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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여행길

하논순례길에서 제주의 근세사를 본다.

by 나그네 길 2017. 7. 19.

섬나라 제주에 유일하게 벼농사를 짓고 있는 하논은

서귀포 지역의 역사와 자연과 생태가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하논분화구에 위치해 있다.



5만전에 수성화상 폭발로 생성된 하논분화구는

오래 전부터 서귀포 지역민들의 생활 거주지와 농경지로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117년전 여기에 산남지역 최초의 하논성당이 설립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논성당은 설립과 동시에 교세를 확장하는 가운데

신당파괴와 신목절단 등 토속 민간신앙의 폐단과 풍습들을 배척하면서

필연적으로 지역의 토호세력들과 부딪치게 되었다.


하논성당에서 선교를 방해하는 주민을 구금하고 태형에 처한 것은 신축교안의 한 원인이 된다.



하논성당은 설립 다음해

제주의 종교전례사에 유래가 없는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을 맞아

농민 반란군으로 부터 많은 신자들이 피살당하고 성당은 피폐해졌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신축교안으로 309명이 천주교 신자들이 희생되었다. 

 

<서울대교구 우하하 성지순례단>


1902. 5월 프랑스 선교사이자 식물학자인 타케신부가 제3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하논성당을 홍로성당(現 면형의집)으로 이전하였다.


타케신부는 지역민과의 화합과 선교에 노력하면서

왕벚나무 자생지 발견, 온주밀감 도입, 구상나무 등 7천 종 이상의 식물을 채집하는 등

제주민들의 삶의 향상과 한국식물학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렇게 산남지역에 최초로 설립되었던 하논성당은

2년 후, 홍로본당으로 이전하였다가 1937년에 지금의 서귀포성당이 되었다.


이렇게 하논성당은 제주교구 남부지구의 8개 성당의 모태성당이 된다.


하논분화구는 큰 논이 있어서 '한논(大畓)'으로 불리었는데

차츰 변하여 '하논'이 되었다.


서귀포 호근리 하논지역에는 260여호 농가에 1,100여명이 살고 있었는데,

제주의 불행한 역사 4.3사건 중에 하논마을은 토벌군에 의하여 소개되어버렸다.


그 후 60여년 동안 하논은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으며

천주교 선교 사적지 하논성당터 역시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었다.


2010년 서귀포성당에 110주년위원회가 구성되어

하논성당 "뿌리찾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제주도청 예산을 협조하여 제주역사문화원에 연구용역을 하고

종교와 학계, 문화계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하논성당터를 발굴해 내었다.   

 


2013년 제주교구에서는 

선교의 사적지 하논성당터에서 면형의 집으로

타케신부가 걸었던 길을 연계하는 하논성당순례길을 공식 개장하었다.


역사와 생태 그리고 민초들이 삶이 녹아있는 가장 아름답다는 하논성당순례길은

지난 2016년에 약 5,800여명이 방문하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순례길이 되었다.

<마리아뽈리 하논성지순례>


하논성당터가 있는 하논부화구는

약 5만년전에 수성화산폭발로 생성되었다고 한다.


무려 38만평에 달하는 하논분화구에는 화구호가 형성되어 있었으나

500여년 전에 물을 빼어 논으로 만들어 아직까지도 논농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하논분화구를 복원한다는 명목으로

하논분화구에 물을 담아 호수로 만들려는 개발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500년전의 화구호를 지금에 와서 인위적으로 다시 만드는 것이 과연 복원인가?



하논분화구의 복원 보존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인간이 필요에 의해 하논분화구에 물을 담아 호수를 만드는 것을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논복원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며 JDC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본격 추진하게 되면


 '4대강 개발'에서 처럼 '곡학아세(曲學阿世)' 어용학자들이 등장하여

호수개발 필요성에 대한 각종 이론을 제시하면서 자본가에게 아부하게 될것이다.


<광주대교구 새로나는 성경공부팀>


오늘도 하논성당순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하논분화구에 물을 담아 호수를 만든다는 개발사업은 말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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