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벚꽃의 계절이다.
COVID-19 오미크론이 우리 주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변함없이 화사한 왕벚꽃을 피우고 있다.
'참 소중한 당신' 2022. 4월호에는 봄의 전령사라고 불리는 한라산 왕벚나무 이야기를 기고하였다.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이 미국 워싱턴DC 포토맥강의 왕벚꽃 축제를 살렸다는 '나비효과' 이아기이다.
<참 소중한 당신 2022년 4월호 원고>
봄의 전령사 왕벚꽃 이야기
제주의 봄은 중산간 들녘의 노란 유채꽃을 배경으로 한라산 자락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왕벚꽃이 어우러지면서 화사함을 더 한다. 봄의 전령사(傳令使)로 알려진 왕벚꽃은 제주도에서 먼저 피기 시작하여 전국 여러 지역을 벚꽃 축제로 이어주면서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새봄을 맞아 벌어지는 다양한 벚꽃 축제 중에는 서울 여의도와 진해의 군항제가 비교적 많이 알려졌지만, 예전에는 창경원에서 벚꽃 놀이가 유행했던 때도 있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침탈한 후 창경궁 정원에 벚나무를 심어 왕궁이 갖는 민족의 상징성을 없애버렸으며, 전국 곳곳에 왜색을 풍기는 벚나무를 많이 심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벚꽃 ‘사쿠라’를 ‘변절자’라는 의미로 비하했던 것은 벚꽃이 일본 꽃이라는 오해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왕벚꽃은 일본 나무가 아니라 제주도 한라산이 원산지라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벚꽃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부담 없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사람이 있는데, 그는 바로 100여 년 전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한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신부이다.
사제이자 식물학자였던 에밀 타케 신부는 서귀포 홍로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식물채집을 하고 있었는데,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600m 숲속에서 아름다운 꽃이 활짝 핀 왕벚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타케 신부는 왕벚나무 표본을 채집(NO. 4638) 유럽에 보냈는데, 1912년 이 채집본을 연구한 독일 베를린 대학 쾨네(Koehne) 박사에 의해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임을 세계 식물학계에 처음 알렸다. 이후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제156호)에 등재되었고, 일본이나 중국 등 이웃 나라와 왕벚나무 원산지 논쟁에서도 학술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벚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왕벚꽃은 한라산에 자라는 산벚나무와 올벚나무가 자연 교배하여 태어난 새로운 종으로 꽃이 크고 화사하게 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벚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기에 왕벚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렇게 봄에 화려하게 피었다 지는 벚꽃은 일본인에게 정서적으로 잘 어울리며 가장 좋아하는 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 내에서 확실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에 아쉬워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래전 에밀 타케 신부에 의해 제주도 한라산이 왕벚나무 자생지임을 공식 인정받았으며, 최근 한라산에서 자생하고 있는 270년생 왕벚나무가 발견되기도 하는 등 세계에서 유일한 왕벚나무 자생지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
기상학계에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라는 유명한 이론이 있다.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가 발표한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단순한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기상과 관련되는 이론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쓰인다. 이와 관련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이 나비효과로 이어져 미국 워싱턴 DC 왕벚꽃 축제를 살렸다는 외교적 비화가 있다. 봄을 맞아 벌어지는 벚꽃 축제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축제는 미국 워싱턴 DC 왕벚꽃 축제라고 한다. 미국의 수도 중심부 포토맥강 변을 따라 화려하게 뒤덮은 왕벚꽃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벚꽃 축제는 매년 100만 명 이상 방문하는 최고의 축제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축제의 배경에는 일본과 미국의 외교적 거래가 있었으며, 정치적 이유로 사라질 위기를 맞았던 왕벚꽃 축제가 타케 신부로 인하여 현재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놀라운 사연이 숨어있다. 1905년 7월 일본 가스라 타로 수상과 미국 윌리엄 태프트 육군장관은 아시아 식민 지배에 대한 상호 양해 각서 ‘가스라 태프트 밀약’을 교환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일본 가스라 수상은 1912년 왕벚나무 5,000그루를 미국에 기증해 워싱턴 DC에 있는 포토맥강 변에 심었고, 왕벚나무가 자라나면서 아름다운 벚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미국인들은 당시 서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왕벚꽃을 일본 벚꽃(Japanese cherry)으로 부르며, 꽃을 심어 준 일본에 대하여 좋은 인식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의 기습침략에 분개한 미국인들은 포토맥강 변의 일본 벚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이때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 박사가 “왕벚꽃은 일본 꽃이 아니라 한국의 제주도가 원산지”라고 주장하면서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이에 미국인들은 왕벚꽃은 일본 꽃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왕벚나무의 이름을 ‘동양의 벚나무(Oriental cherry)’ 바꾸고 워싱턴 DC 벚꽃 축제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 에밀 타케 신부가 홍로본당에서 식물채집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변방의 섬 제주에서 빈곤한 교회 운영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식물채집으로부터 이어진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 등 식물학적인 업적들은 교회를 넘어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지면서 선교의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실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제주도 홍로본당에서 시작된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채집이라는 작은 날갯짓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넘어 유럽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미국 워싱턴 DC 왕벚꽃 축제로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령의 신비 그 자체인 것 같다.
2022. 4월호 원고
글쓴이 : 순례길해설사 오충윤 야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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