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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오사카성의 해자(垓字)를 보면서

by 나그네 길 2019. 6. 21.

오사카성의 해자에서 일본 역사의 중심을 이루는 사무라이(武士)를 생각했다. 


해자(垓字)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城) 주위에 파서 만든 연못을 뜻하는데,

오사카성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두 개의 해자는 정말로 난공불락(難攻不落)인것 같다. 



우리나라의 성에서는 제대로운 해자를 볼 수 없다.


이는 산성(山城)을 중심으로 하는 방어 개념으로 해자의 필요성이 크지 않을 뿐만아니라

평지에 있는 경주의 월성은 남천, 백제의 풍납토성은 한강, 부여의 사비성은 백마강 등

해자 대신에 자연적인 강과 하천을 이용하는 방어 개념이었으며


특히 강화도는 바다를 해자로 이용해 몽고군의 침략을 이겨내기도 했었다.



오사카 성의 해자는 넓고 높고 깊다.

옛날 냉병기 시대의 군사전략 운영에 있어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 해자를 넘을 수 없을것 같다.

 


이러한 해자는 가장 무서운 기마병(騎馬兵)을 무력하게 만들고

성벽을 오르는 사다리나 성문을 부수는 충차와 같은 공성장비들도 쓸모 없어진다.  

 


오사카성을 건설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들 히데요리에게 이 성을 물려주었는데


당시 쇼군(將軍)이던 도꾸가와 이에야스도 이러한 해자를 공략하지 못해 함락시키지 못하고

성을 포위하여 고립시키는 방법으로 항복을 받아냈을 뿐이다.



이러한 해자는 평지가 많은 유럽과 중국에도 발달이 되었으며

성을 방어하는 개념으로 효과적이었다.


<일본 오사카성의 해자>


<영국 Caerphilly Castle 해자>


<중국 북경의 자금성 해자>


이러한 방어용 해자들에 비하여 경주 월성의 해자는 관상용 연못으로 조성한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외적의 침략에 대하여 그리 큰 대비를 하지 않았다.  


<경주 월성의 연못해자>


우리나라의 해미읍성 등 여러 방어진지에도 해자는 있다.

그러나 오사카성의 해자에 비하면 아이들 장난 같은 수준이다.



일본은 섬나라의 특성으로 외적의 침입이 없었음에도

이러한 방어용 해자를 파놓은 것을 보면

 

사무라이들이 권력투쟁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전란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오사카성의 유명한 천수각은 문화재적 가치는 거이 없는것 같다.

1980년대에 시멘트로 복원을 하였고 엘리베이터까지 운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웅장한 해자나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없다.


그러나 피라미드와 만리장성 그리고 유럽의 거대한 성들까지 부러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러한 건축물을 쌓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희생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이렇게 큰 돌을 옮기고 깍아내고 쌓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인력이 필요했을까,

결국 세기적인 건축물들은 모두 민초들이 희생 위에 왕과 귀족들이 풍요를 누렸다는 증거일 뿐이다.




일본 오사카성의 해자는 유럽과 중국에 비하여도 뒤지지 않을것 같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읍성들의 해자는 아주 초라한 모습으로 보이나

그래도 많은 외적의 침입을 이겨내었으니 나라의 존립은 군사력보다도 백성들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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