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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추석 풍습의 변화

by 나그네 길 2021. 9. 21.

제주에서는 추석을 '팔월명질'이라고 불렀다.

우리 어린 날에는 설날이나 단오에도 명절을 지냈는데, 명절의 이름은 '정월명질'이나 '오월명질'이라고 단순히 숫자로 붙여 불렀었다. 그리고 제주 사람들은 추석에 '명질 먹으래 간다'고 조상을 위하는 제사보다는 살아있는 친족들이 모여서 먹는다는 것을 중요시했던것 같다. 이는 1년 열두달 중에 하얀 곤밥(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명절과 제사가 유일하였기에 '제사 먹으래 간다.'고 표현하였던것 같다.

 

친족들이 함께 모여서 먹는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은 명절에는 남녀노소 수십명이 친척집마다 방문하며 제사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우리 집안인 경우 8촌까지 명절날 하루에 8번 제사를 지냈으며 음식도 8번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후에 친족을 6촌까지 분리했다가 현재는 4촌으로 한정하였기에 명절에는 두번 차례를 지내고 있다.

 

 코로나 이전 명절에는 작은 집과 큰 집에 4촌 형제와 자녀들을 포함 50여명이 모여 2번 차례를 지내고 아침과 점심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그런데 지난 해 추석부터 거리두기 방역에 호응하여 각자 형제들끼리만 모여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올해는 남자들만 최소한으로 참석하기로 정하여 조카들 포함 8명 정도가 모여 간단하게 차례를 지내고 음식도 먹는등 마는등 헤여졌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눈치보면서 보낸 추석 명절이 되어버렸다.   

 

우리 아이들도 올 해 추석 명절에 아무도 서귀포 고향 집에 내려 오지 못했다.

아들 내외는 서울에서 그리고 딸과 사위는 싱가폴에서 각자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는 방역정책 때문에 내려 오지 못하게 하였음에도, 올 추석절 연휴에 제주도를 방문한 소위 '추캉스족'이라고 부르는 관광객은 20만명이 넘어서고 있으니 방역 지침을 잘 실천하는 우리만 바보가 된 느낌이다.

 

집안 제사를 참석하지 못하는 우리 테레사는 오히려 역귀성으로 서울을 방문하여 추석연휴를 손녀와 잘 보내고 있다.

그리고 싱가폴에서 들어오지 못하는 딸 내외는 예전에 입었던 한복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며 고향 제주에 오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있는것 같다.

 

할머니를 만난 손녀 노엘라는 오히려 더 신났다.

제주도에서 준비해간 떡가루로 송편을 만들고 신기해하며 추석절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예쁜 손으로 오골오골 만든 송편이 등터지고 쭈그러진 모습조차 얼머나 아름답고 먹음직 스러운가?  

 

코로나 이전 추석에는 차례를 2번 지내고 음식도 2번 먹고 아이들이랑 공원묘지에 성묘를 다녀오면 조금은 힘들고 지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러나 올해는 혼자 고향 큰집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오전에 돌아왔으니, 한가위라는 민족의 대명절이지만 우리에게는 너무 한가한 날 추석연휴일 뿐이다.

 

이제 우리 일상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아직까지 제주도에만 남아 있었던 친척집에 모여 차례를 지내던 추석명절 풍습도 이제는 각자 집안에서 간단히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많은 친족들이 모이는 명절보다 가족 몇 명이 편하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고 점점 개인주의적으로 바뀌게 될것 같다. 

 

이렇게 우리 아이들에게는 친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대부분 자녀를 1명만 낳게 되면서 우리 후대의 사전에 가장 먼저 삼촌, 사촌이라는 친족 관련 단어가 없어진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주의 지나간 명절은 그냥 복잡하고 귀찮은 것에 비해 친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는 계기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테가 아니었어도 개인주의로 가족 제도가 바뀌고 있는 현실에서 보면 제주의 추석 명절은 변화할 수 밖에 없는 풍속임에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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