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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참 소중한 당신(2021.9월호) : 바람의 섬 차귀도

by 나그네 길 2021. 8. 24.

참 소중한 당신 9월호는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8.21생)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네스코 지정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한 김대건 신부는 1845년 8월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바닷길을 통한 귀국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 제주도의 작은섬 차귀도에 표착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제주교구에서는 김대건 신부가 표착했던 한경면 차귀도 일대를 '용수성지' 선포한바 있으며,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매월 4째 주 토요일에 바람의 섬 차귀도 현지에서 김대건 신부 표착 재현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참 소중한 당신 9월호 청탁 원고>

축복받은 삼다(三多)의 섬 차귀도

 

제주도는 바람과 돌과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三多島)라고 부른다. 이렇게 불리는 이유는 사시사철 거센 바람에 시달리는 제주 섬의 척박한 생활환경 때문일 것이다. 여름철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颱風)은 제주도를 습격하여 흙을 날려 돌이 드러나게 하였고, 고기잡이 나간 남정네를 기다리는 여인들이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그러나 태풍은 많은 비를 동반하여 메마른 땅을 적셔주었으며, 거친 파도로 해초와 어류들이 살기 좋은 바다 환경을 조성해 주기도 했다. 이렇게 바람은 아름다운 섬 제주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돌과 여자와 함께 대표적으로 제주를 상징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삼다도 거센 바람은 제주 천주교의 전례 역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국 천주교의 선교역사에서 가장 공경을 받고 있다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귀국길에 제주도에 잠시 표착 했던 것도 바다에서 거센 바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1845817일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에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등 일행 13명과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라파엘호는 831일 출항하여 서울로 들어가려고 항로를 잡았으나, 거친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같은 해 928일 제주도 한경면 고산리 앞에 있는 섬 차귀도에 표착 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한국교회의 첫 사제로서 우리나라 땅 차귀도에서 첫 미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는 제주 천주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바다에서 온갖 고난을 겪은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온 라파엘호는 본래 강에서 운항하도록 만들어진 작은 배였다. 그러한 라파엘호가 상해에서 며칠이면 닿을 바닷길을 거의 한 달여 동안 표류했음에도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제주도에 표착 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당시 페레올 주교는 서한에서 "조선의 천주교 탄압 시기에 바로 서울로 갔었으면 붙잡혀 처형당하였을 것인데, 제주에 표착 하였다가 나바위로 상륙하도록 한 것은 천주의 섭리였다.“고 밝혔다. 이렇게 김대건 성인이 제주도에 표착 했던 천주교 역사의 이면에는 삼다(三多)의 섬 제주도 바람이 한 원인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로 탄생 200주년이 되는 김대건 성인은 유네스코(UNESCO)에서 2021년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성인의 순교 신앙을 추모하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제주교구에서는 김대건 신부의 제주 표착을 기념하기 위하여 특별히 차귀도 섬에서 표착 재현 미사를 거행하고 있다.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오후에 시작되는 차귀도 미사는 방역 지침에 의거 참석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사전 신청자들은 용수포구에서 작은 배를 타고 선원 역할을 하면서 육지와 1.5km 떨어진 차귀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차귀도(遮歸島)는 전체 면적이 155,000(45,000) 정도인데 거센 바닷바람으로 나무들이 자라지 못해 잡초들만 무성한 무인도이다.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는 섬 이름처럼 중국 송나라 호종단이 제주의 맥을 끊고 돌아가다가 차귀도에서 침몰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참가자들은 차귀도 작은 구릉과 바닷가를 오가며 김대건 신부의 순교 영성을 체험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170여 년 전 김대건 신부가 차귀도에 표착 조선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지는 누구도 예상치 못 하였다. 이는 천주교를 몰랐던 제주도에 복음의 씨를 심으라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차귀도가 김대건 성인에게 축복받은 지 50여 년이 지나 제주도에 첫 성당이 설립되었고 이후 성장을 지속한다. 특히 성인이 표착 했던 제주도 한경면에는 2개의 본당과 4개의 공소가 운영되고 있어 전국 면() 단위에서는 비교 불가할 정도의 교세 성장을 보인다. 또한 한경면 주민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며 지역 출신 사제와 수도자가 10여 명이나 배출되기도 하였다. 이는 김대건 신부가 표착 했던 한경면 차귀도를 비롯한 용수리 포구 일대를 거룩한 땅 용수성지로 선포한 이유이기도 하다.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에는 이름 그대로 바람이 많다. 그리고 매년 센 바람 태풍으로 땅과 바다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제주의 바람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조화롭게 살아가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삼다도에서 바람은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돌담을 쌓게 하였고, 여성들이 해녀(海女)로 살아가면서 지혜롭게 파도에 대처하도록 해 주었다. 또한 바닷바람은 제주도의 첫 신자이자 순교자인 복자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를 홍콩으로 표류시켜 세례를 받게 하였다. 이렇게 거센 풍랑이라는 방법으로 김대건 신부를 차귀도로 인도하여 제주도에 첫 복음을 만나게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역사 안에 현존하심이었다. 이제 9월 순교자성월을 맞아 제주도에서는 축복받은 섬 차귀도에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표착을 재현하는 미사를 다시 봉헌하게 된다. 가끔은 이런 순교 영성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미사에 참여해 보는 것도 신앙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차귀도 바닷가의 해양쓰레기를 한 포대씩 수거하는 환경 정화 활동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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