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제주의 명절이 '제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축제였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하루였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해라던 추석 명절도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제주에서 맹질(명절)이나 시께(제사)는 먹는 날이었다.
그래서 우리 제주 사람들은 추석이나 제사 때 차례를 지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맹질 먹으래 가게” “시께 먹으래 가게”라고 ‘먹으러 가자’는 말로 표현했다. 그래서 제주의 맹질은 집집마다 제사상을 차렸고 하루 종일 친척집을 돌아다니며 여러번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제주의 팔월맹질(추석)은 육지에 나갔던 자녀들이 내려오고 친족들이 모여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며 먹고 놀아야 하는 날이었는데, 코로나라는 이 시대의 역병이 우리제주의 맹질 풍습까지 바꾸어 놓았다
올 추석에 가장 핫 한 광고는 “불효자는 옵니다”였다.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효도가 아니라 불효라고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우리는 미리 서울 사는 아들에게 추석 때 내려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추석 연휴를 보내면서 이쁘게 한복을 입은 사랑스런 손주 노엘라를 안아보지도 못하였으니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우려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올 팔월맹질은 모두 함께 친족들 집안을 방문하며 차례를 드리는 제주의 독특한 명절 풍습이 변하여 각자 가족들끼리만 명절을 보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제주의 명절 풍습은 4.3 사건 당시 명절 전날 무장대의 습격으로 마을이 불탓던 혼란 시기에도 명절에는 제사를 지냈고, 추석날 제주를 강타하여 많은 인명과 재산에 피해가 발생했던 사라호 태풍에도 불구하고 친족 집을 방문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역병이 발병하여 “맹질 먹으래 가자.”는 제주의 맹질 풍습은 사라져 간다.
올 추석은 5일간 황금연휴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주 사람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을 우려하면서 육지부에 사는 자녀들에게 내려오지 말도록 했다. 그런데 막상 연휴를 맞고 보니 우리 제주민들이 노력은 너무 허무하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소위 ‘추캉스’라고 부르는 추석 연휴에 제주는 관광객 25만여 명이 찾아와 ‘추석 연휴 기간 도민 멈춤’ 등 제주민들이 코로나 방역이 무시되어버렸다. 전통 명절을 모르고, 고향도 없으며, 뿌리도 없는 - 놀자판 불효자 관광객들이 제주의 산야와 바닷가와 농촌마을을 휘젖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 아이들에게 명절 때 오지 말라고 했던가?
이제 말을 배운 손녀 노엘라의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올 추석은 말 그대로 쓸쓸함이었다.
이래서 제주의 맹질은 ‘조상의 제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한 축제’였다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제 내년 정월맹질(설날)은 역병 코로나를 이겨내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세배를 하고 음식을 나눌 수 있는 명절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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