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소중한 당신' 2022년 1월호부터는 에밀 타케 신부의 이야기를 몇 회에 걸쳐 연재하려고 한다. 100년 전 이땅 제주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식물을 채집하면서 식물종 다양성 보존과 예언적 경제를 몸소 실천하였던 사제이자 식물학자의 이야기는 가톨릭 신앙지에 연재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참 소중한 당신 2022.1월호 원고>
제주 감귤의 아버지 에밀 타케 신부
제주의 가을 색은 황금빛 오렌지이다. 여기저기 과수원마다 곱게 익은 감귤들은 마치 녹색 캔버스에 주황색 물감을 뿌려 놓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예부터 제주에는 경관이 특히 뛰어난 열 곳을 지정 영주십경(瀛州十景)으로 불렀는데, 이 중에서 감귤이 누렇게 익은 가을의 풍경을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며 감귤나무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이제 겨울을 앞둔 제주는 한라산 정상의 하얀 눈과 노란 감귤이 어우러진 과수원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다. 이렇게 제주민들의 소득원으로 자리 잡은 감귤은 100여 년 전 서귀포 홍로본당의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한국명 : 엄택기 嚴宅基 ) 신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의 제주 감귤은 1911년 에밀 타케 신부가 일본에서 온주밀감 14그루 들여와 농가에 분양해준 것이 시작이었다. 그 후 한라산 남쪽 서귀포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되기 시작한 감귤은 현재 제주도 전역에 과수원이 조성되어 진정한 ‘귤림추색’을 이루게 되었다.
제주도에 감귤이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이다. 지금의 온주밀감과는 종류와 맛이 다른 품종이었지만, 고려사(高麗史 권7)에 의하면 문종 6년 3월에 탐라에서 귤을 진상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감귤은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조 태종실록(太宗實錄 26권)에는 감귤 수백 그루를 제주에서 가져와 전라도 바닷가 여러 고을에 옮겨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제주 목사가 지역을 순방하는 모습을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 1702년)에는 감귤을 진상하기 위해 포장하는 장면이 담채화로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렇게 제주 감귤은 궁궐이나 대갓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식용이나 약제 그리고 제사용 과일로 인기를 끌었었다. 그러나 당시 제주민들에게 감귤은 진상품으로 관청에서 관리하는 과원의 강제노역에 동원되거나 수탈 대상이었던 기피 과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말(1893년) 진상 제도가 폐지되자, 제주 농민들은 감귤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농토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주요한 소득 작물로 자리 잡은 온주 밀감나무를 처음 도입한 에밀 타케 신부를 제주 감귤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출신 에밀 타케 신부는 1902년부터 13년 동안 홍로본당에 주임신부로 재임하면서 제주의 자연 가치를 빛낸 사제이자 식물학자로 알려졌다. 특히 온주밀감 나무 도입과 함께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 및 1만여 종에 달하는 식물채집 업적은 우리나라 식물분류학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타케 신부가 일본에서 사목하고 있었던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 표본을 보내준 답례로 온주 밀감나무 묘목을 들여와 재배를 시작한 것은 제주 감귤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는 제주에 새로운 품종의 온주밀감을 들어와 소득 작물이 되면서 감귤산업화의 시초가 되었고, 제주 감귤이 착취 대상 진상품에서 벗어나 가난한 농민들에게 새로운 생명 농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에밀 타케 신부가 1902년 서귀포 홍로 마을에 설립했던 홍로본당은 현재 피정 센터 ‘면형의 집’으로 변하였다. 그리고 타케 신부가 최초 들여왔던 밀감나무 중에 마지막 한 그루가 100년이 넘도록 살면서 열매를 맺다가 3년 전 더위와 가뭄으로 고사하였다. 이에 제주 감귤박물관에서는 이 고사목에 대한 감귤 역사의 상징성을 기념하기 위해 약품처리 후 ‘홍로의 맥’이라는 이름으로 면형의 집에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홍로본당 소재지인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자치위원회에서는 최초 감귤나무가 고사 된 자리에 “타케 신부가 전해준 14그루의 온주밀감”이라는 감귤 시원지 공적비를 세웠다. 또한 마을회관에는 “감귤의 본향 서홍동”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기도 하는 등 온주밀감을 도입한 타케 신부의 업적으로 기리고 있다. 서홍마을 주민들이 생각하는 에밀 타케 신부는 홍로성당 선교사나 식물학자보다는 제주 농민들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던 ‘엄닥개 신부님’이라는 한국식 애칭으로 불리며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가 일본에서 감귤나무 표본이 아닌 묘목을 도입한 사실은 식물채집보다는 주민들에게 소득 작물인 감귤을 재배토록 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민들은 에밀 타케 신부를 선교의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예언적 경제를 몸소 실천한 사제로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감귤의 아버지 에밀 타케 신부는 교회가 아닌 마을주민 스스로 공덕비를 세워 준 한국교회 최초의 이방인 사제로 제주도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2022.1월호 원고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제주감귤이 소득작물로 재배되기 시작한것은 에밀 타케 신부로부터이다.
1911년도 14그루의 온주밀감나무 도입으로 시작된 제주감귤은 이제 제주도 전역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2021년 현재 생산량은 47만 1천여톤 조수익 1조원 상당일 정도로 산업화가 되어 제주도민들이 주요 소득원으로 정착되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외방인 사제가 우리 제주민의 삶에 이바지한 영향은 참으로 대단하기에 에밀 타케 신부의 업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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