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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모듬 벌초의 추억

by 나그네 길 2013. 9. 14.

음력 팔월 초하루는 모듬 벌초하는 날이다.

모듬벌초란, 친족들이 모다들엉(함께) 벌초를 하는 날로 보면 될것이다.

 

언제부터 이 날을 모듬 벌초일로 했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집안과 마찬가지로 이 날을 모듬 벌초일로 했다.

 

붙임 :  군위오씨 위미 큰알녁집 계보 묘지 현황.hwp

 

예전에는 학교에서도 팔월 초하루날에는 벌초 방학을 했는데,

그래서 어렸을적부터 어른들은 따라 벌초를 다니다 보니

이제는 조상들이 묘소가 어디에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모듬벌초 사상 처음으로 친족 단체 사진을 찍었다.>

 

 

코스모스가  피어 가을을 부르는 정석항공관 길이 나기전

하루 종일 걸어가야 하는 대록산 벌초에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우리 집안의 산소들은 대부분 위미리 지경에 있으나,

3대 독자로 내려왔던 고조 할아버지 대에

명당을 찾아 대록산 지경으로 할아버지 묘를 천리(이장)하였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자손들이 많이 늘어나 위미리에서는 벌족이되었다.

 

우리 마을에서 50km 떨어진 표선면 대록산까지

그 당시 길도 없었는데 어떻게 천리했느지 아리송하지만,

지금은 친족들이 모두 모여 대록산으로 벌초를 하면서 축제일처럼 지내고 있다.

 

나도 군입대 전에 대록산 벌초를 갔다온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친족중에서 5명을 선발하는데

새벽 5시에 출발하여 한남리 냇가에서 아침을 먹었으며,

점심때쯤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고 걸어서 집에 오면 저녁 8시가 되었다.

 

그후, 정석항공관 길이 뚫리면서 

오토바이나 경운기를 타고 벌초를 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친족 30여명이 자동차로 벌초를 하고 있으니 참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조상님들이 산소는 위미리 지경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 있는데

그 산소마다 하나 하나 고유한 지명으로 부르며 구분하고 있다. 

 

이제 우리 아들대에는 사라져 버릴 고유한 제주어 지명이기에

벌초를 하는 순서대로 산소가 있는 고유 지명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제석모루 : 사촌형수의 묘지>

어릴때 기억으로 넓은 촐캐왓(소먹이풀 밭)으로 동산에 돌이 많아서

그 돌을 이용하여 제사와 관련된 제기를 만들었던 장소인것 같다.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있는 감귤과수원이 되어버렸다.

 

<동냇골 :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 묘소 2기>

작은 내(건천) 동쪽에 있는 '골' 약간 평평하고 넓은 곳 말한다.

예전엔 역시 촐캐왓이었으나 지금은 감귤과수원으로 변해버렸다. 

 

<뽀로재 : 6대조 할아버지 묘>

뽀쪽한 동산(재)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울창한 소나무 밭이 되어버렸지만,

어릴적에 이 산소에 가보면 나지막한 오름에 잔디가 깔려있었으며

서쪽으로는 내가 휘감아들고 남쪽으로는 위미리 마을과 지귀도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소위말하는 명당자리였다.

 

<산여왓 : 모듬벌초 7대조묘 등 4기>

살아있는 물이 있는 넓은 촐캐를 말한다.

산소에서 동족 100m쯤 가면 작은 곶자왈이 있는데

이 곳 큰 돌 웅덩이에는 마르지 않는 물이 있어 식수로 사용해왔다.

 

어릴적에는 산여왓 모듬벌초에 따라가면 

벌초 점심으로 맛있는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제물빵과 돼지고기와 술로 간단하게 묵념하고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으며 벌초를 한다. 

 

 

올해 산여왓 모듬벌초 참여 인원은 총37명이라고 했다.

예년에는 보통 50여명은 되었는데 평일이어서 그런지 참여자가 적어졌다고 한다.

여기 산여왓에는 큰묘소가 4있으며 옆에 하인 산소 등 5개의 묘가 있다.

 

사람이 많아서 벌초는 순식간에 그야말로 10분도 안되어 끝나는데,

나는 사진을 몇장 찍다보니 풀 한포기 베어볼 여유도 없을 정도였다. 

 

제주도의 산소는 산담이 특색이다.

50년 전에만 하여도 한라산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없는 초지였으며

넓은들 마을공동 목장 어느곳에나 무덤을 만들면 되었다.

 

그래서 소와 말이 침입하여 봉분을 훼손하지 못하게 산담을 쌓았는데

산담 밖에도  50cm정도의 넓이로 빙둘러 여전이라고 부르는 벌초를 한다.

 

<비애기 모루 : 작은 할머니 산소>

병아리를 제주어로 비애기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여기는 꿩비애기가 많은 동산이라고 붙여진 지명인것 같다.

 

예전엔 들에 다니다가 꿩독새기(꿩알)이나 꿩비애기를 잡기도 했는데

마른고사리로 불을 때어 구어 먹는 맛은 일품이았다는 생각이든다.

 

<제주 묘소의 정석(봉분, 비석, 상석, 산담, 여전)을 보여 주는 큰아버지 묘소이다>

 

<암부리 : 고조 할아버지 산소>

제주오름 가운데 움푹 파인 분화구를 '굼부리'라고 부르는데,

위미리 망오름(자배봉)은 봉우리 가운데 큰 굼부리가 있고

오름 서남쪽에는 암석들로 이루어진 작은 분화구가 있는데 

이곳을 '암부리'라고 부른다.

 

이곳 역시 예전에는 새왓(초가를 잇는 띠밭)이었으나

지금은 맛있는 밀감이 익어가는 감귤과수원이 되어버렸다.

 

 

<빌레못 : 친족공동묘지>

제주어 빌레는 돌이 있다는것을 뜻하는데,

이 빌레못은 냇가 넓은 돌에 물이 고여서 연못과 같다는 뜻이다.

제주도에 빌레못이라는 지명은 많은데 대부분 돌에 물이 고여 있는곳을 말한다.

 

우리집 공동묘지에는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큰형님 묘소가 있다.

이 공동묘지는 1970년대 후반에 조성되었는데

아직도 공동묘지의 1/2이상이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 집안에서 나의 나이와 위치를 보건데

내 묘소의 터도 이 공동묘지 빈터 중에 하나가 될것이다.

  

 

공동묘지 에서 간단한 친족회의를 한다.

오늘 점심식사는 어느 식당에 단체 예약을 했으며

친족들이 경조사 부조금이나 친족 회비 납부방법 등을 논의하고

자녀 혼인과 같은 공지사항도 한다.

 

올해는 서울 등지에 거주하면서 부득이 모듬벌초에 불참해도

일정액의 불참비를 받아야한다는 안건이 제시되었으나,

대부분은 벌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하여 부결되었다.   

 

 

<부토골 : 몇대조 할머니 묘소>

부토골 지명의 유래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내가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고유한 지명으로

위미리 대성동 500m 남쪽에 있는 지역을 말한다.

 

<지끄내 : 이름모를 묘소 1기>

남원음 위미2리 동백나무 숲을 지나 바닷가쪽 지명인데, 

명칭에 대한 유래는 알수없고 오랫동안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있는 묘소는 산담도 비석도 없는 자그마한 무덤인데 

아마 하인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분으로 추측하고 있다.

 

비롯 친족조상의 묘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과수원 옆에 있는 산소로

그대로 버려들수 없어 벌초를 해오고 있다.

 

 

<대록산 : 5대조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

점심식사를 하고 나면 친족 모두가 대록산으로 벌초를 가는데,

올해도 무려 30명이 참여 이동거리를 포함해 산소 2기를 두시간 정도면 끝난다.

 

그러면 가시리길에 있는 휴게소 정자에 모여 앉아 파티를 열고,

가지고간 제물들과 떡과 순대를 중심으로 술을 한잔 씩 돌리며 벌초의 뒷이야기를 나눈다.

 

집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도 여기에서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오랜만에 가까운 8촌이내의 친족들이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자리에는 삼촌과 형과 아우만 있을 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리 농담을 해도 모두가 웃으면서 받아드린다.

 

이래서 혈족은 좋은가 보다.

이래서 나도 연가를 받으면서 벌초를 가는가 보다.

 

우리집안의 벌초는 모듬벌초일에 하루면 끝난다.

조상들 중에 독자가 많았다가 증조 할아버지부터 자손들이 늘어나면서

결국 묘소는 몇 안되는데 벌초할 자손들은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우리 후손들은 벌초할 산소는 많은데

모두들 서울 등지에 나가 살면서 벌초를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걱정을 하지 말자,

그 때는 다시 그 시대에 맞도록 풍습이 이어져 갈 것이다.

 

오천년 우리나라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가 죽어서 묘지에 묻혔는데

사실 오백년 이상 벌초를 이어가는 산소가 과연 몇기나 될 것인가?

 

벌초 중에 산담에서

몇 년 동안 못 보았던 '사마귀'를 만났다. 

그래서 만나는 곤충들을 모두 기록해 두려고 폰을 대었다.

 

 

애는 '장쿨래비(잠꾸러기)'라고 부른다.

나무로 건드리면 잠자는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꼬리를 자르면서 도망을 가기 때문에 잠꾸러기로 불렀던 것 같다.

 

 

정확한 학명은 모르겠으나

우리 동네에서는 '말축'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아래는 '산디 말축'이라고 한다.

제주어 '산디'는 밭 벼를 말하는데 산디 줄기에

산디말축이 많이 있어서 이렇게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애는 모두가 잘 아는 '귀뚜라미'다.

할아버지대에는 제주어가 있었다고 하는데 잊혀져 버렸고,

우리가 어렸을 때에도 귀뚜라미라고 불렀다.

 

아래는 '보리말축'이라고 한다.

보리추수기인 6월에 보리밭에서 많이 살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시리길 휴게소 정자 옆에 있는 말 모형이다

말의 고향 가시리를 뜻하고자 만들었을 것 같은데,

코스모스가 아름다운 가시리 길을 지나가는 운치를 더해 주는것 같다.

 

내년부터는 모듬벌초일이 팔월초하루 전 토요일로 바뀌었다.

평일에 벌초를 하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이 많이 갔었는데

이제부터는 토요일로 바뀌게 된것이다.

 

이제는 마음 놓고 모듬벌초를 다닐 수 있기에

은근히 내년 벌초일이 기다려진다. 

 

군위오씨 위미 큰알녁집 계보 묘지 현황.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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