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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서귀포 자구리, 길은 하나에 이름은 11개

by 나그네 길 2021. 8. 10.

서귀포 시내 해안가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녹색 공간이 있다.

여름날 저녁 돗자리를 깔고 앉아 짙은 바다에서 반짝이는 오징어배 불빛을 감상할 수 있는 자구리 공원은 시민들이 사랑을 받는 장소이며 아름다운 산책코스로 알려졌다.

 

자구리길은 정방폭포에서 자구리 공원까지 약 1km를 말하는데, 섬과 폭포와 바닷가 용천수와 파도 그리고 잔디까지 아기자기하게 연계되어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길이다.

 

이 길은 제주올레 6코스이며 이중섭 화가의 기념물과 설치미술 작품들이 어우러져 작가의 산책길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산책길에서 거슬리는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름도 생소한 무슨 길이라는 표시들이 여기저기 무분별하게 설치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길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모두 다 길을 조성하는 이유가 있으며 그 사유에 따라 알맞은 길을 조성하고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하나의 길에 여러 가지 이름을 붙인 길을 중복하여 조성하는 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정방폭포에서 자구리공원까지 가는 길은 하나이다.

그런데 내가 확인해본 결과 1km 정도에 불과한 하나의 길에 무려 11개의 이름이 각자 따로 있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사진을 찍으며 길 이름을 찾아보았다.

제주올레길(6코스), 작가의 산책길, 유토피아로, 평화올레, 하영올레, 서귀포역사문화걷는길, 칠십리음식특화거리, 솔동산문화거리, 제주환상자전거길, 절로가는길, 칠십리길 .... 11개, 참 많기도 하다.

 

길을 걷는다는 건, 누군가의 흔적을 쫓는 행동이다.

즉 우리가 걷는 길은 여행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 여행의 목적이 되는 길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에 힐링 걷기 열풍을 가져온 제주올레가 20079월에 첫 코스가 개장된 이래 정부의 녹색 운동과 사회적인 트랜드가 함께하면서 너 나 할 것 없이 길을 만드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제주에는 하나의 길에 이름이 11개가 등장할 정도로 길을 만드는 사업이 무분별해져 버렸다. 문제는 저 11개의 이름마다 만드는 단체가 다르고 같은 길에 얼마나 많은 예산이 중복으로 투자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어이없기도 하다.

 

하긴 2010년에 나 역시 하논순례길을 조성하면서 지방비 예산을 투입한 바 있으니 그리 비난할 일만은 아닌 것 같지만, 이제 길을 만드는 사업은 어느 정도 자율적인 조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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