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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정난주순례길, 제주의 아픈 역사 현장을 걷는다.

by 나그네 길 2015. 9. 11.

정난주 순례길은

제주 근세사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이다. 

 

우리는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제주의 유배사와 신축교안,

그리고 일제에 의한 수탈과 4.3사건 및 예비검속으로 인한 주민학살 현장을 만날 수 있다. 

 

2015. 11. 7일 개장하는 정난주순례길은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리에 있는 정난주 마리아 묘에서 시작된다.

 

 

정난주 순례길은 정난주 유배터를 지나

추사적거지 - 대정향교 - 사계해안도로(발자국화석지) - 예비검속자 희생 섯알오름

- 일제의 수탈지 알뜨르비행장 - 순교자 이규석 묘역 - 모슬포성당까지 약 13.8km를 걷는다.

 

 

순례길 코스 대부분은 제주의 농촌지역 돌담 골목들과

바닷가로 모솔길로 구성되어 걷는 동안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제일 먼저 추사 김정희 적거지를 만난다.

정난주 마리아와 함께 제주 유배사의 중요한 인물이 살았왔던 현장이다.

 

고려와 조선조를 통하여 제주도는 유배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200여명이 넘는 유배자들에 의하여 제주에 새로운 문화가 발달했고,

 

추사 김정희는 8년 3개월을 머물렀던 이 적거지에서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암흑의 역사도 중요하다.

이 삼의사비 천주교인들을 비난하는 글로 가득하다.

 

1902년 5월 천주교인들이 위세에 반발하여 일어났던 이재수의 난은

제주민과 천주교회 양쪽의 모두에게 불행한 역사이다.  

 

교회에서 신축교안이라고 부르는 이 민란으로

농민 8명과 천주교인 309명이 제주성 관덕정 등지에서 사살당했다.

 

 

이러한 신축교안의 전개와 수습과정을 돌아보면서 역사는 말한다.

 

"신축교안은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떤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

 

우리는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길에서

옛 대정현에 있었던 돌하르방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제주의 다른 지방의 돌하르방들과 비교하여

크기와 모양에서 약간씩 특징있는 생김새를 알아보는 것도 재밋다.

 

보성리에 있는 성터를 지나면 농로길이다.

방사탑과 대정향교로 이 길은 시원하고 아름답다..

 

마늘을 심고 있는 아낙들과

참깨를 널어 말리는 풍경들이 전형적인 농촌 들녘의 모습이다.

 

이 농로길은 바쁠것도 없이 재잘거리며 걷는 것이 좋다

 

단산이 보이는 길에서 방사탑을 만난다.

 

아쉽게도 단산지역에도 우후죽순 숙박업 팬션들이 들어서고 있어

주변의 풍광은 예전만큼 못하다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던 중심지역이었 

그래서 제주도에 3개 뿐인 향교(제주향고, 정의향교, 대정향교)가 여기에 있다.

 

이 대정향교에서는 지금도 봄과 가을에 석존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순례길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팁, 백조일손묘

 

6.25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주민들을 수십명을 학살한 곳

그래서 시신을 구분할 수가 없어  함께 매장하고 자손은 하나라는 뜻으로 명명했다.

 

 

순례길 주변의 또 하나의 팁,

대정읍 하모리 이교동 4.3당시 주민학살터

아직은 표시판 조차 없는 밭으로 남아 무언가 부족하다는 아쉬움에 머문다.

 

1948. 12. 13일 상모리의 자연마을인 이교동(伊橋洞)’ 향사 앞밭에서

토벌군들이 난사한 요란한 총격으로 모슬포 주민 41명이 희생되었다.

 

 

사게리 마을안길이다.

제주의 전형적인 농촌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사계리 형제섬 해안도로!!!

 

저 멀리 형제섬이 보이는 바닷가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람과 동물발자국 화석 산지가 있다.

 

여기에서 한 번쯤 쉬어 가는 것도 좋다.

바닷 바람을 맞으면서 형제섬과 송악산 그리고 발자국 화석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멀리 섯알오름이 보인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자그마한 오름이 삼방산과 어울려 아름답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예비검속이라는 이름으로 군(軍)에서 주민들을 검거하여 학살한 장소이다.

 

전쟁은 이렇게 인간을 무자비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무리 험난하다고 해도 전쟁보다 평화를 추구해야 하는 까닭이다.

 

 

 

 

섯알오름에는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고사포진지가 아직도 단단하다.

이 장소는 오래 전부터 군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고 하여도 법은 있어야 한다.

 

마을주민 210명을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체포하여 사살하고 암매장 해버린 섯알오름,

우리는 이 슬픈 역사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영령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다시 넓은 들로 나오면 일제에 의한 수탈의 사적지가 나온다.

여기 저기 분포되어 있는 일본군 비행기 격납고와 알뜨르비행장이 있다.

 

 

일본군은 이 비행장건설을 위하여 많은 주민들이 강제동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몇십만평에 달하는 비행장 부지를 쌀 몇포대를 주면서 강제로 수탈했는데,

광복이후에는 국유지로 변경되어 아직까지도 공군에서 소유하고 있다.

 

이게 바로 힘없는 나라 국민들이 서러움이다.

 

어느덧 모슬포 마을 안길로 접어들 때 쯤,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 쌓인 약간은 초라한 무덤을 만난다.

 

신축교안 당시 희생당했던 '순교자 이규석의 묘'이다.

 

신축교안 당시 천주교인 희생자가 309명이라는 기록은 있으나,

들에 의하여 순교자라고 당당하게 묘비명을 써 놓은 희생자는 이규석이 유일하다.

 

<사진 및 자료 제공 : 제주대 사학과 박찬식 교수>

 

"1901년 신축교난이 일어나자 당시 먼 친척이며 대정현의 관노비였던 교난의 선봉장인 이재수가 1901415일에 이풍헌 천주교를 믿겠느냐. 안 믿겠다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난 죽어도 좋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해 그의 목을 쳤다. 그러자 그의 아들들이 달려들어 말렸으나 이재수는 큰 아들 이기문과 셋째 아들 이기만, 넷째아들 이기생도 차례로 목을 쳐서 순교 시켰다." (고증자 마백락)

 

<비문에는 "천성이 정의적 영웅적이였으며 천주교 신앙 신축년 4153부자 공 순교"라 써 있다>

 

순교자 이규석의 묘에서

제주 천주교회의 아픈 역사 신축교안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순례길의 종착지 모슬포성당에 도착한다,

 

오른쪽에 보이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재선충에 걸려 베어질 운명에 있지만

성당의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모슬포성당내에 있는 이 '사랑의 집'은 1954년에 지어진 대정지역 최초의 성당이다.

 

당초 이 성당 건물은

6.25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에 있던 중공군 포로들을 동원하여 외벽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제주교구에 남아있는 성당 건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일 것 같다.

 

 

오늘 제주교구 순례길위원회에서는

제주의 아픈 역사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정난주 순례길을 찾아

공식 개장식을 앞두고 사전 답사하였다.

 

총 13.5km상당, 천천히 걸어서 3시간 이상이 소요됨에도

수려한 자연 풍광과 역사가 함께하는 스토리가 이어져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조선조 후기,

당대 최고의 실학자 숙부 정약용 나주 정씨 가문, 정약현의 장녀로 태어나

조상 10대가 조정 벼슬을 지냈던 명문가 황사영의 부인이었던 정난주 마리아.

 

단지 천주교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제주에 유배되어

노비로 38년을 살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던 여인.

 

이렇게 슬픈 역사의 길을 함께 걸었던 오늘 제주의 날씨는 너무나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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