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의 잡지, 월간 '참 소중한 당신' 7호의 첫 번째 받은 원고 청탁은 '회심의 여정' 순례길 이야기 였다.
그래서 제주도의 6개 순례길 중에서 최근에 프랑스 대사가 방문하여 많은 화제가 되었던 에밀 타케 순례길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참 소중한 당신 청탁원고>
프랑스 대사가 방문한 제주의 ‘에밀타케순례길’
지난 4월 초순 뜻밖의 고위 외교관들이 제주도 서귀포시에 소재하고 있는 ‘에밀타케순례길’을 방문하였다. 이 특별한 순례자들은 필립 르포르(Philippe Lefort) 주한 프랑스 대사를 비롯한 관광청 관계자였는데, 100년 전 이 땅 제주에 파견되었던 프랑스 출신 에밀 타케 신부의 선교유적지를 찾아보는 일정이었다. 프랑스 대사 일행은 왕벚나무 자생지와 하논성당터 등 에밀타케순례길을 탐방하면서 식물채집을 통한 제주의 자연 가치를 빛낸 타케 신부의 선구자적 여정을 돌아보고 생태 영성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필립 르포르 대사는 타케 신부 선교유적지 순례를 마치고 지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먼 나라 프랑스 출신 선교사의 업적을 100년이 넘도록 기억해 준 제주 천주교회와 도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에밀 타케(Taquet Emile Joseph,1873~1952) 신부는 1902~1915년까지 13년 동안 제주도 홍로성당 주임신부로 재임하면서, 선교는 물론 식물채집으로 우리나라 식물분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사제이자 식물학자였다. 식물 콜렉터로서의 타케 신부 업적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이다. 그는 1908년 한라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왕벚나무를 채집해 제주도가 세계 유일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처음 확인했다. 이로써 아직도 자생지를 찾지 못한 일본과 왕벚나무 논쟁에서 우리나라가 학술적인 주도권을 선점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1911년 온주 밀감나무를 일본에서 도입하여 농가에 분양해 준 것은 제주도 감귤 산업의 시초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들은 스스로 타케 신부 ‘감귤시원지(始元地)기념비’를 세워 그 공덕을 칭송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자라났고, 가을을 알리는 보라색 ‘한라부추’와 흰 눈 속에 빨갛게 익는 ‘겨울딸기’ 등 타케 신부의 생태 영성 이야기는 제주도민들에게 널리 회자 되고 있다. 현재 타케 신부가 채집한 식물표본은 7,047점이 확인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나라 식물원에 분산 보관되어 있다. 이 중에서 타케 신부가 처음 발견한 특산식물 125점에는 발견자의 이름을 붙여 ‘타케티’(taquetii)로 학명이 헌정되었다. 이러한 타케 신부의 업적은 교회를 넘어 ‘제주의 가치를 빛낸 선각자’로 선정되었으며, 각급 사회단체에서는 에밀 타케 업적을 재조명하는 학술 심포지엄과 전시회 및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 대사가 찾았던 에밀타케순례길은 타케 신부의 부임지 하논성당에서 홍로성당으로 이전하면서 걸었던 길을 따라 돌담과 감귤과수원 골목을 지나는 길이다. 제주의 선교역사와 지역 문화가 살아있는 5.4km의 순례길에는 타케 신부와 얽힌 사연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순례길이 시작되는 하논성당터는 이재수의 난이라고 불리는 1901년 ‘신축교안’ 당시 가장 피해를 많이 받은 사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민란의 피해를 버티어 낸 오래된 은행나무가 고고히 서 있는데, 언제 누가 심었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밀타케 은행나무’로 불리며 순례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순례길이 끝나는 면형의 집에는 타케 신부가 최초 도입한 100년을 넘게 살았던 감귤나무 고사목과 기념비가 전시되고 있다. 2016년부터 에밀 타케 신부의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하논성당순례길 속에 일부 코스를 새롭게 지정한 이 순례길은 제주의 아픈 선교역사와 서민들이 삶 그리고 생태 영성의 유적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생각하는 순례길’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프랑스 대사 일행의 순례지를 안내하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운 생각이 든 것은 외국어 소통이었다. 탐방 중에 한국말로 설명한 해설내용을 다시 프랑스어로 통역하는 과정에서, 당시 교회와 제주민 사이에 어우러진 진솔한 사연들을 설명함에 부족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프랑스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제주도를 찾아올 정도로 에밀타케순례길이 널리 알려졌음을 생각하면 저절로 흐뭇해졌다. 그날 프랑스 대사의 방문을 통하여 순례길 조성과 기념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아쉽고 힘들었던 사연들을 잊어버릴 수 있었으며, 열심히 노력하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언젠가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은총의 시간이었다.
최근 들어 오래전 제주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에밀 타케 신부의 업적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는 시대적 배경이 있다. 우리 공동의 집 지구의 기후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시점에서 교회는 생태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식물채집을 선교와 접목하신 에밀 타케 신부의 선구자적 생태 영성과 생물종 다양성 보존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이는 필립 르포르 프랑스 대사가 100년 전 이 땅 제주에 살았던 한 사제의 선교유적지를 찾은 사유이기도 하겠다. 이러한 과거 선교 뿌리들이 현재에 와서 생태 영성으로 새롭게 태어나 순례길을 통하여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은 교회의 신비 그 자체인 것 같다.(2021년 7월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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