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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자연

한라산 단풍의 추억

by 나그네 길 2013. 11. 6.

요즘 한라산 골골 계곡마다 원색으로 불타고 있다.

여름 가뭄이 길어서 그런지 예년에 비하여 곱게 물든 단풍이 제철을 맞았기 때문이다.

 

한라산에는 수종별로 단풍이 물드는 시기가 달라 최근 몇 년 동안은

나무들이 한꺼번에 단풍이 들지 않아 올해 처럼 곱지 못하였던 것 같다.  

 

한라산의 불타는 단풍은 고등학교 1학년 가을 등산때 처음 만났었다.

 

당시 성판악 코스로 등산하기 위해서는 5.16도로 정기 마이크로 버스를 이용했는데

시간당 1대쯤 운행하는 30인승 버스로 60여명이 학생들이 성판악으로 이동하는데 세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등산로가 발달하지 않아서 2박 3일동안 산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등산로는 5개(성판악, 관음사, 어리목, 영실, 돈내코)코스로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백록담 안에서 밥을 지어 먹거나 정상을 반바퀴 돌 수도 있었고,

정상에서 남벽을 거쳐 돈내코와 윗세오름지나 영실이나 어리목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윗세오름에서 서북벽 절벽을 타고 정상에 오르는 짜릿한 기분을 맛볼수도 있었다.

 

 

지금은 등산로가 잘 발달되어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1일 등반을하고 있지만

예전엔 에베레스트 등반대 못지 않게 많은 준비를 해야했다.

 

먼저 배낭과 버너, 항구(코펠), 수통, 쌀, 반찬, 과일 등 식사류와

텐트, 담요, 내의, 양말 등 침구류는 물론 비누, 치약, 치솔, 수건 등 일상용품까지 준비해야 한다.

 

그러니 그냥 걷기도 힘든데 잔뜩 짊어지고 등산을 해야하니 더 힘들 수 밖에 ....

 

성판악에서 대열을 갖추어 등반로에 들어서니 말 그대로 단풍이 불타고있었다.

학생들은 생애 처음 만나는 고운 단풍 잎새에 어절 줄 몰라 감탄사만 연발하였고

사진촬영을 위하여 함께온 사진사 아저씨에게 흑백사진도 좋다며 여러장 찍었다.

 

한 두어시간을 걸어 표고버섯밭에 들어서 야영준비를 하였다. 

각자 텐트를 치고 석유 버너와 항구(코펠)를 이용하여 밥을 하는데,

여러번 물을 넣었다 빼다보니 밥을 태웠던 고소한 냄새가 지금도 느낄 수 있다. 

 

그 설익은 밥과 멸치볶음과 오이지 하나로 먹는 그 밥맛이 너무 맛있었다는 기억이다. 

 

어디에서나 학생들이 모이면 그렇듯이

소주를 가지고 와서 선생님 모르게 몇 모금씩 맛을 보기도 했으며,

 

몇 몇 담배를 피우는 친구들은 여기저기 숨어서 볼 일을 보고

텐트에서 밤새 화투를 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물론 통키타를 들고서 팝송을 멋있게 부르는 센티멜탈도 있었다.

 

나는 이 날밤 처음으로 어둠이 내리는 산이 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감각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산의 기운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라산에서의 야영은 너무 추웠다는 기억이다.

옷을 입은채 담요로 온 몸을 둘둘감고 모자도 쓰고 잤는데도 덜덜 떨릴정도여서

새벽에 일어나 마른나무로 불을 피우고 아침밥을 지어 먹었다.

 

점심은 백록담 안에서 차가운 밥으로 때우고 백록담 물을 떠다가 수통에 채웠다.

예전에는 백록담에 물이 많아 호수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물이 없을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오후에는 지금은 출입할 수 없는 남벽을 타고 윗새오름을 갔다.

지금은 관광지처럼 변해버린 윗새오름이지만

그 당시에는 자그마한 시멘트 대피소 한 동이 전부였다.

 

물론 화장실은 어디에도 없었다.

필요한 사람은 자연발효가 되도록 아무데나 이용하였을 뿐이다.

 

<한라산 서북벽 절벽계단과 쇠사슬>

 

그리고 영실절벽으로 내려오면서 보았던 단풍들을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래서 영실기암이 영주십경에 들어 갔다는 이유를 몸소 느낄 수 있었으며

그 후로 아직까지도 그때 보았던 영실기암 절벽의 아름다운 단풍을 찾아 보지 못했었다.

 

 

영실의 아름다운 단풍나무 계곡에 다시 텐트를 쳤다.

 

영실계곡의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며 피로를 풀고

그 물로 밥을 해먹으며 다시 하루밤을 야영했는데

밤새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한라산에 1100도로가 오솔길 뿐으로 버스가 다니지 못했으므로

영실에서 하산하는 방법은 영실 수로를 따라 중문면 하원리까지 걸어와야했다. 

 

이제 그 수로길이 다시 개발되었다고 하는데

너무도 지루한 길이라는 기억으로 다시는 걷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2박3일을 야영하였던 한라산 등산이

이제는 당일 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르내리고있다.

 

그리고 영실이나 어리목 코스로 등반할 경우에는 정상에 오를 수도 없고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로만 정상을 볼 수 있으며 백록담은 출입통제한지 오래되었다.

 

이제와 가만히 생각해보면 등산은 이렇게 야영을 해야 진짜 등산 같다는 생각을한다.

 

 

그 후로 한라산을 많이도 오르내렸다.

 

어느 때는 친구들과 물 한병과 김밥 한줄만 가지고 성판악 코스를 뛰어

한번 쯤 쉬었나? 3시간여 만에 정상을 밟아보기도 하였으며

좋은 친구와 함께 3박4일 동안 한라산을 완전히 뒤져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무리하게 정상을 등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사라오름의 풍광이나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은 것은? 

 

< 사진 : 안드리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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