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오름에서 대보름 달빛을 맞으며 걸어보고 싶었다.
가을이 왔다지만
요즘처럼 30도를 넘나드는 낮 더위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따가운 햇볕보다는 시원한 저녁에 달빛 걷기를 택하였다.
아무리 대보름이라지만
밤에 중산간지역의 오름을 오르내리는것은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였다.
먼저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따라비 오름을 선택하였다.
오름의 경사가 완만하고 나무가 없어 시야가 확보되어 야간산행에는 좋을 것 같았고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아 만약 조난 등 비상시에도 조속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위치였다.
야간산행용 머리에 쓰는 조명기구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냥 작은 후렛쉬와 폰에 있는 라이트 앱 기능을 쓰기로 하였고,
등산스틱과 긴팔 옷, 먹을꺼(맹질 퇴물)와 물을 준비하고 달빛 걷기를 나섰다.
그리고 중요한 스마트폰 밧테리는 충분히 확보하였다.
서귀포에서 따라비오름을 갈 때에는
서성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성로에서 해비치골프장 앞으로 내려가
원형교차로에서 가시리 방면으로 가다가
가시 입구 4가에서 따라비오름 진입로를 만날 수 있다.
저녁 6시30분에 따라비 오름 입구에 도착했는데
추석날이라서 그 시간에도 오름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은 어둠이 깔리지 않아 오름 오르기가 좋았다.
막 피기시작한 억새를 흔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흐르고
다 자란 풀잎들이 가을 색을 띠기 시작하는 중이었다
오름 능성이에 오르자 구름이 잔뜩 하늘을 덮어 있고
기분 좋은 바람이 방문자들을 반겨 주었다.
역시 따라비오름은 기대에 맞게 아기자기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6개의 분화구 마다 독특한 지형을 자랑하고 있었다.
야자수잎으로 만들어진 오름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너무 좋다.
앞뒤 좌우 어디를 보아도
여기저기 오름들과 어울리는 아름다운 초저녁 풍경을 볼 수있다.
오름정상에 올라보니 전문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철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대보름달을 촬영하러 왔다가 구름이 많아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름을 한바퀴 돌았다.
따라비 오름은 갈 때마다 좋다는 생각이드는 오름이다.
아기자기한 분화구와 완만한 능선뿐만 아니라,
멀리 어둠에 깔려가는 지평선 위에 오름들이 시야를 즐겁게 해준다.
어둠이 더 내리기 전에 다시 오름을 돌기 시작하였다.
오름 주변 가시리 공동목장에는 풍력단지가 조성되어있다.
전기를 일으키는 풍차의 날개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중산간 지역의 목가적인 풍경에 새로움을 더해 준다.
이제 완전히 어두어져간다.
아마도 달빛이 아니었으면 더 이상 걷기가 힘들었으리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따라비 오름!
추석명절을 지내고 느긋하게 산행을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달빛 걷기가 좋다는 말을 하는것같다.
아쉽게도 오늘은
따라비오름에서 한가위 대보름달을 만나지 못하였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달이 얼굴을 내밀기를 싫어 했던것 같다.
후렛쉬불을 밝히며 오름을 내려오는데
"달 떴다~"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족들이 모처럼 산행에 보답을 하려는 것인지
약간이나마 구름 사이로 보름달의 얼굴을 내보여 주었다.
가지고 갔던 맹질퇴물은
돌아오는길에 서성로에 있는 이승이악 오름안내소 주차장에서
환한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달빛걷기를 하였다.
이번에는 보목포구에서 쇠소깍을 왕복하는 코스였다.
이번 추석에는 오름과 바다와 그리고 달과 함께한 풍성한 한가위였다.
중문골프장에도 달빛걷기 코스가 있다고 하는데
언젠가 한 번 걸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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