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學徒兵, student soldier)
또는 학도 의용군(學徒義勇軍)은
학생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가한 병사이다.
여기에서의 학생은 고등학생과 그 이하의 소년들을 나타낸다.
좁은 의미로는 6.25에 강제로 징집된 학생들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6.25전쟁 후에 태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학도병에 대하여는 영화나 소설로만 보아왔을 뿐 다른 나라의 이야기였다.
2010년도 학도병을 주제로 하는 영화 '포화 속으로!'가 개봉 하였지만 관람을 하지도 못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 '포화속으로!'는
2010년 최단기간 100만 관객기록을 깨는 등 나름 성공작이었다고 한다.
영화 '포화속으로!'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북한의 침략 전쟁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주제로 했다.
당시, 북한군의 절대적인 화력우세로 국군은 계속 남쪽으로 후퇴를 하고 있었고,
이에 대응해 UN 에서 주도한 연합군이 한국전쟁에 전면 참여하게 된다.
연합군이 참전하기 전까지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야만 버텨낼 수 있었던,
국군은 낙동강 전선 사수작전의 일환으로 포항에 71명의 학도병을 남겨둔다.
'학도병'들은 북한군의 남하를 11시간이나 지연시키며,
낙동강 전선 사수 더 나아가 전쟁의 전세를 뒤짚는 초석을 마련하지만,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산화한다.
최근 우연하게도 학도병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바로 6.25전쟁 당시 중문중학교 학생 89명이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한 뜻을 기리는
학도병 참전기념비를 건립하여 제막식 기념행사에 초대를 받았던 것이다.
중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꿈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리 나라가 풍전등화였다고는 하나
나역시 16세의 꽃다운 나이 중학생이었다면 자원입대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중학생인 내 아들에게 전투에 참가하라고 자원입대를 허락할 수 있었겠는가?
기념식 행사 내내 나는 이 학도병 어르신들에 대하여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드렸다.
6·25전쟁 당시에는 부문중학교(4년제)였던 중문중학교에서는
이 학교 전교생 219명 중 1학년 80명을 제외한 2,3,4학년 139명 전원이 학도병에 지원했다.
신체검사 탈락자를 제외한 89명이 목숨을 걸고 학도병으로 참전했으며,
치열한 전투 중에 8명이 산화했고 현재 생존자는 18명으로 확인됐다.
학도병에 자원입대하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당시 교통수단도 없어 서귀중학교에서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받기 위하여
중문에서 서귀포까지 왕복 50km를 학생 139명이 걸어서 갔다 왔다고 하였다.
그날 이 분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이렇게 단체로 학도병에 지원했는지 직접들을 수 있었다.
학도병으로 참전하였던 한 분이 신체검사에서 키가 작아 불합격을 받자
다시 해달라고 발 뒷꿈치를 들었는데 검사관이 모른척 합격을 시켜 주었다고 하면서
구구절절 참전기를 이야기 하는 것을 들으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청문회만 개최하면 병역문제가 도마에 오른다.
어느 장관은 시력이 나빠서 또 어느 정치인은 몸무게가 모자라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군입대를 하지 않고 멀쩡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우리는 안다.
국가 사회의 지도층 자녀들이 제대로 군에 입대한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과연 우리나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즈' 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분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학도병 기념비 건립은 1950년 8월20일자
제주신보(현 제주일보)에 소개된 ‘부문중학교 학생 35명이 학도병으로 지원했다’는 기사가 단초가 됐다.
1950년 8월20일자 제주신보(현 제주일보)에는 ‘부문중학교 학생 35명이 학도병으로 지원했다’는 제목으로
‘괴뢰군의 남침 이후 민족의 수난을 타개코저 부문중학교에서도 (학도병)지원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학도병 지원자 명단 35명이 소개되어 있었다.
이 기념비를 건립한 중문중학교 총동문회에서는
학도병으로 출전했던 한 인사로부터 당시 1학년을 제외한 전교생이 학도병에 지원해다는 진술을 얻어냈다.
도시락을 싸들고 걸어서 학도병 모집에 따른 신체검사가 열린 서귀포중학교를 찾았고,
M1소총을 세워놓고 소총보다 키가 큰 사람은 합격, 키가 작은 사람은 불합격됐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오면서
학도병 참전 기념비 건립이 구체화 되어 제막식까지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 기념비에는 참전 학도병 89명의 명단을 학년별로 새겨 놓았다.
이 꽃다운 나이에 자원입대 여러 전투에 참여하면서
우리나라를 지켜낸 학도병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사랑을 드립니다.
아울러 전투 중에 산화한 여덟 분의 호국영령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학도병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발견한
이 학도병이 편지를 눈물로 읽으며 여기에 옮겨 놓았다.
제주일보 기사 6.25당시 학도병으로 나선 선배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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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중학교 총동문회, ‘학도병 6·25참전 기념비’ 제막
“꽃다운 시절, 나라를 지키기 위해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든 선배님들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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