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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ol)스토리

팽나무 손괴 사건(?)

by 나그네 길 2013. 4. 9.

어제 늦은 오후에 대포동 마을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이상한 신고를 받았다.

"마을회관 옆에 몇 백 년된 소나무가 있는데 누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제초제를 집어 넣은 것 같으니 빨리 와 달라."

 

이 보고를 받는 순간 10여년 전, 제주대학교 입구 4가로에 곰솔나무 괴사사건이 더 올랐다. 

당시 5.16도로를 3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기 위해서 제주대 입구 도로 가운데 있던 오래된 곰솔 3그루가 문제였다.

공청회를 개최 하였는데 현위치 고수와 이설 등 여러가지 의견들이 팽팽히 맞서면서 공사를 발주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곰솔나무 3그루가 드릴에 의하여 구멍을 내고 제초제를 집어 넣어 고사를 시켜버린 사건이 있었다.

개발 업자 등 여러방향으로 수사를 진행 했지만 진범을 밝혀 내지는 못했으며

제주대 입구에 대체 소나무를 심으면서 마무리 되었던 사건이었다.

 

 

만일 신고사실이 맞다면 이는 마을 차원에서 흉흉한 소문이 나돌면서 지역치안이 불안해질 우려가 있는 사건이어서 현장에 나가갔다. 

현장은 대포 마을회관과 인접하여 심어져 있는 오래된 커다란 팽나무는 봄을 맞아 이제 막 파릇한 싹이 싱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팽나무 주변에는 벤치를 놓아 그늘에서 마을 어른들이 장기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는 곳으로

이 팽나무로 인하여 누군가 손해를 본다든지 또는 개발이 제한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 수사에 더 어려움울 것으로 판단되었다.

  

 

벌써 마을 어른들이 소문을 듣고 나와 팽나무에 뚫린 구멍을 살펴보며 많은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수령은 일백삼십년쯤 되었다고 하는데 수형이 잘 잡혀있으며

대포마을이 상징목 처럼 되어 있어 마을 주민들이 사랑을 받고 있는 팽나무였다.

 

 

팽나무 밑둥이 둘레는 2m50cm 정도로 굵었으며 위로 올라 갈 수록 가지들이 무성하게 벌어져

조경수로는 아주 알맞는 크기의 나무였으며 시가로는 몇백만원 이상 나갈 것으로 보였다.

이러한 나무를 누가 고의로 고사시켰을 경우에는 재물손괴죄로 처벌을 할 수가 있으므로 빨리 범인을 잡아야한다.

 

 

마을 어른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팽나무는 예전부터 마을 회관에 있으면서 동네 모임의 구심점이 되었고,

전기가 없을 때에는 방송시설이 없기 때문에 이 팽나무에 커다란 종을 매달아 놓았으며

마을회의나 비상시에는 종을 쳐서 마을 사람들을 소집하기도 하는 등 마을사람들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무였다.

나무가지에는 정말로 종을 매달아 놓았던 오래된 쇠고리가 그대로 녹슬어 있어 보는 이들이 이야기를 떠 올리게 만들고 있었다.

 

 

땅에서 50cm높이 팽나무 밑둥에 휴대용 전기드릴로 구멍을 8개 뚫렀는데 예상외로 깊이는 7cm로 깊지 않았고,

구멍에는 무슨 물질을 집어 넣었는지 진물을 밖으로 흘러내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과학수사팀에 연락하자 증거물로 수액을 채집하여 국립과학연구소로 보내 성분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마을회장은 현수막을 내걸어 손괴범 목격자를 찾겠다고 했으며,

우리는 직원회의를 소집하여 탐문수사를 강화하면서 범인을 검거해야한다고 다짐하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침부터 대포동 현장에 가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을 수집하였다.  

   

 

오늘 점심시간 때 쯤에 전화가 왔다

"소장님 강력팀장입니다. 대포 팽나무 사건 알지예?"

" 아! 걱정이다. 오전에 다시 현장에 갔다 왔는데 뭐 좀 보이는거 없냐?"

"하 하, 범인 잡아수다."

"뭐라? 범인을 잡았다고? 아! 잘 됐네..어떤 x이야?"

"하하 시청 공원녹지계에서 딱지벌래약을 집어 넣었다고 햄수다.

요전에 마을회관에 아무도 없어서 그냥 해충약만 집어 넣고 갔데 마씸"

  "이런, 이런 하하하.... 다행이다. 수고했어요"

 

다행히 대포동 팽나무 손괴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포마을 전체가 술렁거리던 사건이 이렇게 끝나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서  팽나무를 보는 순간 비록 식물이지만 그 생명이 아까움에 가슴이 아팠었다.

이렇게 싱싱한 나무를 고사 시키는 사람은 나무보다도 못한 무생물이라며 저절로 나쁜말도 나왔었다. 

 

그래서 이 해피앤딩을 기록해 두려고 다시 찾았다.

대포마을 팽나무는 이런 사연도 모르는지 너무도 싱싱한 물오름으로 이 봄을 즐기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강정에 널려있는 현수막의 글귀가 떠 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도 건드리지 마라"

 

자연은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것, 이 자연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것이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 인간에 의해서 파괴되어 버린다면 우리 인간도 결국은 다 죽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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