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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pol)스토리

경찰서 청사 정초석(定礎石)에....

by 나그네 길 2013. 6. 24.

서귀포경찰서 현관 오른쪽에 까막 대리석으로 만든 정초석이 있다.

 

이 정초석은 서예가 고 청석 변영탁 선생님이

서귀포경찰서 청사 준공 기념으로 써 준 글을 새겨 넣은 것으로

청사 신축이전을 기념하며 세워놓은 것이다.

  

 

이 정초석 뒷면에는 청사 신축 공사 당시 간부들과 공사 책임자가 기록 되어 있는데

건축분야별 시공회사와 함께 말석이나마 나의 이름도 들어있다.

 

공사명 : 서귀포경찰서 청사 신축공사

공사기간 : 1993. 11. 12 ~ 1995. 2. 28

설계 및 감리 : 이세완건축사사무소,   건축 토목 : 유성건설(주)

전기 : 세기건설(주),  통신 : 동우통신공사,  소방 : 주식회사 신진,  조경 : 한라조경

 

그리고 당시 경찰서장과 각 과장 및 경리계장과 공사감독 이름이 써 있는 전형적인 정초석이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나와 다른 한 분만 현직에 남아있을 뿐 벌써 역사가 되어버렸다.

 

 

나는 당시 한창 청사 신축공사가 진행 중에 

우연하게 경리계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아 마무리에 공사에 관여하게 되었다.

 

청사신축 공사기간이 1년 1개월로 94.12말까지 준공을 해야 하는데

공사완료를 2개월여 남은 시점인 94.10.11일자로 공사를 주관하는 경리계장 발령을 받았으니

아주 중요한 전투 중에 마지막 작전을 앞두고 최일선 부대장을 갈아 치운것과 같은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그 당시 경리계장 교체사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설들이 나돌았고

어느 신문사에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었으나 정확한 교체 사유는 나도 알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 정보과에서 경사로 승진하여 보안과 외사계로 간지 3년여가 되었을 때였다.

외사계의 업무가 외국관련 업무이므로 행정의 예산지원을 받아

동남아 해외 시찰도 갔다오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업무를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던 2004년 10월초 어느 날이었다.

나는 외근활동 중에 빨리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비상연락을 받았다.

경찰서장이 나를 찾아서 서장실로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서장이 찾는 다는 말에 무슨 일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었다.

당시 경찰서장은 하반기 인사로 부임한지 2개월 여가 지났으나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였고 또 무슨 잘못도 없었으므로 떳떳하게 서장실로 들어갔다.

 

서장실에 들어가자마자 하시는 말씀,

"오경사! 자네가 경리계장을 해 주어야 하겠어!" 

  

이 말 한마디로 그 다음날 1994. 10. 11일자

경리계장 보직 발령을 받아 그 어려운 청사신축공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서귀포경찰서는 서귀포 1호광장 남제주군청 옆에 있었는데

새로 개발되는 신시가지로 경찰서를 이전하기 위하여 청사를 신축 중에 있었다.

 

처음으로 청사신축 공사장에 찾아가 보니

건물 외벽에 타일을 붙이려고 준비하는 중이었고 사무실 바닥은 새로운 소재로 마감공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더 큰 문제는 토목 기반공사와 조경에 대한 예산이 전혀 없이 선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었다.

 

서귀포시 법환동 731-1번지 4,800평 부지에 진행되고 있는 청사신축공사는

부지에 경사가 심하여 경사부분을 파내어 건축을 해야함에도

건축(전기, 통신, 소방) 및 설계비 29억원 상당만 배정되어 있었고

건축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토목공사에 대한 예산은 전혀 책정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건축 시공사에 토목공사를 준다는 조건으로

우선 부지정리 공사를 실시한 상태였으나 예산은 배정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하여 당시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에 예산을 요청하기로 하였다.

시장과 군수는 물론 지방의원들을 직접 만나면서 주민을 위한 경찰서 청사신축을 도와달라고 설득하여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에서 각각 3억원씩 6억원의 추경 에산을 지원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토목공사를 입찰에 부쳐 건축과의 연계를 이유로 건축회사에서 낙찰을 받았고

낙찰 잔금 2,400만원으로 조경공사를 설계하여 다음 해 2월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조경인 경우 예산이 너무 모자라 조경수에 대한 가격은 전혀 책정되지 못하자

제주도내 각 기관단체와 경찰관들에게서 나무를 기증 받기로하고 추진한 결과

무려 150주 이상의 나무를 기증받아 조경 공사를 완료하게 되었다.

 

이 때 나역시 30년생 담밭수 나무를 기증하여 주차장 오른편에 심었는데,

그 당시 너무 황량한 신시가지에 늘 푸른 상록수 위주의 조경을 실시하여

경찰서는 건물에 비하여 조경은 잘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경찰서 청사를 신축할 당시에 서귀포 신시가지에는

서귀포시청과 경찰서 청사 2개만 들어서 있었을 뿐 다른 건축물은 찾아 볼 수 없었으며,

서귀포시청 청사 신축인 경우 12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경찰서 청사는 건축비만 30억원 책정되었으니 경찰예산이 얼마나 빈약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찰서 건물도 본관과 민원실 그리고 창고와 무기고만 있었는데

지금은 민원동 건물이 2층으로 증축되는 등 약간 변화되었다.

 

그러고 경찰서 청사부지는 4,800평이라는 공부상 넓이에도 불구

주차장 면적과 조경 면적이 비슷하게 설계된 것은 계단식 지형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경찰서 청사신축과 이전을 담당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희생을 하였다.

그 다음해 1월에 실시하는 경위 승진시험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영향으로 2년 후에야 승진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5. 3. 17일 청사신축 이전식 때까지 청사 전체를 이전해야 하는데

이전을 위한 예산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군에 사정을 하면서 지방비 임차료를 지원받아 이사를 하였고,

 

청사의 모양과 벽돌 색깔이 주변과 조화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특히 사무실 바닥재를 "도끼다시" 공법에서 이상한 공법으로 설계 변경을 하였기에

완공된지 1년도 안되어 바닥이 갈라지는 등 부실공사에 대한 비난을 모두 내가 감수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내가 경리계장으로 발령나기 이전에 설계를 변경하면서 시행한 공사들이었으므로

사실상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공사였는데

모든 비난을 내가 뒤집어 쓰는 수 밖에 없었으니 좀 억울하기는 했다.

 

그리고 감사도 여러번 받았다.

감사원과 경찰청 본청에서는 현장을 실사하고 나서

모자란 예산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지적사항이 하나도 없었는데,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지방청 어느 감사관이 했던 말이 이십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왜 조경공사를 하면서 다른 기관에 조경수를 기부하도록 관폐를 끼쳤나요?"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논다.

스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개의 눈에는 똥만보이듯이  

공짜를 먹어본 놈은 다른 사람도 자기처럼 얻어 먹는 줄 아는 것이다.  

 

 

  나중에 와서 생각해본 일이지만

아마도 그러한 설계변경과 무리한 공사 추진과정에서

공사의 주무자인 경리계장이 교체되는 사연이 있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당시 경찰서장은 소위 무릉파출소 '러시안 룰렛 사건'으로

경찰서장 취임 3개월여만에 징계 대기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재무관인 경무과장도 1월 정기발령으로 떠나갔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나만 끝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운명처럼 나에게 내려왔고

너무도 열심히 일했던 시기로 기억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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