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여름이 막바지인것 같다.
여름방학을 맞아 피서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 피서객들이 열기와
남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해양성 기후의 습한 더위가 온 섬을 가득 덮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이 특별한 피서 계획도 없이 여름을 보내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시즌이 되면 며칠간 아이들과 함께 하며 외식정도를 하고 있을 뿐,
이제는 각자 자기들의 계획에 의한 피서를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이렇게 시원한 계곡을 찾아 물에 발을 담그는 정도가 우리 부부의 피서 방법이다.
내 어린날 60년대에도 여름방학은 있었다.
당시에도 여름방학책이 있었으며 식물채집과 같은 방학숙제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특별했던것은 방학동안 "조기회"라는 아침운동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국민학교에서 방학프로그램으로 "조기회"를 운영했는지 모르지만
그런대로 그 당시에는 좋았었다는 생각이든다.
동네별로 학년구분 없이 모이면 20여명이 되는데
새벽 6시경에 바닷가 잔디밭에 모여 맨손체조를 하고 마을청소도 하는것이었다.
어떤 날은 학교에서 선생님이 조기회 장소에 함께하여
학교의 공지사항을 알려주기도 했다.
당시 여름방학 조기회는 자율운영이 원칙인것 같다.
6학년 중에서 대표가 있어 조기회 출석을 체크하고 맨손체조를 리드한다.
아이들이 새벽잠에 일어나기 힘들기에 집집마다 몰려다니면서
"조기회 가게~ 조기회 가게~" 소리 치면서 깨워주기도 했다.
어린날 여름방학 조기회에서 아주 특이한 것이 기억난다.
우리 위미국민학교에서는 7개 동별로 조기회를 운영했는데
어린이들에게 조기회에서 아침마다 마을 길가의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도록 하였다.
단순히 풀을 베어 네모지게 크고 높게 쌓아 놓은 퇴비가 잘 썩어 거름이 되면
마을 주민들에게 팔아서 학교운영비로 사용했던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지금 이런 발상을 했다가는 그 날로 그 선생은 사표를 써야 할게다.
60년대 제주에서는
아이들이 방학을 하여도 특별히 할 것이 없었다.
고구마 밭에서 검질(잡초)을 메거나 동네 바다에 물장구를 치다보면
온몸에 피부가 벗겨지면서 얼굴은 그냥 새까매진다.
차라리 방학에 없었으면 학교에라도 나갈 수 있는데 집안일을 함께하느라 더 힘들었던것 같다.
유난히 더운것 같았던 올 여름도 오늘 말복으로 한숨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지난 7월말 부터 한 2주동안 방학을 하였던 SNS도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
블로그와 페이스북 그리고 카카오스토리는 물론 트위터까지도
여름을 맞아 잠간의 휴식들이 이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갈 양분이 되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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