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한라산 영실에서 만난 '하원수로길'을 걷다가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 수도교를 떠 올렸다.
기원전 300년 경 총 16km 상당의 '아피아 수도'로 부터 시작된 로마제국의 수도는
그 후 수백년 동안 유럽과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지역 등 천 km 이상이 건설되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팍스 로마'를 실현하는 주요 인프라가 되었다.
이러한 로마의 수도는
수돗물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약 80% 상당의 지하수로를 건설하여
1500년 경까지 수돗물을 이용했다니 정말 로마인들의 공공성은 대단하다.
로마의 수도에 비하면 하원수로는 초라하기조차 하다.
한라산 영실의 하원수로는 1950년대 후반에
서귀포시 하원마을에 벼농사를 위한 논을 만들기 위하여 수로를 건설했다.
물이 귀한 제주에는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에 쌀 역시 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철 물이 흐르는 한라산 영실계곡에서 하원마을까지
약10km 상당의 수로를 만들고 마을 저수지에 물을 대어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하원수로를 누가 기획하고 어떻게 재원을 조달하고 건설했는지 상세한 자료를 찾기 어렵다.
그렇지만 한라산 영실 1200 고지 계곡물을 보내기 위해
시멘트로 수로를 만드는 공사가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사로가 심한 계곡을 지나는 수로는
로마 수도교와 비슷하게 다리처럼 만든 것을 보면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를 떠 올리게 된것도 같다.
하논수로길을 걷던 중에 소중한 자료,
건설 당시 시멘트 수로에 써 놓은 글자를 발견했다.
"第1号架樋 1964.9.15."
제1호 가교(첫번째 다리)를 1964.9.15일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하원수로는 알려진 것처럼 50년 말이 아니라 1964년에 건설된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동안 아무도 시멘트 수로에 적어 놓은 이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1900년대 초기에 만들어진 이와 비슷한 수로가 있다.
중문 천제연폭포에서 베릿내 마을에 논농사를 짓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수로이다.
그러나 하원수로는 물공급이 시원치 않아 그리 오래 운영되지는 못했던것 같다.
로마에서는 물이 관리하기 위하여 수도에 덮개를 덮고 지하수로화 하였는데 비하여
하원수로는 덮개가 없었으므로 물이 흐르는 과정에서 수분증발과 낙엽 등 수로가 막혔을 것 같다
이 하원수로는 1970년대에는 한라산 영실코스 등반로로 이용되었다.
당시에는 1100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걸어서 등산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나 역시 한라산 정상을 거쳐 영실에서 이 수로를 따라 걸어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로마인 이야기'에서 수도건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로마는 수로가 있었기에 식수와 농업용수 그리고 유명한 목욕탕까지 운영할 수 있었고
이 수로를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 없는 보수공사를 실시하였기에 2000년을 살아 남았다.
로마 수도나 가도와 같은 아무리 좋은 인프라일지라도
그것을 유지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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