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수도원의 역사를 훑다보면 두 개의 거대한 봉우리를 만난다.
하나는 ‘성 베네딕도(480~547)’이고, 또 하나는 ‘성 프란치스코(1182~1226)’다.
베네딕도는 그리스도교 초기 수도원에 주춧돌을 놓았다고 한다면,
프란치스코는 무소유의 삶으로 수도원에 영적 나침반을 제시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신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성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며
現 제266대 교황 성하는 즉위명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탈리아 중부 아시시에 있는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프란치스코’란 이름 하나만으로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정교(政敎)유착의 특권을 향유하며 총체적으로 탈복음적인 궤적을 그리고 있을 때,
이탈리아 중부의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탄탄한 일생이 보장되었던 청년 프란치스코는
1207년 허물어져가던 성 다미아노 성당 십자가 밑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는다.
“내 교회를 다시 지어라"
그로부터 한 사나이가 피나는 고난의 여정으로 가난한 성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교회를 짓기 위하여
이를 곧이곧대로 알아들어 맨손으로 흙과 돌을 들어 나르며 성당을 보수한다.
하지만 이 말씀은 몰락 위기에 처한 중세 교회를 위한 ‘세기적’ 명령이었다.
이를 깨달은 프란치스코는 탁발 수도회를 창설하여 위대한 개혁의 첫걸음을 내디딘다.
그가 표방한 것은 복음으로 돌아가 청빈, 겸손, 소박의 삶을 몸소 사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교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던 세 가지 병폐인 부, 권력, 사치에 대한 명처방이었지만,
그 파급력은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힘으로 밀어붙인 무력 혁명도 아니요,
센세이셔널한 사상으로 새 시대를 연 이데올로기 혁명도 아닌,
그저 소박한 실천운동이었지만 세기를 거듭할수록 파장은 기하급수적으로 거세어져 갔다.
성 프란치스코는 ‘개혁’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고
교회의 모든 스펙트럼을 아우르면서 수세기에 걸쳐 일어난 쇄신의 단초를 열었다.
그리하여 그는 동료 형제들을 동지로 얻었고, 숱한 추종자들을 협력자로 얻었다.
‘제2의 예수’라 불렸을 만큼 존경 받는 성 프란치스코가 일으킨 운동의 여운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증폭되면서 중세 가톨릭을 제자리로 돌려 놓게 되었다.
아시시의 성 다미아노 성당에는
프란체스코의 영적인 동반자였던 클라라 수녀의 유해가 있다.
성녀 클라라는 아시시의 귀족 집안 출신이지만
아버지의 반대를 뿌리치고 모든것을 버린고 프란치스코를 따랐다.
11살 아래였던 클라라 수녀는
프란치스코에겐 친구이자, 누이이자, 함께 영성의 길을 가는 동반자이기도 했다.
다미아노 성당 안의 조그만 정원에는 장미정원이 있다.
그러나 장미에는 아무리 봐도 가시는 보이지 않는다.
“젊었을 때 프란치스코 성인에게도 여성에 대한 욕정이 일어났다.
그걸 이겨내기 위해 그는 이 근처에 있는 장미덩굴 위에서 자신의 몸을 굴렸다.
가시가 몸에 찔리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통해 그는 욕정을 극복하고자 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가 계속 장미 가시 위에서 뒹굴자
하느님께서 이 장미들의 가시를 없앴다고 한다.
이 일화는 대단히 인간적이다.
가톨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사랑받는 성인으로 추앙받는 프란치스코도
욕망 앞에서 고민하고, 싸우고, 좌절하고, 다시 싸우고 하는 과정을 거듭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가 걸었던 길은 우리에게 ‘나도 당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 길은 당신도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짐승과 새들과도 말을 나눌 수 있었다는 청빈의 상징 성 프란치스코,
무소유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던
그의 수도회는 중세 신분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기도 했다.
프란치스코는 44세에 숨을 거두었다.
죽기 2년 전에 그는 동굴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몸에 예수의 다섯 상처 오상(五傷)이 나타났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인의 이름으로 즉위명 선택하시고'
성인의 청빈과 겸손을 본받아 가톨릭교회의 여러가지 개혁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지난 2010년 보스니아의 '성모발현지 메주고리예' 순례 중에 찾았던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느꼈던 감동을 다시 떠올리면서
아기 예수의 탄생 성탄절을 맞으며
탄핵정국으로 어지러운 이 나라를 개혁해 줄 진정한 성자의 탄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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