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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하논순례길 해설사로 가다.

by 나그네 길 2013. 8. 26.

지난 주 토요일(8. 24일) 하논성당순레길 안내를 할 기회가 있었다.

광주교구 서산동성당 신 혁 주임신부님과 가족 등 120명과 함께 하논성당길을 걸었다.

이제 하논성당순례길이 육지부에도 널리 알려지고 있어 꾸준히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순례길을 함께하신

서산동성당 신 혁 신부님은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빨간 티에 선글라스, 그리고 마음을 휘어잡는 바리톤 목소리와 희끗한 구렛나루까지

나도 웬만하면 안 꿀리는 스탈인데 신부님의 카리스마에는 그냥 밀리는 기분이들었다.

 

지난 7월말 서귀포성당 율리안나 사무장을 통하여

하논성당길을 순례하려는데 안내해줄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논성당순례길에 대한 해설사 교육을 받아 홍보를 전담하던 나에게는 복음말씀처럼 들려

무조건 기쁜 마음으로 안내 해드리겠다고 하였다.

 

 

서산동성당 가족 캠프에 참여한 120명은

8. 24일(토) 아침 9시에 서귀포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가족들은 9개 조로 편성되어 있었으며

초등학교와 중학생 그리고 부모와 조부모 등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하는 가족캠프였다.

 

 

오늘은 캠프 2일째 날인데

9시 미사 후 2시30분까지 하논성당길 중에 복자성당까지 순례하고

오후에는 자체 피정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신부님께서는 강론을 통하여

어제는 '물의날' 그리고 오늘은 '불이날'을 주제로 진행하겠다고 하면서

순례길을 걸을 때에는 가족끼리 손을 잡고 함께 걸어 가기를 권유하셨다. 

 

미사가 끝나자 신부님께서 거창하게 나를 소개해 주셨으며

하논성당순례길의 의미와 역사적 배경 및 주요 포스트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다.  

 

하논성당은

1899년 제주지역 최초의 성당인 제주본당이 설립되면서

당시 산남지역 선교를 담당했던 김원영 보좌 신부에 의해 1900.6.12일 하논지역에 설립되었다.

 

당시 하논지역은

260여호 1,100여명이 거주하는 마을로써 외부에서 온 주민들이 많아

인에 대한 거부감이 적고 전교하기가 비교적 용이한 지역이었다. 

 

서귀포지역 최초의 하논성당은

마을에 있는 4칸짜리 초가집을 구입 설립하였는데,

3'타케'신부의 편지에 의하면 "초가의 처마가 어깨까지 내려오고

성당 10m앞에 논들이 있어 습기가 많으며 집안에는 벌래와 뱀까지 지나다닌다."고 했다.

 

김원영 신부는  우리나라 신부 중 7번째 서품을 받은 신부로써

당시 31세로 젊고 의욕에 넘쳐 수신영약책을 저술하여 제주의 무속신앙을 배격하는 등

1년 만에 신자 137(예비자 620)을 기록할 정도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천주교의 급격한 교세확장 과정에서

민간신앙에 대한 거부로 신당 파괴와 신목을 태워버리는 등

 

토착민의 정서에 반하는 선교활동으로 교세는 확장되었으나 

지역민과의 갈등을 야기 시킴으로써 신축교안의 한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1901.5월 토착지주 세력 상무사와 천주교민들이 조세문제로 충돌하자

민란주도자들이 무장하여 제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였으며,

천주교인들을 체포하여 관덕정 앞에 모여 놓고 비참하게 살해하는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으로 이어졌다.

 

 

 

1901.6월 조정에서 군인들을 파병하여 민군대표 체포까지

천주교인 600여명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학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고,  

시 제주목사가 조정 평리원 검사에게 공식 보고한 사망자 숫자는 천주교인 309, 평민 8명이었다.

 

신축교안 수습과정에서

연고가 없는 교민들이 시체는 제주시 별도봉 하천에 버려졌다가

조정에서 제주시 황사평 부지를 천주교 공동묘지로 내주어 희생자들을 이장하였으며,

천주교 제주교구에서는 황사평 묘지를 교구의 성지로 조성하게 된다.

 

 

 

 

하논성당은 신축교안으로 많은 신자들이 희생되면서 성당이 피폐해지게 되자

설립 2년만인 1902.6.17일 타케신부에 의하여 홍로성당(서홍동 면형의 집)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 후 하논마을은 쇠락을 거듭하다가

4.3사건 당시에 토벌군에 의해 16100여명이 소개된 후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고 하논성당도 잊혀져버렸다.

 

 

2010년 서귀포성당에서

 '11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뿌리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하논성당터 발굴과 초가성당 복원계획 및 '하논성당순례길'을 조성하였고,

교구차원의 순례길 조성과 맞물려 2013. 4 '하논성당 순례길'을 공식 개장하였다

 

하논성당길의 특징은

서귀포성당에서 출발하여 하논성당터와 홍로본당터(면형의집),

복자성당과 복자성당터를 연계하는 산남지역의 천주교의 역사와 발달과정을 지켜보고

다시 출발지인 서귀포성당으로 돌아오는 10.6km의 천주교순례길이다.

 

 

서귀포성당은 산남지역의 신앙의 못자리로

하논성당에서 홍로성당으로 명칭을 변경하다가 1937년 지금의 이 자리로 이전하면서

서귀포지역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성당으로써,

제주교구 남부지구 7개 성당을 본당으로 분리시킨 모태성당이다.

 

서귀포성당 역대 27명의 주임신부가 있었으며

골롬반회 등 외국인 신부들이 많았는데,

 

3대 프랑스 출신 타케 신부는

성직자이자 식물학자로 제주도 왕벚꽃나무 자생지를 세계식물학계에 소개,

최초 온주 감귤나무 도입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하논지역은 5만년전에 화산 분출로

지표면보다 낮은 마르형분화구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아

세계환경총회(WCC)에서 하논복원이 의제로 채택되었으며,

 

날에는 호수였는데 500년 전에 물을 빼고

논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원형이 훼손되고 있다.

 

 

하논성당을 이전할 때 걸어갔던

오래된 담쟁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천지연 상류 선반내(솜반내)의 시원한 물을 만날 수 있으며,

 

선반천을 따라 골목길을 걷다보면

농민들이 애환이 담긴 우람한 흙담소나무길과 후박나무 가로수길를 만나게 된다.

 

솜반내 또는 선반내는 천지연 상류를 이루는 하천으로 사시사철 맑은 물이흐른다.

솜반내의 정확한 뜻은 알길이 없으나 아마도 넓고 평평한 돌이 있는 하천이라는 말이 있다.

 

 

 

솜반내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아주 알맞는 식사장소였다.

도시락도 질서 정연하게 조별로 배부되었으며

 

우거진 나무그늘과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가족끼리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풍경이 너무도 다정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점심을 마치고 어린 학생들이 신이 났다

선반내의 시원한 물속에 풍덩들어가 마음껏 여름을 즐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땀에 젖었던 얼굴들이 환하게 피어나 웃음을 준다.

 

 

중학생들은 웃옷을 벗어버렸다.

도심지 성당에 아이들이지만 대부분 수영을 배운것 같았다.

 

하긴 여기 선반네에서는 수영을 못해도 된다.

물이 깊이가 150cm를 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위험이 없다.

이 학생들에게는 선반내에서 목욕을 하던 기억으로 인하여

하논성당순례길이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함께 즐기며

웃음으로 박수를 치고 사진을 촬영하며 모두들 즐거워한다.

 

 

점심휴식이 끝나자 다시 조별로 인원 파악을 한다.

서산동성당 신자들은 카리스마가 있는 신부님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일정이 정확하고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협조를 하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선반내길을 따라 오후 일정을 출발하였다.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물놀이를 해서인지

순례를 출발하는 모두의 발걸음이 가볍기만히다.

 

 

 

선반네길은 언제보아도 아름다운길이다.

선반내 길가를 따라 길게이어지는 순례의 행렬도 아름답기만하다.

 

 

흙담소나무길은

도심 아파트 가운데 우람찬 소나무들이 100여그루가 늘어서 있다.

 

옛날 홍로마을에 산불이 많아 주민들이 피해가 심하자

풍수지리에 마을 앞이 너무 휭하니 트여서 불이 자주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

소나무를 캐어다 마을 앞 돌담길에 일렬로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96그루가 남아있다.

 

 

한라산 백록담에서도 보이는

서귀포시내를 관통하는 도로에 후박나무 가로수가 심어져있다.

 

오래된 가로수는 시원함을 달래주고 있어 도심을 걸어도 그리 힘들지 않으며,

후박나무의 껍질은 한약제로도 쓰인다.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홍로마을길을 돌아서

 600년 전설이 깃들어 있는 지장샘을 시간이 모자라 그냥 스쳐서 지나갔다.

 

제주도의 정통 올레길과 오래된 돌담에 대한 내력을 이야기 하며

제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다.

 

 

드디어 옛 홍로성당 터 복자수도회 피정센터인 면형의집이 나오게 되며,

여기에는 타케신부님이 100년 전에 일본에서 도입한 온주감귤나무를 볼 수 있다.

 

복자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면형의 집 피정센터에는

김기량  펠릭스베드로 성당이 있고 200년이 넘은 보호수도 있다.

그리고 6.25전쟁 때 피난온 신학생들이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이기도하다.

 

 

여기는 하논성당이 1902년 6월 타케신부님에 의해 이전했던 홍로본당터가 남아있다.

이 자리는 35년동안 산남지역 천주교의 정착이 이루어진 뜻깊은 장소이며

지금까지도 많은 신자들이 피정을 하는 면형의집이 있다.

 

면형이란?

둥그런 밀떡이 성체로 변화되어도 여전히 밀떡의 형상으로 남아있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복자수도원에서 추구하는 수도회의 정신이기도하다.

 

 

100년된 최초의 온주감귤나무 앞에서 각 조별로 기념촬영을 하였다.

총120명을 9개조로 나누어 조장이 책임을 지고 운영하고 있어

모든 일은 조별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일정은 여기 서귀복자성당까지이다.

10시30분에 서귀포성당을 출발하여 2시30분에 복자성당에 도착하였으니

선반내에서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면 3시간을 걸었다.

 

따라서 하논성당순례길(10.6km)은

천천히 걷는다하여도 4시간이면 다 둘러볼수 있는길이다.

 

 

복자성당에서 하논성당순례에 대한 의미를 기리며 기도를 하였다.

 

그리고 신부님께서 다시 한번 나를 소개해 주셨다

"오늘 하논성당순례길을 함께 하면서 안내와 해설을 해주신 야고보 형제에게 큰 박수 부탁합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박수를 받으며 마침 인사말을 하였다.

"그냥 보이는 길도 뜻을 알고 걸으면 다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서귀복자성당을 둘러본 후에

서귀포시가지를 걸어가면서 시내관광을 하다보면

서귀포지역 민주화의 성지 복자성당터와

서민들이 삶과 애환을 함께 호흡하는 매일올레시장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한 미술가의 생이 담겨있는 이중섭거리를 걸으면서

이중섭기념관과 벼룩시장 그리고 예술문화장터에서

아기자기한 그림과 거리공연과 문화의 향기에 담뿍 취하다보면

어느새 출발지인 서귀포성당으로 돌아와 아쉬움을 더하게 된다.

 

그러나 오늘은 여기 복자성당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순례를 마쳐야한다.

 

 

아무리 보아도 신부님은 낮익은 얼굴이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신부님께 물어보았다.

 

"신부님 혹시 꿀포츠라고 아십니까?"

설래설래 고개를 흔드신다.

 

 

아래 사진이 성악가 '꿀포츠 김성록'씨이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 서귀포성당에서도 공연을 가졌었는데,

 

서산동성당 신 혁 신부님과  모습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포스와 카리스마 등 닮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번 가족캠핑 순례길에 히로인,

총무를 담당하시며 도시락도 주시고 시원한 물도 챙겨주신 자매님!!

언제나 웃는 모습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모습을 멀리서 살짝 담아보았다.

 

이 포스팅에  개인사진은 신부님과 이 자매님 뿐으로 다른 분들의 초상권은 침해하지 않았다.

 

 

제주에는 아름답고 경치가 좋은 길이 많이 있다.

 

그러나 천주교 선조들이 걸어 왔던 수난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생태와 서민들이 삶과 지역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감동을 주는 길은 하논성당순례길 뿐이다.

 

 

하논성당순례길을 함께 걸었던 그날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광주교구 서산동성당 신 혁 신부님과 가족 캠프 형제 자매님 모든 분들께

언제나 사랑과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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