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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시께 이야기(제주도 제사 지내는 방법)

by 나그네 길 2013. 4. 11.

예전에 제주에서는 제사를 "시께"라고 했다.

이 말의 뜻은 한자 ‘食皆’에서 왔다고 하기도 하나 분명한 것 같지는 않으며

이 말을 글자로 옮겨 ‘식게/식개/식깨/식께/시깨/시께’ 따위 여러 변이형태로 된 것 같다는 말도 있다.

 

제주 방언으로 된 속담에 "시께집 아이 놀쓴다"는 말이 있다.

번역하면 "제삿날 그 집 아이는 괜히 우쭐거린다"는 말로 이해하면된다.

제삿날에는 집에 떡이 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자랑하며 큰소리치게 된다는 말이다.

예전엔 그만큼 제주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모든 것이 부족하였고,

보통은 제삿날이 되어야 떡과 곤밥(쌀밥)을 먹어 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가 힘이 세질 수 밖에 없었다. 

 

 

 

1960년대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동네 제삿날 풍습은 좀 복잡했던것 같다.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면서도 제사날이 되면 동네 친족들이 제삿집에 모여 함께 떡을 만든다.

당시에는 수도와 전기가 없던 시절이라 여자 어른들은 물허벅으로 우물의 물을 항아리에 가득 채워 놓았고

 

커다란 솥에 쌀로 둥굴게 만든 인절미와 반달형의 솔편 그리고 침떡(시루떡)을 만들었다.

또 솥뚜껑을 이용하여 지금은 빙떡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 "모밀 정기"를 지지는 냄새가 구수했다.

그런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와 사진에서 처럼 인절미, 시루떡, 빙떡은 지금도 제사상에 올라온다.

 

저녁이 되면 친족집 아이들이 "제숙"(제사에 쓰는 마른생선)을 한두마리와 술 또는 음료수를 가져오고,

제삿집에서는 그 아이들을 통해서 제삿떡을 종류별로 조금씩 나누어 친족집에 보낸다.

 

그리고 남자 어른들은 커다란 화로에 숯불을 붙이고 생선과 묵과 적을 굽기 시작한다.

생선은 지금과 같은 옥돔이었고, 적은 돼지고기를 아주 작게 썰어 대나무 고치에 꿰어내었으며,

마른 풀잎을 가지런히 다듬어 참기름을 바르면서 정성스래 구워 내는데 그 냄새가 아주 고소하였다.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은 지금과 비슷하게 이어져 왔다.

먼저 병풍을 치고 상에 음식을 차린 다음 지방을 써서 병품에 붙인다.

홍동백서, 어동육서 등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추어 차리게 되며 수저와 술잔도 놓았다.

 

특이한 것은 제사상 밑에 다른 잡신들을 위한 떡이나 과일을 조금 차려 놓는 것이다.

앞상에는 향로와 초 향과 함께 빈잔에 감귤나뭇잎을 두어개 놓고 술을 비우는데 그 뜻이 애매하다.

그리고 친족집에서 가져온 술과 음료수와 퇴주그릇은 제사상 옆에 진열하여 놓는다.

 

지금 아이들은 친족집 제삿집에 가지 않지만 당시 제삿날은 아이들이 신나는 날이었다.

친족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밤 8시쯤이 되면 모두 제삿집으로 와서 차려 놓은 제사상에 먼저 절을 한다.

그러면 아이들에게는 쟁반에 떡을 두어개 내어 주고 어른들에게는 떠과 함께 술도 한 잔 드린다.

 

제사는 자시(밤 12시)가 넘어야 지내기 때문에 4시간 이상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당시에는 TV는 커녕 라디오도없던 시절이었기에 입담이 좋은 친족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였으며,

 

이러한 기회를 통하여 집안의 풍습이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리고 4.3사건과 같은 생생한 증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이러한 제사를 통하여 친족간에 끈끈한 정을 이어오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삿날 밤 11시쯤되면 너무 고요하고 모두가 피곤하여 졸게된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그냥 마루나 방과 부엌에 여기 저기에 누워 잠간씩 눈을 붙이며 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제사 시간이 되면 어린 아이들도 "시께먹으라"는 소리에 발딱 잘도 일어난다.

 

제사시간이 되면 메(밥)과 갱(국)을 만들어 놓았다가 제사 직전에 제삿상에 올리게 되는데,

메는 곤빱(쌀밥)으로 갱은 생선국으로 만드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북한에서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주에서도 제삿날이 아니면 '곤밥에 고기국'을 맛 볼수 없었다.

 

집안의 제사는 오래전 부터 내려오는 유교문화의 전통이다.

그러나 유교적인 제사 풍습은 각각의 집안마다 지킬 것도 많고 까다롭기가 그지 없다.

그러나 우리집안에서도 몇년전 부터 제사 시간을 저녁 9시로 변경하였고,

올해 부터는 제관들도 큰옷(제사용 베로 만든 한복)을 입지 않기로 하는 등 변화가 일고 있다.

 

제삿날은 자식들을 중심으로 삼헌과 집사 2명을 뽑아 제사를 주관한다.

제사시간이 되면 메와 갱을 상에 올리고 향로에 불을 지피며 향을 태운다.

 

우리 집안에서는 제사 전에  '문제'라고 부르는 잡신을 위한 제를 먼저드리는데,

초헌이 제사상 밑에 있던 간단한 떡과 음식을 문을 향하여 차려 놓고 절을 한다. 

지금부터 제사를 지낼 것이니 잡신들은 이것을 먹고 물러나도록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잡신들은 조상들이 먹고 난 것을 주어야 한다며 '문제'를 제사 뒤에 하는 집안도 많다.

 

 

 

<우리집 시께의 순서>

 

- 시작 인사와 손씻음 -

우리집 제사는 밤 12시가 넘으면 제관들이 큰옷을 입고 집사는 굴건을 쓰고 시작된다.

먼저 3헌이 절을 하고 나면 집사 2명이 절을 하고 그다음에는 남자 어른들과 아이들이 나이순으로 나와서 절을 2번 한다. 

다음은 '관세'를 하는데, 사발 그릇에 물을 담고 수건과 함께 내오면 제관과 집사들은 손에 물을 3번 적시며 씻는다. 

 

- 분향과 헌작 -

먼저 제관들이 한번 절을 하고 무릅을 꿇으면, 집사가 아랫상에 있는 술잔에 술을 따라 초헌에게 드린다.

초헌은 이 술잔을 받아 무릅 걸음으로 제사상 앞에 가서 향에 오른쪽으로 3번 돌리후 상에 놓고 한번 절한다.

다른 제관들은 무릅을 꿇고 있다가 초헌관이 제자리 하면 함께 일어나 2번 절을 한다.

 

- 초헌관 헌작 -

다음은 초헌관만 절을 한번 하고 무릅을 꿇으면 집사가 제사상에 있는 술잔을 내려 술을 따라 드린다.

이 때 초헌관은 술잔을 받아 다시 제사상으로 드리면 집사가 그 잔을 받아 제사상에 올리고 나서

'개'(밥그릇 뚜껑)를 열어 상 한쪽에 놓고 '저'(젖가락)를 나물이 있는 곳에 걸치면 초헌관은 절을 2번 한다. 

 

- 아헌관과 종헌관 헌작 -

아헌관이 절을 한 번하고 무릅을 꿇으면 집사가 술잔을 내려 퇴주 그릇에 비운후 술을 따르고,

아헌관이 술잔을 받아 다시 드리면 집사가 잔을 올린 후 수저를 갱에 적셔 메(밥)에 꽂는다.

아헌관이 절을 2번하고 물러서면 종헌관이 절을 한번 하고 무릅을 꿇는다.

집사는 술잔을 내려 이번에는 감주를 따라 종헌관에 드렸다가 상에 올리면 절을 두번한다.

 

- 봉헌 제주(음료) 헌작 -

다음은 제관들이 함께 절을 한번 하고 무릅을 꿇으면

집사는 아랫상에 있는 술잔을 내려 상 옆에 있는 술과 음료수를 모두 개봉하면서 조금식 잔에 따른다.

이 때 술이나 음료가 많으면 종류별로 하나만 개봉하고 음료 위로 잔을 크게 한번 돌이는 것으로 대신하여  

제관들에게 가져오면 제관들은 함께 손을 내밀고 집사는 아랫상으로 잔을 올린다.

제관들은 절을 두번 하고 일어선다.

 

-  전원 묵념 -

다음은 '숭늉'(물에 밥알을 몇알 떨어 뜨린 그릇)을 올린다.

집사는 숭늉그릇을 받아 갱그릇을 앞으로 살짝 밀어내 그자리에 숭늉그릇을 놓고

메에 꽂혀 있던 수저로 밥을 3번 떠서 숭늉에 놓은 다음 '개'(밥그릇 뚜껑)를 닫은 후 

숟가락을 숭늉그릇과 밥그릇에 비스듬히 걸쳐 놓는다.

그리고 집사들이 제관 옆에 와서 함께 절을 하며 무릅을 꿇으면 

제사 참석자 모두는 조용하게 묵념을 해야한다.

 

- 마침 인사 -

초헌관이 헛기침 소리를 신호로 묵념을 끝내고 제관들은 일어나 절을 두번하고 물러선다. 

그러면 집사를 시작으로 어른과 아이들이 나이순으로 나와 절을 2번 한다.

 

- 잡식(마무리) -

절이 모두 끝나면 집사는 '저'로 나물과 묵을 집어 숭눙에 놓고 젖가락을 제자리에 놓은 후,

술을 비롯한 상위에 있는 모든 음식과 과일들을 조금씩 뜯어내어 숭늉 그릇에 놓는 '잡식'을 한다.

아랫상에 있는 감귤잎까지 잡식 그릇에 놓은 후 지방을 떼어 불을 붙이고 재를 잡식그릇에 놓는다.

그리고 집사는 이 잡식 그릇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나무 밑에 부어 버리는 것으로 제사예식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시께의 형식을 살펴보면 조상들이 영혼이 저 세상에서 제삿집으로 내려오고

제삿상에 차린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믿고 차례를 지내는 것 같다.

가톨릭교회의 미사 성찬례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했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듯이

시께의 형식도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나중에 숭늉을 먹는 것 까지 식사의 차례로 진행되는 것 같다.

 

 

 

 

이렇게 제사가 끝나면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게 된다. 

그 당시에는 제사가 끝나면 제사상에 놓았던 음식들을 전부 내리고

 "떡반(제사상에 올랐던 떡과 고기 등 꼭 같이 나누어 쟁반에 놓은것)"을 나눠 줬다.

이 때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할 것 없이 꼭 같이 나누는데 떡반은 어른부터 차례로 드렸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에게 "술잔을 하라(술을 부어 차례로 어른들에게 드리 것)"고 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와 보면 왜 아이들에게 술을 따라서 어른들에게 권하도록 했을까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아마도 모든 물자가 부족하였기 때문에 떡과 술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고 마시도록 한 것 같기도하다.

왜냐면 술잔은 처음에 모든 분들에게 한잔씩 드리고 중간에 다시 한번, 두잔만 드리게 했다.

이 때부터 더 마시고 싶은 사람은 "술 한잔 더 가져와라" 고 신청해야만 드렸다.  

 

 

 

시께집 음식은 야밤에 먹기 때문에 참으로 맛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야말로 시께 때가 아니면 먹어볼 수 없는 음식이 있기 때문에 

어른 아이 할 것없이 제사에 참여를 많이하고 제삿집에 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 맛이 그대로 이어져 '정기(빙떡)에는 솔난이(옥돔)구이가 최고다."라는 말을 지금도 하고 있다.

 

우리집 제사음식은 수십년이 되어도 제삿상 음식의 종류는 변하지 않았다.

곤밥에 생선국 그리고 옥돔구이 돼지고기 적, 고사리와 콩나물과 묵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추가된 시께음식들은 소고기적, 튀김류와 잡채, 동태전 등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이다.

 

 

 

요즘 시께집에 가면 대화의 주제가 감귤에서 다른 것으로 옮겨 지고 수준이 높아진것 같다.

예전에는 4.3사건과 일제시대 징용 및 군대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최근에는 정치 사회적인 문제와 함께 한중FTA 등 여러가지 이슈에도 의견을 내기도 한다.

시께집에서는 오랜만에 모인 친족들과 현안사항에 대하여 의논하고 자녀혼인식 등을 공지한다.

 

내가 제주시에서 살 때에 겨울철에 제사가 끝나면 밤 1시가 넘어 버린다.

그리고 일주도로까지 눈이 쌓여 빙판길을 돌고 돌면서 제주시 집에 도착해보니 새벽 4시20분이었다.

이러한 불편을 알았던지 몇 년 전부터 우리 집안에서도 제사 시간을 밤 9시로 변경하였고,

이제는 부담없이 제사에 참여할 수 있게되었으나 친족아이들이 제사집 참여 전통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시께집 풍습도 많이 바뀌었다.

먼저 몇년전 부터 제사시간을 저녁 9시로 변경하였고 큰옷(제복)을 안 입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친척집 제사에는 당연히 안가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친족의 끈이 차츰 멀어져 간다.

 

그래서 3년전에 시께 명질 방상(시께를 먹으러 다니는 가까운 친족)을 6촌에서 4촌으로 갈랐다.

갑자기 시께집에 모이는 친족들이 줄어들자 며느리까지 시께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 거리가있는 시께가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다음세대에는 시께날 이처럼 모여 앉아 절을 하고 음식을 나눌수 있을 것인가? 

벌써 고향 위미리에 있는 조카들보다 서울 등 타지에 나가있는 조카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

훗 날 서울에 사는 조카들이 우리 부모님과 우리 형제들에 대한 제사를 어떻게 지낼 수 있겠는가.

결국 이러한 우리집안의 시께문화는 우리 세대로 마무리 되어야할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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