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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제주 청보리밭의 추억

by 나그네 길 2015. 4. 15.

 4월도 중순,

제주 가파도에 청보리 축제가 시작되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가파도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청보리가 제주의 돌담과 어우러 바닷바람에 물결을 이루는 풍경은 눈에 선하다

 

 

아직도 농촌의  목가적인 낭만이 남아있는 청보리는 

예술적인 사진과 그림작품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로 불려지면서

어린날의 향수를 자극하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세대, 나의 어린날 청보리에 대한 기억은

낭만과는 한참 동떨어진 힘든 노동과 배고픔의 상징이었을 뿐이다.

 

 

제주는 1970년대 초반 감귤과수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보리가 주농이었다.

 

매년 11월에 보리를 갈아 5월에 수확하고 나면

다시 그 보리밭 그루터기에 고구마를 심는 전형적인 2모작 농사가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 어린날은 봄에서 가을까지는 보리밥을 먹었고

겨울이 되면 조밥과 고구마가 주식으로 배가 고팠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왜 그리 어렵게 보리 농사를 지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가을에 고구마를 수확하고 나면

그 밭에 보리를 파종하는데 그냥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었다.

 

 

제주도 농촌에는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는 '도통'(돼지우리)이 있었는데

그 돼지우리에 1년 동안 수시로 짚을 넣어 묵혀두면

 '돗거름'이라고 부르는 돈분 퇴비 거름이 만들어 진다. 

 

그래서 보리 파종은 돗거름을 이용하게 된다.

 

 

 '돗거름 내는 날'이 되면

'도통'에서 쇠스랑으로 '돗거름'을 초가집 마당으로 퍼낸다.

 

그리고 먼저 '돗거름'에 보리씨를 뿌리고 나서

온 집안 식구들이 맨발로 돗거름을 하루종일 밟으면서 보리씨가 골고루 섞이게 만든다.

 

생각해 보자,

돼지우리에서 나온 돈분 거름을 맨발로 밟는 모습을.

얼마나 더럽고 냄새가 진동하며 비위생적으로 보리 파종을 준비하는지를.

 

또한, '돗거름 내는 날'은 일손이 많이 필요하므로

어린 학생들도 거들어야 했기에 나도 국민학교를 궐석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돗거름 보리씨를

망탱이(망태기)에 담아 바래기(마차)에 싣고 밭으로 날라간다. 

 

그리고 돗거름을 맨손으로 수제비 만큼씩 뜯어내며 밭에다 뿌리

나무가지를 묶어 끌면서 흙으로 덮어주면 드디어 보리 파종이 끝난다. 

 

보리 가는 날은 손이 시리게 추웠는데도

우리 제주의 어머니들은 장갑도 없어 맨손으로 돗거름 떼어내며 보리를 심었다.

 

왜? 보리씨를 그대로 파종하면 안되었을까?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파종한 제주의 보리밭은

겨우내 파릇 보리싹이 자라나고 5월이 되면 수확을 하게 된다.

 

제주에서는 낫을 호미로 호미는 골갱이로 부른다.

누렇게 익은 황금색 보리를 호미로 베고 보릿단을 묶으면

아이들은 보릿단을 나르고 비 날씨에 대비하여 보리눌(낟가리)을 쌓는다.

 

 

보리 베는 날,

이 날 보리밭에서 꿩독새기(꿩알)를 발견하기도 하는데

꿩알을 발견하는 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

 

계란보다 색이 검고 알이 작은 꿩알은 맛있는 간식거리가 되었다. 

 

 

보리는 수확하기도 힘이 들었던것 같다.

 

옛날에는 보리를 잘 말려서 홀테로 보리이삭만 흩어 내고 

도깨(도리깨)로 보리알을 털어 내기도 했다.

 

우리 어릴적에도 보리를 수확하는 기계 '맥탁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맥탁기'는

발동기를 돌려서 보리짚단을 돌아가는 털이에 대면 보리알만 나온다.

 

그리고 보리꺼럭(보리털)은 바람에 날려 버리고 보리쌀을 수확했는데

홀태를 이용한 수확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게 된것이다.

 

 

보리를 수확하고 나면

보리짚은 집으로 가져가 땔감이나 도통의 거름용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보릿그루와 보리꺼럭은 불태워 버리는데

불타는 보리그루에 마늘을 뽑아 구워먹으면  맛이 있었다.

 

그리고 보리는 맥주맥으로 팔아서 농가의 주요한 수입원이고 식량이 된다.

이렇게 나의 어린 날 제주의 보리 수확은 끝났다.

 

 

우리 어린 시절에도 '보리밭' 노래는 있었다.

 

지금은 신라호텔이 들어서 버린 중문해수욕장 절벽 위 황금빛 보리밭을 걸으면서

목청을 다하여 고음의 보리밭 노래를 열창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청춘 남녀들이 보리밭에 얽힌 사연과 함께

전설처럼 전해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었다.

 

<이숙자 화백의 작품 - 이브의 보리밭>

 

이렇게 수확한 보리를 이용하여

 '보리개역'(미수가루)이나 뻥튀기를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어린 날 제주에서 보리는 아주 귀한 곡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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