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인천의 차이나타운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두 번 방문했는데,
1년 차이를 두고 방문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너무도 달랐다.
지난 해 첫 번째 방문에서는
차이나타운에 가득한 사람들을 구경하고 중국 음식 먹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중국식 코스요리와 함께 마시며 떠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두 번째 방문은
인천차이나타운의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중국 음식점 거리의 골목으로 돌아가면 오래된 진짜 차이나 타운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불호텔은 1888년에 3층으로 지어진 조선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11개의 침대 객실을 운영하면서 제물포항 개항에 따른 이방인들이 투숙했던 시설,
당시 침실과 연회장 그리고 식기들까지 전시되어 옛 모습을 돌아볼 수 있다.
인천차이나 타운에 해안성당이 있는 것은 천주교 신자를 자처하는 나도 처음 알았다.
해안성당은 1950년대 당시 4,000여명에 달하는 화교들의 선교를 위해 설립된 성당으로
당시에는 중국어 미사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한국인들이 더 많아 한국어로 진행한다.
설립 당시는 '선린성당'으로 불리다가 '해안성당'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특이하게도 제대는 신자가 아닌 제단을 바라보면서 미사를 드렸던 모습,
1966년에 완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년) 이전에 제대 양식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일본 제일은행 인천지점 건물이 보이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은행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다.
1899년에 일본인에 의해 지어진 석조건물로 자세히 보면 한국은행 본점 건물과 많이 닮았다.
짜장면 박물관은
처음 짜장면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구)공화춘’을 개조해 박물관으로 조성했다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 제물포구락부 건물,
개항기 인천에 거주하던 미, 영, 불, 일본 등 외국인들이 친목 도모 사교장으로
1901년에 지어진 벽돌로 된 2층 건물로 내부에는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이 있다고 한다.
청일 조계지 경계 계단 좌측에는 청국, 우측에는 일본의 조계지였는데,
각각 중국과 일본의 행정권과 경찰권이 행사되었던 곳으로 우리나라 땅에 있었던 다른나라이다
이렇게 주자학만을 신봉하며 백성을 수탈했던 사대부들이 나라 조선은 망했다.
송월동 동화마을은 아이들이 천국이다.
철거논의로 수난을 받고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조선이 개국하면서 고려조와 관련된 역사는 물론 왕씨들까지 모두 죽여버렸듯이
과연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오는 역사들을 모두 지워버리다면 좋은가?
지난 해 첫 방문에서는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뿐이었는데,
이렇게 두 번째 인천 차이나타운 방문은 역사와 문화 탐방으로 이어져 흐믓하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소주병과 고추장, 컵라면 등을 가득 담고 외국으로 나간다.
지난번 4박 5일 동안 말레지아 등 동남아 지역을 방문했던 팀은
4일 동안 밤새 '섯다' 노름판을 벌리고 술만 마시다가 왔다고 자랑하는 말을 들었다.
외국의 문화와 먹거리를 즐기 못하여 숙소에서 술을 마실수 밖에 없으니 불쌍하다.
그래서 '여행은 어디를 가는가 보다 어떤 사람과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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