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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념사업

제주 감귤과 타케신부

by 나그네 길 2016. 7. 26.

제주도에 온주밀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서귀포성당 제3대 주임 타케신부이다.


프랑스 외방선교회 소속 성직자이며 식물학자인 타케신부는

1911년 일본에서 온주밀감나무 14그루를 들여와 홍로성당에 심고 농가에도 분양해 주었다.


 


타케 신부는 1902년 서귀포 하논 지역의 한논본당에 첫 부임한 이후

1915년까지 서홍동 홍로본당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일본으로부터 온주밀감(溫州密柑)을 들여왔다.


그가 1911년 도입한 온주밀감 나무는

일본 아오모리에 주재하던 프랑스 출신 성직자 포리’ (Faurie R. P) 신부로부터 받은 온주밀감 묘목 14그루이다.


그 때 심었던 온주밀감 나무 14그루 가운데 1그루가 지금도 옛 홍로본당 자리인 면형의 집에 남아 있어

 100년도 넘은 온주밀감의 역사를 되새겨 주고 있다.



 

서귀포성당 제3대 주임신부 타케 에밀

(Emile Joseph Taquet, 18731952, 프랑스 외방선교회 출신, 한국명 嚴宅基, 애칭 엄닥개)


<1909. 11월, 타케신부와 샬르트 수녀회 수녀>


제주의 감귤과수원은

타케신부의 온주밀감 재배를 흥미 있게 지켜보던 일본인 미네가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서귀포지역에서 상업을 하던 일본인이었다.

당시 미네는 타케신부로부터 서귀포에도 온주밀감의 재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고

 1913년에 많은 묘목을 도입해 서홍리 일대에 심었다.


 이 때 조성된 과수원이 제주농원인데 이는 처음으로 규모를 갖춘 감귤농장이었다.

<1930년대 홍로성당>


그 후 감귤과수원은 차츰 토평과 효돈 지역으로 재배 범위가 확대되면서

오늘날 제주의 주요 감귤산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제주의 감귤산업은 타케신부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타케신부가 소속된  천주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제주도 소속 한라산 생태문화연구소에서 2009년도에 발간한 책

 "제주 자연가치를 빛낸 선각자들"에 타케신부가 최초 감귤도입을 했다는 내용이 있다.



타케신부의 최초 온주밀감 도입 사실은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와 제주감귤협동조합의 자료는 물론이고 

한라일보를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도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보도되고 있으며,


서귀포시와 서홍동 마을에서는 사적지로 기록하고 있는 등

이미 역사적 사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도 제주에는 많은 감귤원이 있었다.

그러나 조정에 진상품 생산을 위한 것이고 품종도 달라 주민소득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관의 통제에 의한 재배로 그 민폐가 막심했다.

감귤원을 맡은 농민들은 생산량을 채우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게 되므로 일부러 귤나무를 고사시키는 일이 잦았다.

진상제도는 조선조 고종 31(1893)에 이르러 폐지되었으나 농민들은 감귤재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타케신부는 서귀포에 온주밀감을 전파한 최초의 인물이다.

이때가 1911년이다.

훗날 우리나라 최대 감귤주산지로 탈바꿈한 서귀포지역 온주밀감 재배가 타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주의 가치를 빛낸 선각자들에서 발췌)


<애월읍 상가리에 있는 오래된 감귤나무>


타케신부가 1911년 최초로 온주밀감을 도입했던 사실에 대하여

제주도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업치락 뒤치락 했던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아래 사진 : 감귤100주년기념사업회 현판식>

(도지사, 대학교수, 역사학자, 언론가, 관광, 감협 등 제주도내 쟁쟁한 인사들이 참여하였다.)


2009년 10. 27일 당시 김태환 도지사는

제주도 확대간부회의에서 2011년 감귤도입 100주년 기념사업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감귤도입100주년 기념 아이디어를 대대적으로 모집하고

2010년 초 도내 학계 경제계 감귤계 저명인사 25명으로 감귤100주년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한다.


그리고 제주도청에서는 전문가 18명으로 T/F팀을 구성하였으며

제주감귤클러스터혁신위원회도 만들어 가동하여 학술대회와 감귤데이 선포식을 준비한다.


그러나 2010년 4월 지방선거에서 도지사가 김태환에서 우근민으로 바뀐다.

그리고 10월 6일 "감귤100주년 기념사업"은 백지화 된다.


제주의 소리 보도에 의하면 감귤 10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하여 우근민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000사무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건의를 해서),

(감귤100주년)엉터리 사업을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우근민 도지사는 도청의 일개 '사무관'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전임 지사와 대학교수, 감귤전문가 및 역사학자, 추진위원, T/F팀 공무원들과

그외에도 감귤 100주년 사업을 준비해 왔던 도민들과 우리 가톨릭 신자들까지도

엉터리 사업이나 추진하였던 무식한 사람들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 조차도 도지사의 호불호에 의하여 정치적으로 변경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제왕적 도지사로 인한 제주도정의 폐해가 얼마나 심했었는지 알만하다.


<대구대교구 성직자 묘역, 타케신부묘 앞에서>


제주도 천주교 차원에서 타케신부 감귤도입에 대하여 기념사업을 해 달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지 도지사들의 입맛에 따라

김테환 지사는 "100주년 기념사업"이라고 추진했다가

우근민 지사로 바뀌면서 "엉터리 사업"으로 내몰아 백지화 되었다.  


이러한 사연의 주인공인 타케신부는 1952년에 대구에서 선종하여 대구대교구 성직자묘역에 잠들어있다.


타케신부는 1902년 한논본당에 부임하여 제주 농촌의 가난과 궁핍함을 생각하며 

온주밀감을 도입하여 소득작물로 제주의 산업을 변화시켰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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