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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성당 120년사

신축교안 순교자 이규석 3부자 묘비

by 나그네 길 2020. 9. 30.

신축교안 희생자 이규석(李圭錫, 1845~1901, 세례명 미상)은 제주도 대정읍 하모리에서 나고 자랐으며 서귀포에 한논본당이 설립되자 가족과 함께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그는 1901년 5월 발생한 신축교안(이재수의 난) 중에 민군에 체포되어 배교 강요에도 굴하지 않고 190161(음력 415) 두 아들과 함께 현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1961년 후손들이 이규석의 순교를 기려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이규석의 무덤에 순교자 묘비를 세움으로써 제주 천주교회에 알려져 정난주순례길코스로 지정되었다.

 

신축교안 교민 희생자 이규석 3부자와 관련하여 영남교회사연구소 마맥락 연구위원이 고증한 글은 다음과 같다.

 

순교한 이규석(본명 미상)은 고부 이씨 12대손으로 1845년 이수형의 아들로 제주도 대정현에서 태어났다. 큰 부자였던 이규석은 물려받은 재산을 자선사업을 위해서 희사했다. 그의 집안이 언제부터 천주교를 믿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1899년 파리외방전교회 빼이네 배 신부와 김원영 아우구스띠노 신부가 제주도에서 전교할 때부터 열심한 신자들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즉 당시 대정현의 천주교회당으로 중문 색달리(서귀포시 여재동)에 공소를 차리고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01년 신축교난이 일어나자 당시 먼 친척이며 대정현의 관노비였던 교난의 선봉장인 이재수가 1901415일에 이풍헌 천주교를 믿겠느냐. 안 믿겠다면 살려 주겠다.고 하자난 죽어도 좋다. 천주교를 믿는다고 해 그의 목을 쳤다. 그러자 그의 아들들이 달려들어 말렸으나 이재수는 큰아들 이기문과 세 번째, 이기만, 넷째아들 이기생도 차례로 목을 쳐서 순교시켰다.

 

그런데 큰아들 이기만은 크게 다쳐 죽은 듯했으나 다시 살아나서 밤중에 처가가 있는 중문으로 가 치료를 해 살아났다. 현재 세분의 순교자 묘소는 모슬포읍에서 동남쪽 7백 미터 지점에 있는 동글 동산 옆의 밭뚝에 묻혀있다. 그가 처형된 장소는 모슬포읍내 북쪽에 있는 노른 고지 동산이었다.”(글 마맥락)

 

<순교자 이규석의 묘비명 내용>

 

(앞면)

留鄕座首 李圭錫公 之墓

유향좌수 이규석공 지묘

 

(뒷면)

공은 입도시조 이세번 공의 12대 손 인데,

天性正義的 英雄的이였으며 天主敎 信仰 辛丑四月十五日 三父子 共 殉敎

(천성이 정의적 영웅적이였으며 천주교 신앙 신축년 4153부자 공 순교)

순교자 형제 손 완율, 정팔, 정오, 정용

 

(좌측면)

단기 429433일 영립

 

하논에 있는 신축교안 희생자 신아오스딩묘

이재수의 난(신축교안) 당시 희생된 천주교인의 공식 기록은 309명이다.

그러나 이 중에서 이규석의 묘처럼 후손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는 묘비명이나 기록들은 거이 찾아보기 어렵다.

내년이면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게 되는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해 보는 것도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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