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사제이자 식물학자인 타케(한국명: 엄택기) 신부는
제주지역 전례 초기인 1902년부터 13년 동안 서귀포성당 주임신부로 선교활동을 하면서
교회발전은 물론 우리나라 식물학 발전에 기여한 선구자이다.
【타케 신부(Emile Joseph Taquet)】
(한국명 : 엄택기(嚴宅基), 애칭 : 엄닥개)
1902.4.20 제3대 하논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한 타케 신부는
1901.5월 발생한 신축교안으로 피폐해진 하논성당의 교세 회복을 위해 노력하여
서귀포성당 발전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초가집 사제관 앞 타케신부, 1900년 초 사진>
아래는 타케 신부가 1908.1.6일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주교 앞으로 보낸 서한 중 일부로
서귀포성당의 전신이었던 ‘홍로성당’에서 쓴 편지이다.
타케 신부가 남긴 18통의 서한 중 하나인 이 편지에는
제주도에서 식물채집 과정과 그 표본을 서양에 보내는 내용 등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
<타케신부의 편지(1908. 1. 6)>
<1930년대 홍로성당>
식물학자인 타케 신부는
제주에서 활발한 식물 연구와 채집 활동으로 우리나라 식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08.4.15 한라산 관음사 부근(해발 600m)에서
세계 최초로 왕벚나무(천연기념물 제156호) 자생지를 발견해 유럽학계에 보고하게 된다.
<관음사에 자생하는 왕벚나무>
이렇게 왕벚나무 자생지를 확인한 것은
왕벚나무 원산지가 우리나라 제주도임을 알린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100년 전에
외국인 선교사 타케 신부는 제주도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찾아낸 것이다.
<제주도에 처음 파견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맞이하는 엄타케 신부(1909년 11월 28일)>
타케 신부는 1911년 제주도에 온주밀감(溫州蜜柑)을 최초로 도입했다.
일본 아오모리에 주재하던 포리 신부로부터 묘목 14그루를 받아
농가에 분양해준 밀감나무로 인해 제주도에 감귤산업의 기반이 열린 것으로
그 중에 한 그루는 아직도 서홍동 ‘면형의 집’에 남아있다.
<면형의 집 온주감귤나무>
타케 신부가 제주에서 채집한 많은 종류의 식물표본은 유럽으로 보내져 연구 자료가 되었다.
그가 보낸 식물들 중에서 ‘타케(Taquet)’라는 이름으로 학명이 지어진 새로운 종은
섬잔대, 한라부추 등 무려 13종이나 된다.
<제주의 섬잔대>
<제주의 한라부추>
미국과 유럽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구상나무는
1909년 타케 신부와 포리 선교사가 함께 한라산에서 표본을 수집하여
미국 하버드대에 보낸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라산 구상나무>
타케 신부는 1915년 제주에서 전출하여
대구교구에서 성 유스티노신학교(대구가톨릭대 전신) 3대 교장을 역임했고,
1952.1.27 선종하여 남산동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역에 묻혔다.
<대구대교구 성 유스티노신학교>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역, 타케신부 묘소>
최근 타케 신부가 대구신학교 내에 왕벚나무 세 그루를 심은 것이 확인되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신청하는 등
대구대교구에서 타케 신부에 대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타케신부가 심은 왕벚나무>
이렇게 이 땅 제주에 100년도 훨씬 이전에 살았던 한 프랑스 선교사의 활동이
지금도 우리의 삶 주변에 깊숙이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타케 신부의 일생은
우리 제주는 물론 우리나라의 종교와 문화 그리고 식물학계에 많은 영향을 끼친
소중한 문화 역사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서귀포성당 사진 1984년>
이제 제주에서도 교회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타케 신부에 대한 업적 재조명과 함께
기념사업 및 국내외적인 문화교류를 추진해야 할 시기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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