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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제주의 여름 토속 음식(호박잎국, 콩잎, 차롱밥, 물외냉국)

by 나그네 길 2021. 8. 27.

우리 어릴적 가난의 땅 제주에서 먹었던 음식은 너무 단순하였다.

감귤과수원이 조성되기 이전 제주의 농촌은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고구마를 수확하는 단순한 2모작 농사였다.

그래서 가장 무더운 8월에는 감저(고구마)밭에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찜통 더위에 하루종일 앉은뱅이 걸음으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주 힘든 - 소위 극한직업이었다.

 

이렇게 고된 밭일 중에도 점심은 먹어야 하는데, 차롱밥에 물외냉국 그리고 자리젖과 콩잎이 전부였다.

 

 

냉장고가 없었던 그 시절에는 여름에 음식물의 부패가 가장 큰 문제였다.

여름날 밭에서 점심밥을 변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하여 자연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차롱밥이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차롱에 보리밥을 퍼담고 돌담 옆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면 바람이 통하면서 점심시간까지는 쉬지 않게 보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심으로 밥만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반찬거리는 고구마밭에서 즉석으로 찾았는데 우선 고랑에서 자라는 콩의 어린잎을 따 자리젖과 함께 쌈으로 먹는다. 그리고 밭 한구석에 있는 물외를 대강 썰어 맹물에 놓고 된장을 풀어 놓으면 물외냉국이 완성된다.

제주의 가난이 만들어 준 가장 자연적인 건강식이었다.

 

저녁에 밭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덥고 피곤한 몸으로 무슨 음식을 조리할 수 있겠는가? 밭에서 따온 호박잎을 양은솥의 끓는 물에 북북 뜯어 놓고 밀가루를 풀면서 수제비를 만들면 그런대로 먹을만한 호박잎국이 된다. 이렇게 다시 한 끼니를 채우고 마당에 누어 별을 헤다 잠이 들었다.

 

근래에 제주에서 차롱밥을 파는 것을 보았다.

대나무 차롱에 양념 주먹밥과 산적 구이, 갖은 야채와 과일까지 가득한 도시락 한 상이었다. 혹시 제주의 차롱밥이 이러했다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옛날 차롱밥은 보리밥에 된장과 자리젖 뿐이었다. 그 외의 채소는 작업 현장에서 구해 먹었다.

 

콩잎을 생잎으로 먹는 것은 제주가 아니면 보기 힘들 것이다.

어린 콩잎을 된장이나 멸젖 또는 자리젖에 찍어 먹어보면 독특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다.

약간 비린 듯한 콩잎이 씹히는 신선한 맛은 제주의 여름에 맛보는 별미이다. 최근 콩잎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비닐하우스 재배 콩잎이 마트에 나오고 있지만, 자연산 콩잎의 독특한 맛을 찾을 수 없었다.

 

여린 호박잎은 쪄서 밥을 싸 먹으면 좋다. 그러나 호박잎의 제맛은 수제비가 들어 있는 약간은 걸죽한 호박잎국이 제맛이다. 여름철 차게 해서 먹으면 더 맛있어지는 호박잎의 거친 질감은 아마 현대인들과는 어울리지 않아 머지않아 없어질 음식이 될지도 모른다.

 

요전 날 강정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콩잎을 따다 먹으라는 연락이 있었다. 비닐 가득 콩잎과 호박잎을 냉장 보관하며 며칠을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릴 적에 맛보았던 음식에 대한 향수가 떠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할 일 없이 오일장을 기웃거리며 옛날 먹어보았던 음식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여름방학을 맞은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감저밭에서 검질 메었던 그 무덥고 힘들었던 날, 모쿠실낭 아래 그늘에서 먹었던 물외냉국이 시원함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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