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첫 온주밀감은
1911년 홍로성당의 프랑스 출신 타케 에밀레오 신부에 의해
일본에서 14그루를 도입한 것이 시초이다.
당시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밀감 나무 중 한 그루가
서홍동 '면형의 집' 정원에 지금까지 살아 남아 감귤열매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수령이 110년도 넘은 타케신부의 온주밀감 나무는
올 여름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잎이 마르면서 고사 직전에 놓였다.
<2018. 8. 2일 면형의 집>
이 온주밀감나무는
제주감귤이 '진상품'에서 농민 소득증대를 이루는 '산업화'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었던 뜻 깊은 나무였다.
제주 감귤산업의 발전사에 역사적 보전가치가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촬영 : 2014. 11. 22일자>
서귀포시 서홍동 주민들은 이 감귤나무를
"제주 최초의 온주감귤시원지"로 선정 '서홍 8경'으로 지정했을 뿐만 아니라,
마을회관의 비석에 "감귤의 본향 서홍동"에 감귤나무 도입을 새겨 놓기도 했다.
1911년 홍로성당에 심은 온주밀감나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1913년 서홍동에 제주 최초의 감귤과수원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감귤산업은 서귀포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수백년 가난에 찌들어 왔던 제주 농민들을 잘 살게해 준 '대학나무'가 되었다.
<촬영 : 2015. 12. 4일>
제주 첫 온주밀감나무는 수령이 다 되었는지
몇 년전부터 수세가 약해지면서 시름거리기 시작 안타까움을 주었다.
<촬영 : 2016. 4. 23일>
2016년 타케신부기념사업을 추진할 당시에
이 밀감나무의 생육이 오래 남지 않은것 같다는 의견들이 있어
최초 온주밀감나무의 상징성으로 살리기 위한 후계목 양성을 추진하였다.
<촬영 : 2017. 3. 29일>
그러나 타케신부기념사업이 본당 차원에서 탄력을 잃어
결국 최초 밀감나무에 대한 후계목 양성 계획도 추진하지 못하고 말았다.
<촬영 : 2018. 4. 28일>
2018. 4월 제주도내 문화예술인들이 모임 '바람난장'에서
타케신부의 온주밀감나무 도입과 제주식물을 위하여 헌신하신 것을 기리는 공연이 있었다.
면형의 집 밀감나무 앞에서 춤과 노래와 시 그리고 퍼포먼스 공연 후
타케신부의 왕벚나무 후계목을 기념식수하고 표지석을 세웠다.
제주지역 일간신문 '제주신보'에서는
지난 7. 23일 "제주 첫 감귤, 미장온주나무 고사 위기"라는 기사를 내었다.
그리고 '한라일보'의 기자석과 '가톨릭신문사'에서 특별취재도 이어졌다.
<촬영 2018. 7. 23일, 제주신보사>
서귀포성당 제3대 주임 타케신부가 심어놓은 온주밀감나무는
우리 천주교회 차원에서 아끼고 더 사랑하고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별 관심이 없었다.
<2018. 7. 25일 연합뉴스>
제주 첫 감귤, 타케신부 온주밀감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차광막과 마포를 감고 물과 영양제 등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2018.8.5 서귀포신문>
타케 온주밀감나무가 가지고 있는 제주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들!!!
각급 언론사와 문화예술인 그리고 감귤전문가와 서홍동 주민들이었다.
페이스북을 통하여 이 감귤나무의 고사 위기를 접한 많은 분들이
댓글로 관심글로 걱정과 기도를 보내주고 있다.
아직도 실날같은 희망은 있다.
나무가지에 수액처분을 하면서 마른가지에 새싹이 돋아 나기를 기도하고 있다.
<촬영 : 2018. 8. 2일>
제주 첫 감귤,
타케신부가 심은 온주밀감나무의 후계목을 양성하지 못함에 후회가 크다.
본당 차원의 모든 시비를 이겨내면서 개인적으로라도 후계목을 양성했어야만 했다.
가톨릭신문(2018.8.12일자) 110년된 타케감귤 고사 위기 보도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97821&aci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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