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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제주의 설명절(세배와 차례)

by 나그네 길 2015. 2. 21.

설명절하면 먼저 세배돈이 생각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거의 받아보지 못하였던 세배돈인데

어느샌가 세배를 받으면 반드시 세배돈을 주어야 하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점점 이뻐져 가는 오지후>

 

세배돈이 액수는 다양하다.

보통은 자신과의 촌 수 관계와 나이에 따라 구별해 주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관례적으로 어느 정도 금액이 정해져 있다.

 

 세배돈을 가장 많이 주어야 하는 사람은 대학에 입학하는 조카들인데 10만원 정도이며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하는 조카들에게는 5만원을 준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날을 맞이하는 아기에게도 5만원을 주고

그 외에 조카나 손주들에게는 1만~2만원 상당의 세배돈을 주게 된다.

  

조카들에게는 군대 제대하고 취직 때까지 세배돈을 주게 되

그 외 4촌 이상 촌수가 되면 대학생까지만 세배돈을 주고 있고,

친족이 아닌 동네 아이들인 경우에 세배돈은 5,000원 상당이 보편적이다.

 

그래서 세배돈을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세배돈은 빳빳한 새돈으로 주어야하기 때문에

설날이 다가오면 은행에서는 5천원권과 만원권에 대한 신권 전쟁을 치르게 된다.

 

<명절때만 보이는 오인후>

나는 매년 4~50만원을 세배돈으로 준비하는데

50여명에게 세배돈을 주면서 설 연휴를 지나 보면 남지 않는다.

 

설 전에는 올해 세배돈은 5천원권으로 통일해야겠다는 다짐도 해 보았지만

세배를 하는 아이들이 귀엽고 옆에서 주는 금액과 맞추다 보면 예상보다 많이 지출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세배돈을 받아오기 때문에

설날 가계 지출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커 버려서 세배돈을 주기만 하기 때문인지 부담도 되는 것도 사실이다.

 

제주의 명절 풍습은 육지부와 다르다.

 

친족들이 함께 모여서 집집마다 함께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설날과 추석에는 하루 종일 제사를 여러번 지내게 된다.

 

그리고 명절때에는 차례를 지낼 때마다 제사 음식을 나눠 먹는데

몇년 전만 해도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다섯 번 차례를 지내고 그때마다 음식을 나눠 먹었던 적도 있었다.

 

제주에서는 친족을 '괸당'이라고 부른다.

 

예전에 '괸당'은 명절 때 제사를 함께 지내는 친족을 말했는데

최근에 와서는 한 지역에 살고있는 같은 씨족으로 그 의미가 넓어져 버렸다.

 

그래서 "이당 저당 필요없이 괸당이 최고다."라는 말이 생겨났다. 

 

제사는 주관자를 중심으로 증조부까지 지내고 있다.

 

8촌이내 괸당이 명절때는 하루에 10번 이상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우리 집안은 친족을 4촌 이내로 분가하여 3번 제사를 지낸다.

 

그래도 제사음식을 한 시간 간격으로 여러번 나누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명절떡(차례음식)을 싸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다.

 

제사는 완전 유교식이나 제사의 순서는 약간씩 변형되었다. 

 

가톨릭교회의 미사(제사)가 최후의 만찬에서 연유되었듯이

제사는 조상의 영혼이 제사상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제관들이 차례로 절을 하면서 술을 권하거나 음식과 숭늉까지 드리는 것이다.  

 

제사에 드리는 음식은 간결하다.

 

그 음식 중에서 반드시 올라야하는 것은 메(밥)와 겡(국)이고

떡과 함께 반찬으로는 생선구이와 적과 묵, 나물과 과일로 이루어 진다.

 

맵고 짜고 신맛의 음식들은 제사상에 올리지 않으며

대부분 간이 덜 된 싱거운 음식들이지만 그런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

 

 

어릴적에 설명절을 손꼽아 기다린것은  

새 옷을 입고 맛있는 쌀밥과 고기국 그리고 떡들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명절에 친족들이 어른 아이 함께 모여 정을 나누며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한 연휴라는 개념이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올 설명절도 저물어 갔다.

 

이제는 세배를 하기 보다는 세배를 받는 입장이 되어 버린 설날,

설명절을 지내면 한 살 더 먹는다고 하는데 이제는 나이를 먹기 싫어 잊어 버린다.

 

올 한 해 우리 모두에게 사랑과 평화가 풍성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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