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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소중한 당신

성지(聖枝)를 만드는 사람들(참소중한 당신 2022.6월호)

by 나그네 길 2022. 5. 31.

성지(聖枝)란 축복받은 나뭇가지를 말한다.  

제주도 읍면지역 10여개 성당에서는 매년 성지주일에 사용하는 100만개 이상의 편백나뭇 가지를 만들어 대도시 성당에 판매하면서 성당운영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이렇게 식물을 활용하여 성당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것은 100년전 에밀 타케 신부 당시에도 있었으니 참 좋은 비유가 아닌가?  

(성당에서는 보통 성지를 '성지가지'로 알기 쉽게 부르고 있는데, 편집부에서 동어 반복적 사용이라며 수정해 주셨다.)

 

<참 소중한 당신 2022. 6월호 원고>

성지(聖枝)를 만드는 사람들

 

성경에는 하느님께 축복받은 일곱 가지 식물이 나온다. 구약 신명기에 하느님께서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시는데 그곳은, “밀과 보리와 포도주와 무화과와 석류가 나는 땅이며, 올리브기름과 꿀(대추야자)이 나는 땅이다.”(신명 3,8)라고 일곱 가지 식물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현대를 사는 우리 한국교회에도 축복받은 식물은 있다. 이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성지(聖枝)로 사용하는 편백 나무를 말한다. 푸른 사철나무로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하며 특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없는 편백이 어떻게 축복을 받는 나뭇가지로 거듭나게 되었을까?

 

교회는 오래전부터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보내고 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면서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성지(聖枝)란 축복받은 나뭇가지를 말하는데, 한국교회에서는 아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종려나무가 없으므로 편백 나무를 성지로 쓰고 있다. 그런데 성지주일에 많은 성당에서 사용하고 있는 성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신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주도 읍면 지역의 본당들은 성지주일에 필요한 나뭇가지를 대도시 성당에서 주문받아 납품하는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 각 본당에서는 적게는 5만 개에서 25만 개 정도의 성지를 주문받는데, 이를 만드는 작업에는 많은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나뭇가지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풍성한 편백 나무숲을 찾아야 한다. 물론 가지를 자르는 것은 산림법에 저촉되어서는 안 되기에 적당한 나무를 골라내는 것은 어렵다. 또한 날씨를 예측하면서 작업 날짜를 정해야 하는데, 성지주일보다 너무 빨리 시작하면 가지가 말라버리고 늦으면 택배를 보낼 수가 없기에 일정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지주일 1주일 전 본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성지 작업을 끝마쳐야만 한다. 한라산 중턱에 있는 편백 나무는 높이가 10m 정도 자란다. 이러한 편백 나무의 가지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사다리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하며, 나뭇가지를 톱으로 자를 때에도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나무를 자른 다음은 쓸모없는 부분을 정리하고 끈으로 단단히 묶어 작업장까지 이동한다. 보통은 작은 트럭에 편백 나뭇가지를 가득 실었을 경우 3만 개 정도의 성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편백 나무를 작업장으로 실어 가게 되면 나뭇가지를 만드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이때부터는 남녀 구분 없이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여 손바닥 크기의 알맞은 성지를 만들어 낸다. 마지막으로 주문받은 수량을 상자에 포장하여 발송하는 것으로 모든 작업을 끝내게 된다. 본당별로 다르겠지만 성지 10만 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업기간이 5일가량 소요되는데, 하루 5~60명 정도 연인원 300여 명이 참여하고 있으니 대단한 노력 봉사라고 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 본당의 많은 신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성지 작업에 봉사하는 것은 단순한 수익사업이라는 개념을 넘어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성지를 만드는 작업을 함께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본당 제3대 주임이셨던 에밀 타케(Emile Taquet. 1873~1952) 신부가 100년 전에도 교회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식물을 채집했다는 사실이었다.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타케 신부가 영국 큐 왕립식물원장에게 보낸 191061일 자 편지를 보면 나는 귀하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식물 가격은 50프랑/백장당 입니다.”자신이 채집한 식물표본을 사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사연을 볼 수 있다. 이렇게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교회를 운영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으며, 또한 식물을 판매하여 비용을 마련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비한 기시감(旣視感)까지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나뭇가지를 판매하여 교회는 얼마나 큰 수익을 보고 있을까. 성지 1개의 가격은 300원이라고 한다. 요즘 동네 마트나 생필품점에 가 보아도 300원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신자의 가정에서 다음 해 재의 수요일까지 1년 동안 성물처럼 보관하는 성지와 비교하기에는 그 가격이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당의 성지 판매 수익금은 무한 봉사로 참여한 신자 300여 명의 인건비 정도일 뿐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참여와 노력으로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전국 성당에서 많은 신자의 손에 들려 축복을 받는 성지를 만들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본당 운영의 어려움에 도움이 되고 있음에 감사한 일이다.

 

창세기 천지창조에 보면 식물은 사흗날에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 가운데 가장 먼저 창조되었으며, 사람과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 양식으로 주어졌다. 이렇게 우리의 양식으로 창조된 식물은 단순한 먹을 것이 아니라, 성지(聖枝)라는 나뭇가지를 통하여 주님 수난을 묵상할 수 있으며 교회의 운영비까지 만들어 주고 있으니 우리에게 식물은 얼마나 소중한가?. 인간은 없어도 식물은 살지만, 식물이 없으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죽는다.

 

2022.6월호 원고

글쓴이 오충윤 야고보

한국 가톨릭교회 신앙 잡지 중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다는 '참 소중한 당신'에 '삼다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주제로 졸필을 연재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다. 

 

그래서 편집부에 연락하여 필진을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를 했는데 연재를 계속해 달라는 청탁을 다시 받았으니,  8월호부터는 새로운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신앙지에 작은 이야기를 연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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