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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참 소중한 당신(12월호) :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제주 신축교안

by 나그네 길 2021. 12. 6.

2021년 신축년 한 해를 보내면서,

이번 참 소중한 당신 12월호에는 1901년 제주에서 발생하였던 신축교안 120주년을 돌아보았다. 그리스도교의 선교 과정에서 외래 종교와 토착민간에 갈등으로 시작되었던 신축교안은 일부 교민들로인한 교폐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민란으로 제주 천주교회사에 가장 불행한 역사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천주교 제주교구에서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실시하였던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가지 방안들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참 소중한 당신 12월호 원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제주 신축교안(辛丑敎案

 

최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을 대구 교구 신자라고 소개한 그는 궁금한 사안이 있어 전화를 걸었다고 하면서, 제주 신축교안에 대하여 ? 신축교란(辛丑敎亂)이 아니고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쓰는가?”라는 문의였다. 제주도에는 1901(신축년)에 발생한 민란으로 천주교 신자 수백 명이 피살되었던 불행한 사건이 있었다. 천주교회에서는 신축년에 발생한 이 민란을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에게 교안(敎案)’이라는 단어는 좀 생소하지만, 종교 문제와 관련되어 벌어진 정치적, 외교적, 행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여러 가지 사안을 표현하는 보편적 역사 용어이다. 따라서 종교가 주체가 되어 일으킨 중국 백련교도의 난과 같은 민란을 표현하는 교란(敎亂)'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므로, 신축교안으로 쓰는 것이 맞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신축교안에 대하여 '이재수의 난', '제주민란', '신축 항쟁' 등 같은 사건임에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이렇게 120주년을 맞는 신축교안은 전래 초기 교폐(敎弊)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던 민란이었기에 제주교회의 선교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겨 준 것도 사실이다.

 

 

19015월부터 6월 사이에 일어난 제주 신축교안은 한반도 여러 지역에서 발생했던 교안 가운데 최대규모였다. 교안의 원인에 대하여는 천주교회와 향토사학자 측 입장이 서로 달라 복합적인 문제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원인을 보면 프랑스 선교사의 치외법권적 지위에 편승한 교인들이 횡포와 봉세관의 과다한 세금 징수, 토속신앙과 지역 풍습을 배척하는 선교 활동, 그리고 지방관과 야합한 일본인 상인 세력이 외방인 사제에 대한 반감 등을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신축교안은 190155일 대정현에서 봉세관의 조세 수탈과 천주교인들의 횡포에 저항한 민회(民會)가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민군과 교회 측이 대립하는 가운데, 교민들에 의한 한림민회소 습격과 대정읍성 진입 과정에서 일어난 발포사건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민란은 더욱 가열되어 갔다. 이에 민군은 일본 상인들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는 등 세력을 확장하면서 천주교 신자를 색출하여 무조건 처형을 가하자 교인들은 제주읍성으로 피난하였다. 결국 528일 민군에 의해 제주읍성은 함락되면서 민란 주도자들은 가정집에 숨어 있던 천주교인 수백 명을 찾아내어 관덕정 앞에서 피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결국 이 사건은 프랑스 군함 2척이 제주도 해상에 출동하고, 조정에서는 찰리사(察理使)와 군대를 파견 611일 민군 지도자들을 체포하면서 민란은 진정되었다. 이러한 신축교안의 피해와 관련 교회 측에서는 희생자 수를 6~700여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당시 조정에 보고한 문서에 의하면 천주교인 309명과 민군 8명이 희생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민란의 주도자 이재수 등 3명은 재판을 받아 교수형에 처 해졌다. 그 후 신축교안 수습과정에서 프랑스 공사와 조선 조정이 협의로 교회 측 희생자 안장을 위한 묘지 부지로 황사평지역을 할양해 주었다. 제주시 황사평 벌판은 신축교안 당시 민군이 주둔지로 사용하였는데, 그 민군에 의해 살해된 교인들이 다시 황사평의 공원묘지에서 영면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조선말 개화기에 제주에서 발생하였던 신축교안은 제주 사회는 물론 프랑스와 문제 등 정치와 외교적으로 커다란 파문을 안겨주었고, 신축교안의 중심에 서 있었던 제주 천주교회는 교안 수습과 함께 한동안 침체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난 후 이 사건은 소설 변방에 우는 새로 출판되었고 영화 이재수의 난이 제작 상영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같은 작품에서는 교민들의 피해보다는 외세에 의한 종교적 침탈만이 강조되면서 초기 교회와 선교사들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민란의 시발점이 되었던 대정읍 지역에는 민군의 지도자였던 이재수 등 3명을 의인(義人)으로 추앙하는 삼의사비(三義士碑)가 세워져 있다. 삼의사비에는 이 비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져 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고 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를 새겨 넣었다. 그런데 같은 대정읍 지역의 교민 희생자 이규석 삼부자(三父子)를 순교자로 부르는 묘비가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 묘비명에는 천성이 정의적 영웅적이고 천주교 신앙으로 신축년 415일 삼부자 공히 순교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모두 신앙을 증거 하다 순교했다고 적혀있다. 이렇게 신축교안은 하나의 사건임에도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순교자가 되고 의인으로 되기도 하는 등 오랜 기간 도민 사회의 갈등으로 이어져 왔었다.

 

올해는 1901년 발생했던 신축교안으로부터 두 번째 60갑자를 맞이하는 신축년이다. 지난 2003년 천주교 제주교구와 제주항쟁기념사업회는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을 체결, 신축교안이라는 제주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력 한 바 있다. 올해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기억과 화합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초기 선교 과정에서 일어났던 불행한 역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도민과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하여 신축교안의 중심지였던 황사평 성지와 하논성지 2개소에 각각 화해의 탑을 세웠다. 지난 주말, 천주교 제주교구와 '신축항쟁기념사업회'가 한자리에 모여 120년 전 민란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가진 '화해의 탑' 제막식은 그동안 교회와 도민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는 상징적 의미가 될 것이다.

 

2021.12월호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천주교 신앙잡지 '참 소중한 당신'에 기고를 하면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제주교구의 여러 사안과 선교활동에 대하여 전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음이다. 두서 없이 게재한 이런 글들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삶의 여정에 작은 도움이 되었기를 기원하면서 12월호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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