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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비석 세우는 날

by 나그네 길 2015. 1. 22.

죽은 자들의 쉼터 무덤에는 어디에나 비석이 있다.

 

그리고 그 비석에 망자를 추모하는 글을 써 넣는 것도 

동서고금 어디에서나 비슷한 양상인것 같다.

 

나는 비문의 전문가가 아니어서 다른 지방의 비석에 대하여는 잘 알 수 없으나

최근 우리 집안에서 비석을 만들어 세우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제주의 비석들은 모두 다 비슷하다.

 

앞면에는 망자의 직함과 이름을 크게 적어 묘의 주인을 나타내고

왼쪽 면으로 출생과 사망 연도부터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뒷면에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들 그리고 딸과 사위와 외손자들까지

모두의 이름을 적고 나면  오른쪽 면에는 날짜와 비석을 건립한 자손의 이름을 적게 된다.

     

 

나는 어쩌다 이 나이가 되도록 비석을 세우는 것을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나의 숙부와 모님 묘에 비석을 세우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면서

이 작은 돌 비석 하나를 세우는데도 여러가지 까다로운 절차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숙부님이 돌아가신지는 30년도 더 되었고, 숙모님도 아마 그 반은 된 것 같다.

 

그런데 지금까지 비석을 세우지 못한 이유는 있었는데

그 중에서 첫째 이유가 나의 어머님 즉 손위 사람이 살아계셨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내 어머님이 100세가 넘게 장수하심에 따라

풍수를 아는 분에게 비석에 대하여 문의하였더니

 

사람이 장수하여 100세가 넘으면 나이를 다시 먹는 것과 같으니

아랫 사람의 비석을 세워도 된다는 유권 해석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날을 선택하고 토신제를 주재할 사람과 축문을 써 왔다.

 

위 축문은 한자가 짧은 나의 실력으로는 다 읽을 수도 없지만,

"오늘 좋은 날을 택하여 비석을 세워 드리니 부디 편안히 영면하시라"는 내용인것 같다.

 

그리고 아래와 같이 제주도 특유의 제물을 마련하였다.

옥돔구이, 소고기와 돼지고기 적, 그리고 모밀 빙떡과 빵이 그것이다.

음료는 소주와 오렌지 쥬스를 마련해 올렸다.

 

 

먼저 토신제를 드렸다.

우리 마을에서 풍수를 잘 아는 분을 모셔와 토신제를 주례하도록 했다.

 

특이하게도 토신제는 묘의 앞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산소의 뒷편에서 북쪽을 향하여 제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숙부님과 숙모님 묘소 뒤 쪽의 가운데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절을 하고 제주를 드리고 나서 참석자 모두가 업드린 가운데

 

한자로 쓴 축문을 소리내어 읽고나서 불에 태워 뿌리는 것으로 토신제를 마쳤다.

 

 

제주에서는 이런 일을 할 때 '제물떡'을 부조하는 관습이 있다.

 

제물떡이란,

제사에 필요한 떡을 가지고 가서 산에도 올리고

다 같이 나누어 먹는 떡을 말한다.

 

예전에는 제물떡으로 문친떡(시루떡)을 주로 했었는데

요즘에는 동네 베이커리에서 간단하게 사온다. 

 

 

비석을 세우는 순서는

먼저 '상석"(비석 앞에 제물을 올리는 돌)을 땅을 파서 잘 묻는다.

 

 

그 다음에는 받침석(비석을 바쳐주는 돌)을 상석 뒤에 놓는다.

모두가 통돌로 만들어서 대단히 무겁다.

 

 

받침석은 가운데 비석과 같은 크기로 밑면에 구멍을 팟는데

그 구멍에 시멘트를 붓고 비석을 올려 놓으면 된다.

 

여기에 시멘트를  넣는 이유는 

비석이 잘 붙어 오래가고 흔들리지 않게 단단해져 좋다는 것이다.

 

 

삼다수병에 물을 부어서 세멘트가 잘 굳어지게 한다.

 

 

이제 비석이 완성되자 다시 제사를 지낸다

 

상석 위에 약식으로 제사상을 차리고 향을 피운다.

제물은 먼저와 거이 대동소이하다.

 

 

이번에는 묘소 앞에서 자식들이 제사를 주례한다.

술과 잔을 드리고 차례로 절을 한다.

 

 

그리고 참석자 모두가 배례를 올리면

집사가 다시 축문을 읽고 불에 태워버림으로서 제사를 마친다. 

 

 

비석의 가격은 기본이 50만원으로 글자 한자에 얼마를 추가 계산하면

자손들의 숫자에 따라 보통은 100~120만원 상당이 든다고 한다.

 

비석에는 현재 직계 자손은 증손까지도 모두 적어 놓고 있는데

외손자의 경우에는 손자까지만 이름을 적고 있으며,

최근에는 비석의 이름도 한글로 새기는 추세이다.

 

 

제주도 특유의 제물이다.

예부터 제주에서는 옥돔을 생선이라고 부르며 제사상에 1순위로 오른다.

 

그 다음에는 쇠고기 적과 돼지고기 적,

그리고 고사리와 콩나물이 반드시 들어가 제사상에 한자리하게 된다. 

 

 

그 다음은 모물정기(메밀로 만든 빙떡)이다.

 

모물정기란, 아무런 양념이 없이 솥뚜껑에서 둥굴게 전을 내어

무우채를 썰어 둘둘 말아놓는 아주 간단한 떡이다.

 

아마도 아무런 냄새도 맛도 없기에

조상의 영혼들이 찾아와 먹기에 좋으라고 제사상에 올린 것 같다.

 

 

비석을 다 세우고 난 뒤에는 둥굴게 둘러 앉아 음복을 하고

가지고온 제물과 제물떡을 나누어 먹는것으로

비석 세우는 일을 모두 마쳤다.

 

 

오늘 숙부와 숙모님의 묘소에 비석을 세우는데

적지 않게 살아온 나 역시 이렇게 비석을 세우는 제사는 처음으로 보았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리 자손들이 이 비문을 읽을 때

오늘 이 자리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을 유추해 낼 수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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