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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서(참 소중한 당신 2022.5월호)

by 나그네 길 2022. 4. 30.

'참 소중한 당신' 5월호에는 100년 전 에밀 타케 신부가 발견하였던 왕벚나무 저생지가 어디였는지 찾아보는 이야기를 기고했다.

천연기념물 사전을 비롯해 일반적으로는 1908년 4월 14일 '관음사 인근'으로 알려져 있지만, 식물채집본과 채집 당시 행적 등을 찾아보면서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5.16도로 수악교 인근 '신례리 자생지'로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참 소중한 당신 2022. 5월호 원고>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서

 

신록의 계절을 맞은 한라산에는 부활절이 지나면 피는 꽃 산딸나무의 십자화(十字花) 하얀 꽃잎이 산허리를 휘돌고, 감귤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밀감꽃 짙은 향기는 어느새 온 섬에 가득하다. 5월을 맞아 식물의 보고라 불리는 한라산에는 관속식물 1,800종이 알알이 돋아나면서 연두색 파스텔톤 풍경화처럼 신비함을 더 한다. 여기 한라산에는 제주 특산종 왕벚나무 자생지가 있는데, 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이방인 천주교 선교사였다.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서귀포 홍로본당 에밀 타케 신부(Emile Taquet. 1873~1952)1908414일 한라산에서 세계 유일의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제주도 한라산에는 왕벚나무 자생지가 4개소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국의 천연기념물 사전(1998. 교학사)을 찾아보면, 왕벚나무 자생지는 1908년 다겟 신부가 한라산 북쪽 관음사 부근의 숲속에서 꽃을 채집하여 베를린대학의 쾨내 박사에게 표본을 보냄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제주에서는 벚꽃 개화 시기에 맞추어 에밀 타케가 발견하였다는 관음사 왕벚나무 자생지를 탐방하며 외방인 식물 콜렉터(collector)를 기억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왕벚나무 자생지를 탐방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 에밀 타케가 채집한 왕벚나무 자생지가 관음사 부근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1908년도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였던 당시는 한라산을 횡단하는 도로가 없었다는 사실로 시작되었다. 타케 신부의 사목지 홍로성당은 한라산 남쪽 서귀포에 있었는데, 관음사 왕벚나무 자생지는 한라산 북쪽으로 150km 상당을 돌아가야 한다. 차량이 없던 시절에 관음사까지 2~3일 걸어가며 식물을 채집했다고 하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영국 에든버러 왕립식물원에 보관된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채집본(Taquet NO 4638)을 찾아보았다. 식물을 채집할 때는 반드시 채집본에 채집한 일자와 장소를 라틴어로 기록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타케 신부는 왕벚나무 채집장소를 라틴어로 “Quelpaert, in hoatien, 600m”로 기록해 놓았으며, 이를 해석하면 제주도 효돈 600m”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왕벚나무 자생지를 관음사 부근이라고 알려졌는지 그 연유가 궁금해졌다.

 

(추신 : 대구교구 정홍규 신부는 'hoatien'은 불어로 '호아천'이라고 읽으며 신례리 옛 지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호아천이던 효돈이던 관음사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고 할 것이다.)

 

에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에 대한 기록들을 확인해 보는 과정에서, 1942문화조선(文化朝鮮)’ 제주특집에 실려있던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이 기고문에서 자생지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서귀포에서 북쪽 2리에 살고 있던 타케는 기회만 있으면 한라산에 들어가 식물표본을 채집, 이를 구주의 학계에 보내고 있었다. 명치 41(1908) 414일 그는 관음사 부근(해발 6백 미터)의 한 그루의 벚나무에 꽃이 달려있는 것을 채취, 자신의 채집번호 4638호의 넘버를 달아 구주에 보냈다.”라고 썼다.

 

제주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석주명 선생의 기고문은 타케 신부의 왕벚나무 채집장소를 관음사 부근으로 알려진 최초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기고문의 내용이 맞는 것인가? 석주명은 19434월에서 19455월까지 서귀포시 토평동에 있는 경성제대 생약연구소 제주도사업장에 근무하면서 나비채집과 제주학을 연구했는데, 당시 대구 유스티노신학교 교장에서 은퇴한 타케 신부와 특별한 교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왕벚나무를 채집한 1908414일 하루 동안 타케 신부의 채집 일정을 살펴보면, 서귀포 홍로와 효돈지역에서 산철쭉, 채진목, 각시붓꽃 등을 채집한 기록이 있다. 따라서 같은 날 서귀포에서부터 한라산을 넘어 관음사 부근까지 왕벚꽃을 채집했다기에는 시간적 또는 물리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현존하는 자료들을 통하여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에밀 타케가 발견한 왕벚나무 자생지는 지금까지 정설(定說)로 알려진 관음사 부근이 아니라, 효돈동 북쪽 한라산 550m 지경에 있는 현재 신례지 자생지’(천연기념물 제156)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필자의 견해는 전문가들에 의해 학술적으로 연구했다거나 공식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0년 전 이 땅 제주에서 생태 영성의 삶을 살았던 에밀 타케 신부의 식물학적 업적을 보면서, 그동안 교회의 무관심 속에 잘못 알려진 사안들을 정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 찾아낸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봄을 알리며 벚꽃축제로 화사함을 자랑하던 한라산 왕벚나무는 예전의 보금자리를 찾아내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제주 식물의 가치를 높여 줄 것이다.

2022.5월호 원고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몇 년 전부터 우리는, 

이렇게 잘 못 알려지면서 통설로 굳어져 버린 에밀 타케가 발견한 왕벚나무 자생지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당시 식물채집본 등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한라산 남쪽에 있는 5.16도로 수악교 인근에 '신례리 자생지'로 정정하려는 노력을 해 오고 있었는데, 최근에 이에 호응해 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다행스럽다.

그냥 보기엔 별거 아닌거 같지만 이런 작은 사연들이 모여 더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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