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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대전 가톨릭신학대생, 하논성당길 순례

by 나그네 길 2013. 10. 18.

가톨릭신자들은 누구나 예비사제인 신학생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신부님과 신학생 등 30여명이 제주도 여행일정 중에

하논성당길 순례를 안내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부터 이미 마음이 설레였다.

 

 

사실 여태껏 신학대생들을 안내해 보지는 못했었기에

약간은 긴장되기도 했다.

 

순례일정 내내 거룩한 표정으로 기도만 하면 어떻할까

 

그리고 많지도 않은 내 해설사 경력과 얕은 지식으로

감히 신학생들을 순례길로 안내하며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기우였다.

서귀포성당에서 신학생들을 만나는 순간 학사님들의 격의 없는 표정과 열정을 느끼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대전가톨릭대학교 신학생들과 하논성당순례길을 걸을 수 있는 영광을 가졌다. 

 

마침 성당에서 우연히 마주친 안나 자매님과 함께하는 기회가 되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면서 좋은 순례 일정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좋은 계절 10월에 순례길 돌담사이로 감귤들이 익어가고

가끔씩 떨어져 있는 감귤을 주어 보기도 하면서 학사님들이 걸음은 가벼워보였다.

 

이 학사님들은 나중에 서품을 받아 대전교구 사제로 봉직하겠지만

오늘 제주도 하논성당길을 순례하면서 무언가를 느껴주시기를 바라며

제주도민의 슬픔과 애환이 있는 '신축교안'과 '4.3사건'에 대하여 집중 설명을 하였다.     

 

 

하논성당 설립과 신축교안(辛丑敎案)

 

산남지역 최초의 성당인 하논성당은

초대 김원영 주임신부에 의하여 1900.6.12.일 서귀포 하논지역에

 한논본당이 설립되었으며 신자는 20(예비자 34)이었다.

 

신축교안은 하논성당의 의욕적인 교세확장에 더하여

조정에서 1900년에 파견한 봉세관이 세금을 무리하게 징수하는 과정에서

금까지 징세를 담당해오던 향임세력을 배제하고

천주교 신자들을 이용하게 되면서 토착세력들이 강한 반발에 부딪혔으며,

 

 1901.5.6.일 대정에서 천주교인과 사설 상무사 조직이 조세문제로 충돌 후,

과격한 민란 주도자들이 선동으로 무장민란을 일으켜 한림을 거쳐 5.28일 제주성을 점령하여

천주교인들을 600여명을 학살한 우리나라 최대의 교난이다 

 

 

신축교안 희생자는 대부분 천주교인이었다.

당시 제주에 파견된 평리원 검사의 공식 집계한 희생자명단 제민물고성첵을 보면

천주교인 309, 평민 8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교회 측에서는 5~7백명 정도의 교인이 피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축교안 수습과정에서 연고가 없는 시신들은 별도봉에 가매장되었다가

조정에서 황사평을 매장부지로 내주어 이장하였고,

제주교구에서는 황사평을 성지로 조성하여 신축교안 희생자들을 기리게 된다.

 

이렇게 천주교가 제주에 들어오는 초기에 많은 신자들이 희생되는 불행을 껶었다.

 

 

제주의 불행한 역사 4.3사건

 

194843일 새벽 2,

남조선 로동당 제주도당은 김달삼 등 350여 명이 무장을 하고

제주도 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다.

이들은 경찰관과 지역 요인들의 집을 습격하여 경찰관과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이것이 제주도 4.3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후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이 토벌대로 제주도에 들어와

제주도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안선 5km이상 중산간 소개령과 함께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이 개시되었다. 

 

4.3사건 기간 중에

 "19549월까지 66개월간 무장대와 토벌대간 무력 충돌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 13,564명이 무참하게 희생되었다."

여기에서 '희생자의 78% 상당이 토벌대의 국가 공권력의 남용에 의하여 희생되었다."고 한다.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에는  "당시 희생자 수를 정확히 알 수가 없으며

잠정적으로 4.3사건 인명피해를 25,000 ~ 30,000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토벌군에 의해 중산간 마을 가옥이 39,285동이 소각되었고,

100명이상 희생된 마을도 45개소에 이른다"고 한다.

 

그 당시 제주도의 인구가 대략 30만명인것을 감안한다면

무려 제주도민의 10%상당이 희생된 너무나 안타깝고 불행한 우리 제주도의 슬픈 현대사인 것이다.

 

 

제주의 근대사에 이러한 아픈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그리고 불쌍한 민초들끼리 아무것도 모르고 싸우며 죽였던 그런 뼈아품과

거대한 토벌군들에 의해 초토화 되었던 중산간 마을들과

 

그 들에 의하여 학살된 3만여명의 희생자들.....

이 모두를 상생과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한다. 

 

 

하논성당순례길은

제주지역 천주교회의 역사와 하논분화구의 아름다운 자연과

흙담소나무길과 매일올레 시장을 지나는 지역주민들이 삶과

천제화가 이중섭거리에서 문화의 향기를 느껴볼 수 있는 길이다.   

 

서귀포시내 10.6km를 걸으면서

이렇게 제주도의 모든 것을 느껴볼 수 있는 길은

오로지 하논성당길 뿐이 없을 것이다. 

 

 

우리 제주교구 신학생들은 광주가톨릭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이 학사님들은 대학 4년과 대학원 3년 및 군종교구 등 무려 10여년의 과정을 거쳐야 하며

 

매년 1월이 되면 교구에서 몇 분이 사제서품을 받게 되는데

신학교에 입학한 학생 중에서 많은 학생들이 탈락을 할 정도로 어려운 길을 통과한 분들이다.

 

그리고 사제는 평생을 하느님을 위하여 자신을 봉헌하며

신자들의 영적 지도자로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사제들을 존경하며 

비록 친구의 아들일지라도 신학대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학사님'으로 존칭하고 있다.

 

우리 성당에서도 어릴적 부터 귀여움을 받아왔던 복사가

어느새 신학생이 되더니 사제서품을 받아 이웃 성당에 보좌신부님으로 계시는 것을 보면

그 신부님을 볼 때마다 흐믓한 기분이 들곤 한다.  

 

 

오늘 하논성당길 순례일정은 면형의 집까지였다. 

오래된 홍로성당터와 100년이 넘은 감귤나무와 독특한 제대가 있는 성당이 있는

복자수도원 면형의 집에서 학사님들이 표정은 즐겁고 순진하기만 하다. 

 

대전교구에 비하면 역사도 전통도 그리고 시설도 부족한 서귀포지역이지만

그래도 나름 하논성당길을 걸으면서 좋은 일정이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순례를 마치면서 나는 선물을 받았다.

잡고 있기만 하여도 기도가 된다는 손에 잡는 나무십자가였다.

 

 

사제를 위한 기도

 

지극히 사랑하올 예수님,
주님을 충실히 따르고 사랑하는
사제들을 굽어 살피시고
그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증언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믿음을 따르고 지켜가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봉사를 본받고 실천하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가난을 받아들여 자유롭게 하소서.
사제들이 주님의 겸손을 배워 스스로 낮추게 하소서.
사제들이 언제 어디서나 주님만을 바라고 의지하여
하느님 백성의 길잡이가 되고
일치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사제들이 모범이 되어
성실한 젊은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기꺼이 응답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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