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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사람들

난타를 생각한다

by 나그네 길 2013. 4. 18.

서귀포성당에 새로운 '난타' 바람이 불고있다.

현요안 주임신부님에 의하여 전신자가 난타를 배우고

여름 밤에 새연교에서 신자 100여명이 난타를 공연하면서 문화 선교를 하자는 것이었다.

 

 

4. 15일 부터 서울에서 난타 전문가 선생님 두분을 초빙하고

북을 여기 저기서 빌려와서 3일 동안 연습을 했는데 50여명이 신자들이 참여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난타라는 말을 듣고 배워보고 싶었었다.

그래서 약간은 어렵게 시간을 내어 두 번 3시간을 연습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대로 상당한 흥미가 있었기에 참여한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만약 여건이 허락된다면 여름 밤 공연에 제일 말석으로 참여하여 공연을 해보고 싶어졌다.

 

 

북 하나만을 가지고도 이렇게 우람찬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고

말 많은 서귀포성당 신자 30여명이 이 시간 만큼은 한 마음이 되어 북을 두드리고 있음이 마음에 들었다.

 

그 자리에서 문득 이런 난타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눈에 불을 켜고 다른 사람들이 잘못된 꼬투리만 찾으러 다니거나

입에 침을 튀기면서 다른 사람들이 행위를 비난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변화를 바라고 싶어졌다.

 

 

세상에는 '뒷다마를 깐다'는 말이 있다.

점잖게 말하면 '뒷담화'이고 바로 말하면 '뒷 통수를 친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북채로 난타를 치는 것 처럼 '친한체 하면서 뒷 통수를 치는 나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어쩌면 우리 성당에 난타가 잘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줌마와 아저씨들 아니 60세가 넘어 손주들을 보았으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자기 나이 값도 못하고 철없이 행동하며 '뒷 다마 까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무슨 뒷다마 깔 사연들이 그리도 많은지 서로 편을 가르기를 즐기며

자기들 끼리만 어울리며 다른 신자들의 뒷다마를 까는 것도 나쁜 일인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뒷다마를 까는 할머니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당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를 높이려고 혈안이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는 것을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며,

복음말씀대로 낮은 자세로 살아가기 보다는 자기를 내세우고 윗자리에 앉아 대우를 받기를 원하며  

성당 봉사직을 무슨 벼슬로 생각하는지 악착같이 뒷다마까면서 그 감투들을 쟁취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 성당에는 박자만 맞으면 무조건 까며 때리는 '난타 공연'이 아주 적절히 맞을 것 같다. 

 

 

아마도 본당의 이런 실정을 잘 파악하신 현요안 신부님이 바로 난타공연을 생각해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타 중에 '하늘 아래 한 형제니 서로 서로 사랑하세"라는 노랫 말을 넣으며 

서귀포성당의 분위기를 새롭게 변화시키려고 하는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뒷다마 까는 사람'들이 한 통속으로 똘돌 뭉쳐있는 것을 보면 변화는 어려운 일인것 같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모르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당의 봉사직을 무슨 권력으로 생각하는 부류들이며

그러한 직책들을 빼앗길까봐 수십 년동안 웅켜쥐고 놓지를 못하는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의 발전에 암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악착같이 비난하면서

자신들이 삶이 교리 위반에 대한 잘못은 정당화 하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면

본당 신부든 수녀든 '난타'를 치듯이 무조건 '뒷다마 까며' 

자신들이 뜻대로 성당을 좌지우지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당신자 100여명이 함께 하는 난타는 좋다.

'뒷다마'를 잘 까며 성당의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간들 보다

아직은 복음말씀을 생각하며 순수하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때문이다.

 

얼마 없어 그런 인간들은 다 허무하게 사라져 가는 것이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신 세상살이 창조의 질서 이치이다.

 

지금의 신앙 생활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처럼

더 낮고 어 어려운 세상을 찾아 복음 말씀대로 사도적인 삶을 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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