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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성탄트리와 한라산 구상나무(참 소중한 당신 2022. 2월호)

by 나그네 길 2022. 2. 3.

식물의 보고라 불리는 제주의 한라산에서 자라고 있는 많은 식물중에서도 구상나무는 아름답고 특이한 수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라산 정상부 고산지대에 자라면서도 사철 푸르고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고 있으며 피톤 치트 향기도 아주 좋은 나무이다. 이번 3월호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용되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기고하였다.

 

<참 소중한 당신 2022. 2월호 청탁 원고>

성탄 트리와 한라산 구상나무 이야기

 

     연말을 맞아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나무에 장식되어 반짝이는 성탄 트리는 종교를 떠나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성탄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언제부터인가 성탄 트리와 함께 연말연시를 맞이함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태이다. 이러한 성탄 트리는 중세 교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세계에 널리 퍼지면서 기독교 문화가 정착화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유럽을 비롯한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성탄 트리 장식 나무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3~5m 정도 적당한 크기로 곱게 자라며, 사철 푸른 상록수에 소라의 뿔처럼 생긴 솔방울 열매가 열리기도 한다. 구상나무는 수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피톤치드가 높고 질병에 강하여 정원수로 선호도가 높은 수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한라산 구상나무가 어떻게 서양으로 넘어가서 성탄 트리의 대명사가 되었을까.

 

     구상나무는 제주도 한라산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고유 수종이다. 식물의 보고라고 불리는 한라산에는 낮은 곳에 자라는 난대성 식물에서부터 고산지대의 한대성 식물에 이르기까지 높이에 따라 1,800여 종이나 되는 식물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한라산에서 자라는 많은 식물 중에서 구상나무는 25천 년 전부터 제주도와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자생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한라산 구상나무는 서귀포 홍로본당의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신부가 최초 채집함으로써 세계식물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외방선교회 출신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에밀 타케 신부는 19075월 한라산 1,500m에서 최초로 구상나무 표본을 채집하여 유럽에 보냈다. 그러나 발견 당시에는 구상나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기에 전나무의 종류인 분비나무로만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91710월 영국 출신 식물학자 윌슨이 한라산에 올라 구상나무를 채집해 연구한 결과 비로소 분비나무와 다른 신종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에 윌슨은 1920년 구상나무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 한라산에 분포하고 있는 신종나무로 식물학계에 보고하였다. 이때 타케 신부가 발견한 최초 채집본을 확증 표본으로 인용하면서, 구상나무의 학명을 한국의 전나무’(Abies Koreana)로 명명하게 된다. 이렇게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에서 구상나무를 최초 채집함으로써 세계 유일한 신종나무로 명명되었으며, 이는 한국 식물분류학 발전에 큰 성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에밀 타케 신부에 의해 신종임이 알려지게 된 한라산 구상나무는 원뿔형의 아름다운 수형으로 성탄 트리에 알맞아 교회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이후로 구상나무는 유럽과 미국 등 주택 정원에 재배되면서 개량종으로 다시 태어나 제주 식물의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라산 구상나무는 기후변화 원인으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국립산림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한라산 구상나무의 약 30%가 고사 된 상태이며, 구상나무숲 면적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속도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기후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쇠퇴한다면 금세기 내에 멸종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까지 하는 실정이다. 2011년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에서 지정하는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등재되기도 한 구상나무가 위기에 처한 이유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크다

 

    한라산 1,500m 이상 고산지대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식물 구상나무는 기본적으로 서늘한 기후에서 생육하는 수종인데, 환경 파괴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고산 식물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상청에 의하면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표면 온도가 0.8도 상승하였음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1도가 더 높은 1.8도나 상승했다고 한다. 그리고 제주도에는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와 초강력 태풍 등 기상 재해가 점점 증가하고 있어 구상나무의 식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이제 우리 학창 시절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만났던 아름다운 구상나무숲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한라산 성판악 코스 등반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마치 백화(白樺)처럼 말라버린 구상나무 고사목들만 앙상한 풍경으로 다가서 안타깝기만 하다. 이렇게 성탄 트리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한라산과 함께 수 만 년을 살아온 구상나무의 멸종을 방치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공동의 집 지구의 생태적 회개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묵상하고 행동해야 할 때이다.

 

2022.2월호 원고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학창시절에 한라산 등산로를 오르면서 만날 수 있었던 아름다운 구상나무들이 지금은 말라 죽어가고 있다.

기후변화가 불러온 온난화 현상으로 한라산 고산식물이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한라산 구상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100년을 넘어 지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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