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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참 소중한 당신(10월호) : 코로나 국제미아

by 나그네 길 2021. 9. 29.

이제 가을이 왔다.

그냥 자유롭게 해외 여행을 오갔던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신앙지로 알려져 있는 참소중한 당신 10월호에는 코로나 국제미아(國際迷兒)라는 제목으로 우리 아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던 딸 내외가 싱가포르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코로나 락다운으로 오도 가도 못했던 에피소드이다. 참으로 작은 바이러스가 우리 인간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한것 같다.

<참 소중한 당신 10월호 청탁 원고>

코로나 국제미아(國際迷兒)

 

   최근에 코로나 국제미아(國際迷兒)라는 말이 있다. 외국에 나갔다가 COVID-19 팬데믹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단어이다. 코로나 초기에 이스라엘에서 강제 격리되었던 한국인 성지순례단이 그러했고, 일본 요코하마항에 정박했던 크루즈 유람선 관광객 단체 감염으로 객실에 갇혀 있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외국인 블로거 친구는 취재차 아일랜드에 갔다가 더블린 도시가 록다운(Lockdown) 되는 바람에 한동안 호텔에 체류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너무 과할 정도로 쏟아지는 코로나 뉴스의 한 토막으로 흘러들었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여름 우리 가족에게 코로나 국제미아라는 말을 너무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을 경험하였다. 동남아 지역의 4차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국경 폐쇄와 항공기 운항 금지로 베트남 하노이에 체류 중이었던 딸 내외에게 발생한 에피소드가 그러했다.

 

   우리 딸은 제주도 영어 교육도시에 있는 국제학교에 근무하던 중 같은 학교의 영국인 교사와 만나 혼인하게 되었다. 성이시돌목장의 금악성당에서 가진 혼인 미사에는 영국에 사는 부모와 친지들이 먼 나라 코리아 제주도에까지 찾아와 혼인 잔치를 함께 축하해 주기도 했다. 그 후 제주에서 근무하던 딸과 사위는 몇 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국제학교로 근무학교를 옮겼다. 당시에는 코로나 이전이라 베트남으로 국제택배 이삿짐을 보내고 하노이에 아파트를 임대하여 새로운 학교로 출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우리 부부도 방학 기간에 하노이를 방문하여 17세기에 세워졌다는 조세프 대성당을 순례하며 좋은 추억을 가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시작된 COVID-19 팬데믹은 국제여행에 영향을 주면서 우리 모두의 발을 묶어 버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바이러스 차단을 명목으로 외국인 입국을 거부하는 희한한 세상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한동안 딸 내외는 사위의 나라 영국도 아니고 딸이 나라 한국도 아닌 동남아 베트남에서 고향 방문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베트남은 코로나 유행 초기부터 국경 차단 등 강력하게 대처했기에 확진자가 가장 적은 나라로 알려졌고, BIS HANOI에서도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어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딸 내외가 어쩔 수 없는 국제미아가 되어 버린 사연은 이제부터 시작되었다. 부모의 마음은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생각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부부의 걱정은 차츰 국제화가 되어 갔다.

 

   요즘 사람들은 직장을 옮기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노이 국제학교에서 안정적으로 근무를 하는 것 같았던 딸 내외가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은 것은 올해 초였던 것 같다. 더 좋은 조건으로 더 좋은 학교에 초빙되었다지만 은근히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지러운 이 시기에 다른 나라로 직장을 옮기는 일이 그리 쉬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름쯤 되면 코로나도 좀 시들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9월 학기부터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에서 근무하기로 계약을 했다. 그런데 계절이 지나면서 동남아 지역 코로나 상황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확진자가 거의 없었던 베트남을 비롯한 싱가포르에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4차 대유행으로 번져 가는 모양새였다. 지난 6월 중순 BIS 하노이를 퇴사하고 여름방학에 싱가포르로 출국하기로 했던 아이들 일정에 차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남아 국가들은 COVID-19 확산을 우려하여 서로 출입국을 금지하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들에게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다. 베트남에 있던 딸 내외는 거주하는 아파트 계약기간이 만료되어 싱가포르로 출국해야 하는데 공항이 폐쇄되었고, 싱가포르에서 발급한 비자까지 취소되면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딸 내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베트남에서 가도 오지도 못하는 처지, 말 그대로 외국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국제미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외국에서 자녀들이 이렇게 발이 묶여 버렸는데 부모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내에 사는 우리 가족 모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더욱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리 부부는 늦게나마 하느님을 찾아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쳐야 하느님을 찾는 이기적인 마음에 용서를 청하면서 매주 자녀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다. 또한 관광객을 위한 특별 미사에 참례하여 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치며 남의 일처럼 보고 들었던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사연을 내 일처럼 느껴보려고 하였다. 세계적인 COVID-19 팬데믹 상황은 우리 인간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달여를 지나다 보니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였던 매듭들이 하나둘 풀려나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어느 날 싱가포르에서 입국비자가 다시 발급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국제선 항공편이 운항이 재개되었다. 출국 전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이상이 없으면 싱가포르 입국을 허가하고 2주간 격리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하노이는 대중교통까지 록다운 되었기에 국제선 항공기 운항 여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실제로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딸이 찍어 보낸 텅 빈 출국심사장 사진을 보면서 항공기 이륙 직전까지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코로나 난민처럼 하노이를 탈출한 싱가포르행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은 겨우 20여 명이었다고 한다. 몇 시간 후 싱가포르 도착해 다시 호텔에 격리되었는데, 딸이 시원한 베란다가 있어 좋다는 밝은 목소리를 들으면서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코로나 국제미아를 위하여 미사 봉헌하였던 신부님께서 궁금해하는 문자가 왔기에 답장을 주고받았다.

 

신부님 기도 덕분에 싱가포르에 잘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느님 덕분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멘!”.  끝

 

코로나 락다운으로 국경이 폐쇄한 가운데 싱가포르로 출국하기 위하여 텅 빈 하노이 국제공항에서 출국수속 중인 딸 내외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을 조였던 하루였다.

다행히 지금은 싱가포르에서 백신접종을 받고 근무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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