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풀빵의 추억

by 나그네 길 2013. 4. 10.

 오늘은 서귀포오일장에 갔다.

서귀포 오일장은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4일과 9일, 매5일주기로 정확하게 열리고 있다. 

오일장에 가면 먼저 들리는 코스가 있는데 바로 먹거리 장터이다

거기에는 풀빵을 비롯하여 호떡과 꽈베기, 도너츠와 쑥빵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는데

보통은 국화빵이라고 불리는 풀빵집에 먼저 간다.

국화빵을 제주에서는 우리 어릴 때부터 풀빵이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풀을 쑤는 밀가루로 만들어서 그런게 아닌가한다.

 

이 먹거리 장터는 오일장에 온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아직도 매일시장이나 도심지 포장마차에서도

국화빵이나 붕어빵을 파는 곳은 많은 것을 보면 꽤 수요가 있다는 말이다.

 

어릴때부터 먹어보았던 추억의 풀빵은 지금은 1,000원에 4개를 준다.

우리는 금방 낸 뜨거운 풀빵을 손을 '호호' 불어가며 각자 4개씩 이천원어치를 먹으며 만족해 졌다. 

 

어릴적 풀빵에 대한 추억이 아련하다.

내가 처음으로 풀빵을 안 것은 국민학교를 갓 들어 갔을 때였던것 같다.

우리 동네 위미리에 재일교포 일가족이 귀화를 했고, 바로 풀빵집을 차려 장사를 했는데

그 집은 지금도 풀떡집, 풀떡 하르방이라고 불리고 있다.

 

돼지기름으로 검정판을 딱아내고 밀가루를 부은다음 팥을 넣고 익히는데 그 냄새가 너무 고소하였다.

당시에는 1원에 2개쯤 했었던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얼마나 풀빵이 먹고 싶었는지 매일 그 집앞에가서 놀았다.

냄새만이라도 맡고 싶었고, 혹 재수가 좋으면 형들이 사먹을 때 얻어 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풀빵을 10개 사고 가던 동네 형이 우리 친구들 4명에게 나눠먹으라고 풀빵 하나를 주었다.

그 때, 4등분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서 맛 본 풀빵 한조각...그 맛.....

대축일 영성체 거양할 때 반으로 갈라진 대제병을 보는 것 만큼 기뻤었던것 같다.

 

 

우리 어릴적에 일요일이 되면 들판으로 지내를 잡으러 갔다.

지내 한마리에 1원쯤 했는데 10마리만 잡아도 풀빵을 실컷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어디를 가서 그렇게 지내를 많이 잡을 수 있었겠는가?

오전내 골갱이를 가지고 돌을 뒤집다보면 겨우 대 여섯마리를 잡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지내를 무서워 하지 않고 맨손으로 잡을 수 있기는 하다.

 

 

그러다가 조금 더 자라면서 이제는 직접 풀빵을 만들어 먹게되었다.

보통은 서너명이 함께 돈을 모아서 밀가루와 소다와 설탕을 사고 풀떡판을 빌려온다.

밀가루에 물과 소다를 약간 놓고 휘휘 저어 걸쭉한 반죽을 만든다.

그리고 돼지를 추렴할 때 미리 구해둔 돼지기름으로 판을 돌리고 나서

밀가루 반죽을 24개 짜리 풀떡판에 넣고 구우 풀빵이 되는데,

그러나 대부분은 밀가루에 소다 냄새가 많이 나서 직접 만든 풀빵은 많이 먹지를 못했다.

 

60년대 중반 우리 마을은 말 그대로 찟어지게 가난할 때이다.

보통 11월달이 되면 소로 밭을 갈고 돗거름(돼지우리에서 퍼낸 거름)으로 보리를 간다.

그리고 겨우내 조밥에 점심은 고구마로 때우고 바다에 가서 고매기를 잡아다가 반찬을 했다.

5월이 되면 보리를 타작하여 수확하고 바로 그 밭에 고구마나 조 또는 메밀을 심는다.

수확한 보리는 일부는 맥주의 원료가 되는 맥주맥으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주식이 된다.

가을이 되면 고구마를 수확하여 전분공장에 판매하고 겨울을 나기 위하여 땅을 파서 보관한다.

그 때쯤이면 보리쌀이 다 떨어져서 조와 고구마가 주식이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추운 겨울철에 풀빵을 지져 먹으면서 고소함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어릴적에 밀가루는 대단히 귀한 식품이었다.

새마을 운동에 동원되어 길을 만든다든지 할 때는 밀가루가 배급되었다.

그러면 그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거나 어떤 때는 막걸리를 넣은 빵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집에 잘 간수해둔 밀가루를 각자가 약간씩 퍼내어 가져와서 풀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이러한 풀빵을 잘 안먹는다

이미 입맛이 서구화 되었는지 과배기나 튀김류 등도 잘 안먹는다.

 

그러나 아무리 피자가 맛있다고 하여도 풀빵을 굽는 것처럼 고소한 냄새를 만들지는 못한다.

피자집은 간판을 봐야 찾을 수 있지만 풀빵집은 걷다보면 그냥 냄새가 풍겨와서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오일장에 가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 나선다.

먹거리 장터에 가서 풀빵 4개, 천원어치를 사먹으며 다시 한번 '풀빵의 추억'에 젖어 보고 싶기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