집'이란 뜻이다.

2009년 3월 전체면적 1천279㎡, 2층 규모의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 앵커호텔 모델하우스로 지어졌다.

건물 1층은 사무실 겸 갤러리, 2층은 모델하우스 용도로 마련됐다.

 

건축거장 리카르도 레고레타(1931∼2011)의 유작으로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가설건축물로 지어져 존치 기한이 만료되자 행정 당국이 철거에 나섰다.

행정 당국은 카사 델 아구아를 그대로 둘 경우 이번 일이 선례가 돼

앞으로 변칙적, 편법적 건축물에 대해 단속하기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들어 철거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건축계와 문화예술계 등에서는

세계적 건축가의 유작을 단순히 불법건축물로 여기고 철거하는 것은

문화유산의 파괴행위라며 존치를 촉구해 논란이 계속돼왔다.

카사 델 아구아는 레고레타의 유작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선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내부까지 공개된 작품이라 건축계에서 부여하는 가치는 상당하다.

리카르도 레고레타는

세계 곳곳에 60여개의 예술적 건물을 설계해 전미건축가협회 금메달, 국제건축가연맹상 등을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을 10년 넘게 맡은 건축가이기도 하다.

 

 

제주도에서는 설계도 원본을 토대로 다른 곳에 원형 그대로 건물을 복원하여

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물의 집(카사 델 아구아)은 

건축가 리카르도 레고레타의 영감을 받은 바로 이 자리에 있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오늘 아침 카사 델 아구아는 자신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고고히 서있었다.

나 처럼 처음방문하는 사람과 자신을 지켜주려는 사람들과 철거인부들을 마다 않고 모두 반겨주었다.

 

마치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인류 구원의 사랑을 실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처럼

카사 델 아구아도 건축물로써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아름다움을 지키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카사델 아구아 철거와 관련 경찰은 현장에 출동했지만 특별히 할일은 없었다

그냥 찬반 양측의 돌발 변수에 유의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별문제가 없어 철수시켰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카사 델 아구아 철거에 관심을 보였고 언론들이 취재 경쟁도 뜨거웠다.

나는 여태 언론을 통하여만 접하였던 카사 델 아구아를 오늘 철거하는 날에야 처음 만나보았다.

그나마 내가 중문에 근무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관심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건축물이었기에 감회가 깊었다.

 

정말 건축계의 거장이 설계한 작품이어서 그런지 철거하기에는 아까운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행정기관에서 소송까지 하면서 철거하는 이유도 있겠고

여러 시민단체에서 철거에 반대하는 사유도 다 맞는말일게다,

 

 카사 델 아구아에 대하여

보존과 철거의 논리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은 있으나 명확한 정답은 없을 것이다.

단지 우리시대에 무엇이 최선인지를 심도있게 논의하고

그에 합당한 선택을 해야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 동안 나는 개발과 보존의 대립하는 현장에서 기본 업무를 수행하면서

나의 뜻과 의견을 내세우기 보다는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는 경찰의 입장에서 업무를 추진하여 왔다,

 

그래서 오늘 다행스러운 것은 만약 철거와 보존을 주장하는 양축간이 충돌로 경찰력이 개입하였다면

나도 모르게 이 아름다운 건축물의 파괴를 주장하는 사람으로 기억될 뻔 하였는데 현장이 잘 마무리 되었다.

 

현시대에 다양한 목소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융화시켜 나가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오늘 카사 델 아구아에 난 손톱자국 처럼 다른 한 쪽의 가슴에는 멍든 자국들이 남아있게 될것이다.

 

오늘 철거 현장에서 

반대성명서를 낭독하는 이선화 도의원이 애절한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자신들이 할일에 충실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를 빕니다......

 

 

  

 

그 후, 20여일이 지나 다시 현장을 찾았을 때는 아름다웠던 건축물은 잔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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