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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신축 화해의 탑' 제막의 의미

by 나그네 길 2021. 5. 30.

제주의 선교 초기 가장 불행한 교회사는 '신축교안'이었다.

1901년 발생하여 올해로 120주년을 맞이하는 신축교안은 '이재수의 난' 또는 '1901년 제주민란' '신축 제주항쟁' 등 여러명칭으로 불리며 많은 도민들이 피해를 입은 제주 근세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오늘 '천주교 제주교구'와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가 한 자리에 모여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황사평 성지에서 가진 '신축 화해의 탑' 제막식은 당시 여러 사정으로 대립하였던 도민들간 화합의 상징적 의미가 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화해의 분위기는 2003년에도 제주 천주교와 제주항쟁 기념사업회가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을 발표하면서 '제주 신축교안의 공식 화해'를 선언한바 있다. 그러한 노력과 화해 선언을 토대로 오늘 신축교안의 상징적 장소인 황사평 묘역에 '신축 화해의 탑'을 제막하였기에 더욱 뜻 깊은 것 같다.

제주 천주교의 순교자 묘역인 황사평은 신축교안 당시 제주성을 공략하기 위한 민군의 집결지였으며, 민란이 종식된 후 조선 조정에서 천주교 측에 교안 희생자 묘역으로 할양한 18,000평의 부지이며, 현재 신축교안 당시 희생자 중에서 28기가 합장되어 있는 거룩한 땅으로 제주교구에서 성지로 지정하였다.

1901년 5. 28일 민군에 의하여 제주성이 함락되었으며 그후 6월 11일 조정에서 파견된 관군에 의하여 민란 진압시 까지는 무법천지였다. 이 기간에 민란의 주동자들은 읍내 가정집에 숨어 있던 천주교인들을 색출해내고 관덕정 앞에서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오늘 신록이 무르익는 5월말은 120년전 신축교안 비극의 중심에 있었던 시기였기에 코로나 상황에 따른 거리두기에도 불구하고 화해의 탑을 제막하는 날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화해의 탑 제막식을 보도하는 도내 언론에서는 

'신축교안'과 '신축항쟁'의 또 다른 이름은 '상호 존중'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오늘 화해의 탑 제막은 9월 서귀포 하논성당터로 이어져 다시 세워질 예정이다. 지난 해 교구 역사편찬위원회 모임에서 신축교안의 사실상 진원지였던 하논성당터에 탑을 건립해 달라는 건의를 주교님께서 받아 주시면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이는 그 동안 하논성당터 성지화를 위하여 고군분투해왔던 서귀포 지역의 관심 있는 신자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다. 

 

제막식에 이어 '신축화해 길' 순례로 이어졌다.

제주교구 6개의 순례길 중에 하나인 '신축화해 길'은 황사평 ~ 별도봉 ~ 관덕정 ~ 중앙성당으로 이어지는 12.6km의 순례길이다. 이 길은 신축교안 희생자 매장지와 4.3 사건 잃어 버린 마을 등 제주의 아픈 역사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제주 4.3사건의 곤을동 마을과 교안 희생자들이 시신이 버려졌던 별도봉으로 들어가는 길은 투박하기조차 하다. 

교안 당시 시신이 버려졌던 별도봉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안내판이라도 세워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천주교 제주교구장 문창우 비오 주교님은 오래전부터 '신축교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두고 연구를 해오고 있다.

문 주교님은 교구장에 취임하면서 제주교회는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며 역사 앞에서 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셨다. 그러한 주교님이 노력이 120년을 맞는 오늘에 이르러 이렇게 제주도민들을 화해의 장을 이끌어 내게 되었다.  

순례코스의 막바지에서 함께 먹는 아이스콘의 달콤함은 세 시간여의 피로를 잊게 해 주는 매력이 있다.

신자 500여명이 희생되었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관덕정에서 신축교안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교구장 주교의 강복으로 오늘의 순례 일정을 마치면서 우리는 새삼 역사가 현대에 가르침을 주는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주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별도봉에서 사라봉으로 이어지는 신축화해 순례길 산책로는 오름과 바다가 어울리는 가장 아름다는 길로 제주시민들이 사랑을 받는 장소가 되어 잠시 역사의 아픔을 잊어 버리게 된다.

이제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세워질 하논성당터 신축화해의 탑을 기다린다.

아마도 코로나 상황은 올 연말까지 계속 이어지겠지만 120년의 역사를 기억하며 제주민 '상호 존중'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신축 화해의 탑' 제막식을 어떤 행태로든 개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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