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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청포도(詩, 이육사)

by 나그네 길 2013. 7. 2.

 

 

청 포 도(이육사)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저항시인 이육사(이원록)

 

이육사(1904년 4월 4일(음)-1944년 1월 16일)는 호가 육사이며, 본명은 원록입니다.

 

이육사는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보문의숙을 거쳐 도산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21년 결혼 후 백학학원에서 수학하고 9개월 동안 교편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1924년 4월 일본으로 유학했다가 관동대지진을 겪은 후에 귀국하여 대구에서 조양 회관을 중심으로 문화활동을 하게 됩니다.

1926년 중국 북경 등지에 유월한국동지회에 참가해 조직활동을 펼쳤습니다.

 

1927년 여름 조재만과 동행하여 귀국했으나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릅니다.

그 때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로 지었다고 합니다.

수인번호를 호로 지었다는 것은 그가 앞으로 그의 삶이 가시밭길 임을 스로 암시했음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고 암울한 시대에 투사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1930년 중외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첫 시 <말>을 발표했고 이후에 총 39편의 시를 지었습니다.

다음 해에 북경과 남경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의열단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1기생으로 입교하여 6개월 과정을 마쳤습니다.

1943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귀국하여 6월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었고

다음해인 1944년 1월 16일 마흔의 짧은 삶을 마감하고 북경주재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광   야

                                                                                                   

                                                                           -  이육사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날릴 때에도

차마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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