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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마지막 추석, 선친의 제사를 서울에서 하게된다.

by 나그네 길 2013. 9. 23.

일년에 두번 추석과 설날에는 한복을 입는다.

설에 입는 한복은 검정 두르마기로 입는데 별 부담이 없으나,

추석에 입는 모시 한복은 빳빳한 풀다리미질은 하므로 조심해서 입어야한다.

 

우리 집안은 결혼을 한 사람은 명절 때 한복을 입는 바람직한 전통이 있다.

만약 이러한 좋은 풍습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한복을 한 번도 입어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모시 한복을 다려 입고 아침일찍 고향마을로 가서

돌아가신 조부모와 숙부님 내외 그리고 아버님에 대한 차례를 지냈는데,

올 해로 아버님 제사상은 보는 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에 사는 장조카가 내년 설명절부터는 서울에서 제사를 지내겠다고하여

명절에 차례를 지내러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서는 제사상을 볼 수가 없게되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조상에 대한 공경의 의미로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단지 지방이라고 부르는 "00神位"를 써 붙이지 않고,

퇴물을 잡신에게 주는 "코시"등을 하지 말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교회 양식에 따른 제사지내는 방법 참조 :  내블로그  http://blog.daum.net/ohyagobo/11

 

 

우리집안은 친척이 많아 명절때 차례를 지내는 횟수도 많았다.

 

잘 아다시피 제주에는 명절에 제사를 지내는 집집마다 찾아가면서

모든 친척들이 함께 모여 차례를 드린다.

 

그래서 우리 집안에 명절 차례가 가장 많았던 때는 하루에 여덟번이었는데,

아침 8시부터 순서에 따라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다보면

제일 나중에 지내는 종손집 차례가 끝나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3시가 넘었었다. 

 

 

그 후 20여년 전부터

명절에 6촌끼리만 제사를 함께 지내기로 방상(친척)을 나누었는데

그래도 제사가 5번이나 되어 오후 2시를 훌쩍 넘기게 되었다.

 

5년여 전부터는 조카들이 제사를 주관하면서

나를 기준으로 4촌이내만 함께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아침 9시에 숙부모, 10:30분에는 선친 그리고 낮 12시에는 조부모(백부모) 세번 처례를 지낸다.

 

 

이제는 차례를 지낼 때 조카들이 3헌을 서서 제관을 하는데

지난해 부터는 제관이 입는 장옷과 두건을 쓰지 말자고 하여

한복이나 양복차림으로 제관을 하고 있다.

 

우리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면

유교적인 풍습이 많이 변화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사를 지내는 시간이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자시(밤 12시)를 넘었는데

이제는 저녁 9시로 변경하였으며

떡이 종류나 제물의 형식 그리고 제관의 복장까지 변하였다. 

 

 

이제 선친의 제사를 장조카가 주관하여 서울에서 차례를 지내는데

서울에 사는 조카들이 많고 딸과 사위까지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을것이다.

 

그리고 장조카 며느리의 고향이 서울이어서

제사 차림이나 고유한 제사음식에 대한 제주의 풍습이 많이 생소하기에

선친에 대한 제사는 모든것을 장조카 내외가 알아서 하도록 완전히 위임을 했다.

   

 

제사상에 옥돔을 구워 올리든 고등어를 구워 올리든

그리고 제사를 어떻게 지내든지 조카들이 하는 일에 간섭을 하지 말자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왕궁의 제사에 대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노론과 소론으로 당파가 시작되었던 전례를 사례로 들면서 

현대인들이 가족사에도 제사 문제가 화합이 아니라

가족간에 다툼과 갈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섭섭한 것은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명절때 선친 제사를 서울에서 지내니

고향인 위미리에서는 먼저 숙부모 차례를 지내고

다 함께 큰집으로 가서 조부모(백부모) 제사 단 2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선친의 제삿날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늘 해오던 성당 연미사 봉헌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 이상할 것 같다.

형제 자매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방안을 추진해 보아야 겠다.

 

 

명절 하루전에는 며느리들이 모두 '맹질떡 허래' 가는데

이제는 제사가 없으니 명질떡 헐 일도 없어 졌으나,

제숙으로 쌀과 생선, 술 등은 제사하는 집에 보내야 한다.

 

우리집안 제사 음식은 여러가지가 있어도 먹을게 별로 없다.

떡은 침떡(시루떡), 절편, 송편, 정기떡(빙떡), 상애, 둘래떡이 기본이고

곤밥(쌀밥)과 솔나니국(옥돔국), 고사리와 콩나물과 잡채가 있으며

묵과 쇠고기와 돼지고기 적갈, 그리고 솔나니 구이가 제사상 음식의 기본이다

 

그 외에 찐빵, 버섯전, 동태전, 갈치나 상어적, 오징어적, 오이와 양애 튀김 등은 선택이고,

술은 감주와 소주가 기본이지만 추석에는 와인류, 설에는 위스키류를 첨가한다. 

 

 

명절 차례가 끝나면 음복을 하는데

여러번 차례를 지내면서 식사를 하게 되므로 최소한 간단하게 차려서 먹는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골고루 싸서 집집마다 나누어 주는데,

예전에는 친척집에서 싸준 음식이 너무 많아 처치가 곤란했던 적도 있었지만,

상애떡이나 절편 등은 냉동했다가 쪄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설날은 차례가 끝나면 처가집에 세배를 가는 풍습이 있는데

제주의 풍습은 성묘는 벌초하는 날에 하기 때문에.

추석에는 친족들이 모여서 노는 외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다.

 

따라서 추석절에는 마을별로 노래자랑과 같 마을축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위미리인 경우에도 몇 년전까지 '조배모들' 축제가 있었는데

외부에서 인기 가수들을 초청하고 마을주민들이 노래자랑과 경품추첨을 하는 등

마을 전체 주민들을 위한 푸짐한 잔치판을 벌이곤 했었다 

 

 

우리는 명절날 차례가 끝나면

천주교회 공원묘지에 가서 장모님 성묘를 한다.

 

올해는 봉분에 떼를 새로 입혀서 주변의 묘지들보다 깨끗해 보여 

흐믓한 기분으로 연도를 바치고 추석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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