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초하루 모듬 벌초 하는 날,
남원읍 위미리 지경 뽀로재(뾰쪽한 동산)에 있는
몇 대조 할아버지 묘소에 있는 동자석이 푸근한 미소로 반겨준다.
고고조(5대조) 할아버지 산소이니 아마도 150년 더 전에 돌아가셨을거고
동자석과 비석은 나중에 만들었다고 하여도 100여년도 넘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자석은 높이 약 35cm 정도로 자그마하며
할아버지 무덤을 중심으로 가운데에는 상석과 비석이 있고,
동자석은 무덤의 양 옆에 2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모양이 약간씩 다르다.
<무덤 왼편에 있는 동자석>
제주도 특유의 단순하고 둥근 모양으로 편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다.
모자만 쓰고 있으면 돌하르방하고 거이 비숫한 모습인데
둥그런 얼굴과 어울리는 둥근 눈 그리고 투박한 코가 인상적이다.
웃는 모습의 입은 인중이 길어 약간 아래 쪽에 있으며
둥글게 불룩 튀어나온 귀는 머리 뒤에 그냥 있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얼굴 전체적으로는 전혀 이상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무덤 오른편에 있는 동자석>
역시 편하게 웃는 여성형 얼굴로
모르는 사람이 처음 만나도 바로 알것 같은 미소이다.
왼편 동자석 보다는 얼굴이 약간 길어 계란형을 보이며
눈과 귀가 좀 더 양각으로 조각이 되어 있는 등
그냥 보았을 때 여성이라는 느낌이 든다.
전체적인 모양과 느낌은 왼쪽에 있는 동자석과 대동소이하고
양손은 배위에 가지런히 모아 육각 형태의 부채를 들고 있다.
동자석(童子石)이란?
무덤에 세우는 어린아이(童子) 형태의 석상으로
동(童)은 하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화산석 현무암으로 뒤덮힌 돌의 나라 제주도에서
제주만의 독자성과 토착성있는 석상 조각으로
제주인의 미적 감각과 조형의식을 한눈에 알수 있는 조형물이다.
동자석은 미술품이나 예술작품으로 평가 받지는 못했지만
제주민의 삶의 살아 있는 돌 문화이며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생활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아이의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남(童男), 동녀(童女) 의 형상으로 2기가 서로 마주보며 서 있다.
동자석은 일반적으로 산담안 상석과 묘비 옆에 좌/우로 2기를 1 쌍으로 마주 세운다.
이런 동자석의 역할은
묘지의 수호신, 영혼의 시중꾼,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벗으로
무덤주인의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한 종교적 주술적인 역할과
일종의 부장법 유습으로 저승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우리 집안은 어렸을 적부터 벌초를 다니도록 한다.
예전엔 초등학교에서도 팔월초하루에 벌초 방학을 하였으므로
중학교 때부터는 어른들을 따라 벌초를 가곤 하였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벌초를 하는 조상들의 12기 정도의 산소에는 대부분 동자석이 있었으며
벌초가 끝나면 동자석이 머리를 만져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십여년 전부터
동자석 절도범들이 늘어나면서 한 해가 지나면 동자석이 사라져 갔으며
종국에는 모듬벌초를 하는 산여왓(깨끗한 물이 있는 밭) 8대조 할아버지 산소의 동자석까지 도난 당했다.
이제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 쌓여 있는 뽀로재
5대조 할아버지 산소에만 오직 동자석이 남아있을 뿐이며,
내년 벌초에까지 이 동자석이 그대로 있을지는 오직 도둑님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자석은 무덤에서만 볼 수 있는 제주 고유의 문화 유산이다.
동자석은 사람은 살아가는데 이승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사후 곧 죽음의 공간에서 사후의 세계를 보듬어 주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동자석의 의미는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영혼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인생의 한치 앞도 미리 볼 수는 없지만
나는 내년에 뽀로재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갔을 때
이 동자석이 다시금 나를 웃으며 반겨 줄 것으로 믿으며
삶과 죽음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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