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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한라산 겨울딸기 이야기(참 소중한 당신, 2022년 3월호)

by 나그네 길 2022. 3. 6.

참 소중한 당신 3월호에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대모 가수 '인순이 체칠리아'님이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진 가수 인순이님은 오래 전부터 좋아하는 가수였다.

 

2014년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미사전 특별공연에 출연한 가수 인순이님을 멀리서 지켜 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영혼까지 끌어 내는 그녀의 공연은 일반 가수라기보다는 뮤지컬 배우 같은 느낌이 들었던것 같아 지금도 그날 공연 장면이 훤히 떠오른다. 

2022녕 3월호에는 에밀 타케의 편지에 나온 겨울딸기 이야기를 썼다.

 

<참 소중한 당신, 20223월호 원고>

제주도 겨울딸기 이야기

 

   예부터 우리나라는 충효를 강조하는 유교문화의 특징으로 효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전설에는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의 눈을 뜨게 만든 심청을 비롯해 울릉도 효녀 촛대바위 전설 등 여러 지방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 효녀 이야기 중에는 겨울 눈 속에서 빨갛게 익는 제주도 겨울딸기와 관련된 전설도 있다. 추운 겨울날 오랜 병환으로 자리에 누운 어머니가 꿈에서 보았던 빨간 딸기를 먹고 싶다는 말을 듣고, 어린 딸은 백설이 가득 쌓인 한라산에서 딸기를 찾아 헤맸는데, 효녀를 가엾이 여긴 산신령이 하얀 사슴으로 변하여 겨울딸기 자생지를 가르쳐 준다. 이에 딸은 눈 속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다 어머니께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는 다소 진부한 내용이다. 또한 이와 비슷한 설화로 충청남도 보령시 왕대사(王臺寺)에도 엄동설한의 산딸기 효자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이렇게 겨울딸기 이야기가 여기저기 전설로 등장하는 이유는 봄에 꽃이 피고 가을에 열매가 익는 보통 식물과 달리 추운 겨울에 빨간 열매가 익는 겨울딸기의 특이성 때문인 것 같다.

 

사진 : 블러그 '산이랑 바다랑'에서

   지금은 시설하우스 재배로 딸기는 사시사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지만, 제주도 선교 초기였던 100년 전 에밀 타케 신부(1873~1952, 프랑스)에게는 겨울에 익는 딸기가 좀 생소했던 것 같다. 사제이자 식물학자였던 에밀 타케 신부는 1902년부터 서귀포 홍로본당 주임사제로 사목하면서 교회 운영을 위하여 식물채집을 했는데, 당시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보낸 편지에 한라산 겨울딸기 이야기를 찾아볼 수 있다. 타케 신부가 190816일 쓴 편지에 보면 산속 협곡에 붉은 딸기(Rubus) 열매가 있다는 말을 듣고 1226일 그곳을 찾았는데 정말이었습니다. 눈 속에 열매가 있다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라고 썼다. 이 편지를 잘 살펴보면 선교사 에밀 타케 신부의 삶과 학자로서의 식물채집에 대한 열정을 잘 알 수 있다. 아마도 타케 신부는 한라산 기슭에 겨울딸기가 있다는 사실을 어느 신자에게 들었을 것이다. 이는 평소 선교와 함께 식물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며 지역 주민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겨울딸기 채집을 나간 1226일은 성탄 대축일 다음 날이었다. 어찌 보면 성탄절을 지내고 하루쯤은 쉬었을 법도 한데 그의 식물에 대한 열정은 휴식도 없이 눈 속을 찾아다닐 정도로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교님께 보낸 편지 중에는 한 달 후에는 철 이른 풀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난해보다는 좀 더 조직적으로 1년 내내 풀들을 거둔다면 1,500 내지 2,000 종류의 풀이나 잎사귀만이라도 갖게 되리라 기대합니다.”라고 식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세세히 적고 있다. 이러한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에 대한 열정은 홍로본당에서 사목하는 10년 동안 1만여 점의 식물을 채집하여 유럽의 대학과 식물원에 보냈으며, 그중에서 현재 7,047점의 채집본들이 세계 여러 나라 식물연구소 등에 보관된 것이 확인되고 있다.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서 자라는 겨울딸기는 장미과 덩굴성 식물로 여름에 꽃이 피었다가 겨울 눈 속에 열매가 익기 때문에 겨울딸기(학명 Rubus buergeri Miq.)라 부르고 있다. 비교적 기후가 따뜻한 대만과 일본에서도 자라는 겨울딸기는, 190712월 한라산에서 에밀 타케 신부가 최초 채집하였으며 채집번호 97(Taquet no. 97)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 말기 제주도의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생활이 어려웠던 시기였기에, 에밀 타케의 식물채집에 대한 주민들이 이해가 부족하였던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식물을 채집하는 타케 신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제주 4.3사건 당시 홍로본당의 사제관에 보관되었던 식물 표본들을 부엌의 불쏘시개로 사용했다고 알려질 정도였다. 이렇게 우리 모두의 무관심으로 1만여 점에 달하는 에밀 타케 식물 표본이 우리나라에는 한점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몇 해 전 에밀 타케 신부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타케 신부가 보낸 편지에 나와 있는 겨울딸기의 자생지를 찾아보기로 하였다. 현재 한라산 남쪽 서귀포 지역에는 치유의 숲과 곶자왈 등 여기저기 겨울딸기가 자생하고 있으며, 하얀 눈 속에 빨간 겨울딸기는 사진 촬영 소재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115년 전 에밀 타케 신부의 편지에 나온 산속 협곡과 현재의 겨울딸기 자생지와는 지형과 생태적으로 차이가 있었기에 정확한 장소를 찾지 못해 여러 번 숲속을 헤매었다. 그러던 중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하얀 사슴이 나타나지는 않았음에도 편지에 나오는 겨울딸기 자생지 산속 협곡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해 늦가을 생태환경 현장 탐방 중 한라산 수악계곡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겨울딸기 군락지를 찾아낸 순간 저절로 환호성이 나왔다. 비록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수북한 낙엽 속에서 빨갛게 익어 고개를 내민 겨울딸기를 바라보면 계절이 바뀌도록 찾아 헤매었던 그동안 수고를 씻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타케 신부의 편지에 나와 있던 산속 협곡의 겨울딸기 자생지를 찾을 수 있었으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1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주는 성령의 신비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의 크기는 한반도 면적의 0.8% 정도에 불과하지만, 식물은 우리나라 전체의 50%에 해당하는 2,200여 종이 자생하고 있어 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많은 한라산 식물 중에서 아주 작은 겨울딸기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살아 있는 것을 보면, 100년 전 이 땅 제주에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식물채집으로 생물종다양성 보존을 실천하였던 에밀 타케 신부의 선각자적 안목과 식물학적 업적이 더욱 빛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한 떨기 식물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제주의 겨울딸기 이야기는 지나가는 전설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자연과 생태환경 보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어야 할 것이다.

2022. 3월호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참 좋은 당신' 편집부와 상의도 없이 올 1월호부터 계속하여 제주 식물과 에밀 타케 관련 사연들을 기고하고 있다.

지난 해 7월에 이어 6월호까지 총 일곱 번에 걸쳐 기고할 에밀 타케 시리즈를 중심으로 "제주식물의 아버지 에밀 타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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