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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유배길과 순례길의 만남

by 나그네 길 2016. 5. 4.

유배는 제주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유배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제주도에는

고려와 조선조를 거치는 동안 300여명이 유배를 왔으며,

그 유배자 대부분은 우리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었다. 

 

오늘 만나는 정난주순례길과 추사유배길이 주인공은 더욱 그러하다.

 

 

 

정난주 마리아와 추사 김정희는 유배자로 이 땅 제주를 찾아 왔다.

 

제주도에 첫 천주교 신자였던 정난주 마리아는

조선 정조시대 17세에 장원 급제한 황사영의 부인이었는데,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대정현에 노비로 유배되었다.

 

 

 

조선조 최고의 학자였던 추사 김정희는

1840년 세도정치 폐해로 대정에 8년3개월간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정난주 마리아가 1838년에 대정현에서 돌아가셨으니

거의 같은 시기에 제주도 대정읍 지역에 유배를 왔던 인연이 있다.

 

 

 

그 후 200년도 더 지난 오늘,

정난주 마리아와 추사 김정희를 유배보냈던 자들은 역사 속에잊혀졌지만,

제주에는 아름다운 정난주순례길과 추사유배길이 조성되어 많은 이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 인간 세상의 역사는 이렇게 바른 길로 이어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정난주 마리아의 묘역이 있는 천주교 대정성지와

김정희의 추사적거지는 2km 정도 떨어져 조성되었고,

 

유배길과 순례길은 상당 부분 겹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길의 시작 부분은 정난주순례길이 곧 추사유배길인 것이다.

 

 

 

정난주 마리아는 제주에 유배와 38년동안 노비로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한양할머니'라는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노비가 죽으면 암매장하는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관비 정난주 마리아의 묘는 주민들이 잘 관리해 오다가 천주교 성지가 되었다.

 

 

 

추사의 유명한 '세한도'가 제주 유배기간에 그려졌듯이

김정희 역시 제주 유배 기간에 '추사체'의 완성을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정난주순례길과 추사유배길은

대정읍 보성리 지역에서 시작을 같이하여

안덕면 사계리 지역에 있는 대정향교까지 이어져 함께 걷는다.

 

 

 

시작점에서

제주의 천주교 전례 초기였던 1901년 민란이 있었는데,

그 한쪽의 주인공을 새긴

'삼의사비'를 만난다.

 

교회에서는 '신축교안'이라 부르지만

세간에서는 '이재수의 난'이라고 더 알려져 있는 역사의 슬픈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져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했던가를 역사적 교훈으로 기억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신축교안 당시 반란민에게 참살당한 308명의 천주교인은

대부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무고한 일반신자들이었으니

 

어떤 사람이 의사(義士)이며 누가 순교자(殉敎者)인지 궁금해 진다.

 

 

 

마지막에 유배길과 순례길이 함께 하는 대정향교는

제주도에 있는 3개의 향교 중 하나이다.

 

 

 

 

유배기간 중에 추사 김정희는

여기 대정향교에 여러번 방문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유배자 정난주 마리아는 노비의 신분이었으므로 향교에 와 보지 못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에서 만든 정난주순례길에

전례 초기 천주교인들을 가장 많이 탄압했던 조선 유림의 본산 향교와

천주교를 비난하는 삼의사비를 거쳐 함께 걸어 가는 것은 뜻이 있을 것이다.

 

 

 

오늘 천주교 제주교구 순례길해설사모임(회장 김영심)에서

정난주순례길과 추사유배길을 함께 걸었다.

 

 

 

조선 유림의 거두 추사 김정희와 한국 천주교의 백색 순교자 정난주 마리아,

이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기에 제주의 같은 지역으로 유배를 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땅 제주에서는 추사유배길과 정난주순례길을 함께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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