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 성탄절이 다가오면
성당이나 교회는 물론 여러 곳에서 성탄트리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그리스도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일종의 연말 축제 형식으로
우리 일반사회에 정착된지는 오래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성탄구유와 함께 대표적인 성탄 장식물이며
생명의 나무에 불빛과 각종 장식을 달아 세상의 빛이자 생명인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의미이다.
이러한 성탄 트리가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고증은 없으나
1600년경 독일의 성당에서 성탄시기에 상록수 나무에 과자를 달고 촛불을 둘러 놓아
생명나무를 상징했던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성탄트리는 상록수로 만들기 때문에
1907년경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유럽으로 건너가 한국전나무로 명명되었으며
이 후, 한라산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소재로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빛으로 생명을 밝히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상징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언제부터인가 상업주의에 휘말리며 세속화 되어 버렸다.
몇 년전 스리랑카에 96m 높이 세계 최대의 트리를 만들던 중에
콜롬보 란치드 추기경이 반대하면서 중단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란치드 추기경은
“이 공사의 책임자들은 그 돈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주거나
빈민을 위한 집을 지어 주는 데 써야 한다”고 하면서,
"크리스마스는 어려운 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때이지 돈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시장 경제는 종교를 이용해 성탄절을 팔아먹는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 때 성당에서도 생명나무를 상징하는 성탄트리를
커다란 전나무나 삼나무 등을 잘라 성전에 세워 놓고 장식을 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자연의 소중함을 인식 녹색 조화나무를 이용하여 트리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개신교회 역시도 성탄시기가 되면
언제부터인가 요란하게 반짝였던 교회의 붉은 십자가 깜박이 불빛들을 자제하며
성탄의 의미를 생각하며 조용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관례적인 크리스마스 트리를 많이 볼 수 있다.
예쁜 나무에 전기줄을 감아 불을 반짝이며 밤새 나무의 휴식을 방해하는 성탄트리,
이제는 성탄트리도 생태 영성적 관점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성찰해 보아야할 시기이다.
아래는 제주시 탐라문화광장에 세워있는 페트병을 이용하여 만든 성탄트리이다.
페트병이 환경의 가치를 일깨워주면서 4m 규모의 대형 트리로 다시 태어났으니
생태 영성의 삶을 살아가려는 성당의 성탄트리보다도 더 아름답고 사랑이 넘치는 것 같다.
인간은 자연을 만들 수 없다.
아무리 아름답게 성탄 트리를 꾸민다하여도 북유럽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만들 수 없듯이
나무에 어떠한 성탄트리를 장식하여도 하느님이 창조물인 생명 나무보다 못하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의미는 사랑과 생명이다.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성탄트리를 꾸미기에 보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생태 환경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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